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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군사기업, 한국에도 있다

등록 2012-08-07 18:15 수정 2020-05-03 04:26

“당사는 국내 업체로는 일찍부터 분쟁지역 파견 전문 민간군사기업(PMC·Private Military Corporation)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27일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자동차부품업체 SJM 공장에 진입해 농성하던 조합원 수십 명을 폭행한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가 회사 누리집에 내건 홍보 문구다. 컨택터스는 “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과 바그람 지역에 경호원을 파견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SJM 공장 진압 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자 “민간군사기업 표방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고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컨택터스의 해명과 달리, 민간군사기업의 존재는 더 이상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해외파병, 건설사들의 해외진출 등을 거치며 그 수요가 생겨나 민간군사기업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렛케이, 코이카 인력 경호
민간군사기업은 계약을 맺고 군대에 각종 용역을 제공하는 업체다. 취사·운전·세탁 등 단순노동부터 기지 건설, 요인 경호, 시설 경비, 포로 심문, 신병 훈련까지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민간군사기업은 전쟁이 잠잠해진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영국·프랑스 등 강대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늘어났다.
현재까지 알려진 한국 민간군사기업은 블렛케이, 인텔엣지, 맨티브 등 10여 곳이 있다. 몇년 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한국 민간인 피랍 사건이 터지자 스웨덴의 민간군사기업 ‘다인세크그룹’이 2007년 한국지사를 세운 바 있지만, 지금은 모두 철수한 상태다.
국내 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은 블렛케이다. 특전사 부사관 출신 대표가 2010년 4월 세운 이 업체는 직원 모두가 특전사 부사관 출신이다. 블렛케이 관계자는 “우리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업체”라고 말했다. 2010년 지방재건팀 사업을 위해 아프가니스탄 차리카르에서 진행하는 태화산업개발의 발전소 공사 현장 경비를 맡을 수 있도록 정부가 비공개로 사업 허가를 내줬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 안에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소속 병원 인력의 경호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이라크에도 진출해 바그다드에 있는 한국대사관 근처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며 경호 업무 등을 하고 있으며, 에르빌·바스라 지역으로도 사무실을 확장하려 한다. 이들 업체는 현지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총기류를 확보해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컨택터스도 이들과 같은 민간군사기업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한 국내 민간군사기업 관계자는 “민간군사기업으로 알려진 업체들은 대부분 해외 경호 사업에만 주력하는데, 컨택터스는 국내에서 용역경비 활동을 주로 한다”고 설명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또 다른 국내 민간군사기업 관계자는 “컨택터스 직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지역에서 현지 용병들을 상대로 군사훈련 교육을 한 건 사실”이라며 “그러나 어떻게 정부의 허가를 받아 아프가니스탄에 나갔는지는 자세히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 현지 대사관·정부기관과 경호 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현지에서 하청 등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중심지 그린 존(Green Zone)에서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고 활동하고 있는 블랙워터 직원들의 모습. 위키피디아 제공

이라크 바그다드 중심지 그린 존(Green Zone)에서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고 활동하고 있는 블랙워터 직원들의 모습. 위키피디아 제공

블랙워터, 딕 체니와 밀착해 성장

국내 민간군사기업의 활동은 현재로선 제한적이다. 하지만 미국·영국 등의 업체는 이미 베트남전쟁 등을 거치며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2010년 미국 의회조사국의 조사를 보면, 분쟁지역인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민간군사기업 인력은 모두 6만8195명으로 당시 현지에 주둔하던 미군 수보다 많았다. 지금은 ‘엑스이’(Xe)로 이름을 바꾼 미국의 대표적 민간군사기업 ‘블랙워터’뿐만 아니라,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업체로는 미국의 다인코프, 켈로그브라운앤드루트, 영국의 컨트롤리스크스그룹, 아모그룹 인터내셔널, 하트시큐리티 등 다양하다. 심지어 전세계 민간군사기업의 이해단체인 국제평화유지활동협회(IPOA)도 있다.

민간군사기업의 성장은 정부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1996년 문을 연 블랙워터의 역사를 보면 그렇다. 해군 특수부대 출신 사업가 에릭 프린스가 세운 이 회사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딕 체니 국방장관이 이끈 군대의 대규모 민영화 사업을 등에 업고 성장했다. 미국 노스캐롤라니아주 모욕에 군사훈련 기지를 세운 에릭 프린스는 보수 정치계 인맥을 활용해 군경 훈련시설 임대 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 2000년에는 아프리카 예멘 아덴만에서 터진 미 해군 콜 함을 노린 자살폭탄 테러를 계기로 군대 경호 사업권을 따냈고, 이듬해 ‘9·11 테러’ 이후에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지지를 업고 아들 부시 대통령 행정부 시절 이라크 미군정 최고행정관을 맡았던 폴 브레머 대사의 개인 경호를 시작으로 이라크에 진출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는 경찰 대신 치안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방·안보 영역에서 민간군사기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데엔 나름의 배경이 있다. 각국 정부로서는 사실상 비정규직 신분인 직원들을 고용해 전쟁 비용을 줄일 수 있을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피하기 어려운 윤리적 책임 등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민간군사기업을 활용한 ‘전쟁의 민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거세다. 국가만이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할 수 있다는 현대 정치체의 근본을 허무는 위험한 짓이라는 근본적 비판뿐만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사적 무력의 사용이 야기하는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비판도 높다. 이라크전쟁 중에 민간군사기업 직원들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의 인터넷 유출로 확인된 ‘전쟁의 민영화’가 불러온 야만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국내 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은 블렛케이다. 특전사 부사관 출신 대표가 2010년 4월 세운 이 업체는 직원 모두가 특전사 부사관 출신이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 안에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 병원 인력의 경호도 맡고 있다.

역시나 “일자리 창출 효과” 타령

이 와중에 이명박 정부는 2010년 미래 신성장 동력 및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국내 민간군사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국방부·방위사업청·지식경제부·기획재정부와 함께 이 구상을 내놓으며 “민간군사기업을 활성화해 국방 분야 민간위탁 과정에서 나타나는 절감 인력의 직업 안정 문제를 해결하고, 정보기술(IT) 분야 등 민간의 우수한 기술력을 국방에서 활용해 일자리 창출 효과를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미국 부시 행정부가 한 군대의 대규모 민영화 사업의 뒤를 밟는 듯하다. 세상에 따라할 게 그렇게 없나. ‘전쟁 기업’육성을 따라하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참고 문헌 (피터 W. 싱어·2005), (켄 실버스타인·2007), (미헬 라이몬, 크리스티안 펠버·2010), (제러미 스카힐·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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