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기 싫어 나는 도시를 떠났다.”
지리산 귀촌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지리산에 내려간 작가 공지영이 한 주막집 벽에서 본 낙서다. 이 짧은 글귀 안에는 도시인의 버거운 일상과 귀촌을 꿈꾸는 열망이 뒤섞여 있다.
귀촌 열풍이 불기 훨씬 전부터 지리산은 도시를 떠난 이들의 ‘안식처’였다. 북으로 노고단의 안개를 품고, 남으로는 섬진강 철쭉길을 품고 있는 전남 구례군도 지리산 기슭에 알려진 ‘귀촌 공간’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겨울 경기도 부천에서 이곳 구례군으로 이사 온 김루(31)씨도 지리산 자락을 따라 귀촌의 꿈을 좇아왔다. 하지만 그는 혼자다. 흙을 만지며 여생을 보내려는 성공한 은퇴자도 아닌,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기르고픈 젊은 가족도 아닌, 그냥 ‘젊은 처자’다.
빈집 5년 무상 임대해 터잡아
지리산 종주의 출발지이기도 한 화엄사에서 15분 남짓. 구례읍 북쪽에 있는 광의면 연파리 공북마을 한가운데에는 5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지난 7월18일 찾은 이곳 느티나무 맞은편에는 김씨가 사는 오래된 한옥이 있다. 낮은 담과 대문에 새로 칠한 페인트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동네 어르신이 살던 빈집을 5년 동안 무상 임대했다. 단, 수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안채의 넓은 방에는 피아노와 책장, 화장대가 있다. 마당 작은 텃밭에는 고구마가 자란다. 언뜻 보기에도 단출하다.
그는 지난해 11월 공북마을 주민이 됐다. 그 전까지는 경기도 부천 시민이었다. 아니, 구례에 오기 전까지, 태어나서부터 부천과 서울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그는 신학대를 졸업하고 7년 가까이 학원 강사를 했다. 중학생·고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귀촌’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게 생각했던 그가 고향을 떠나온 건, 두 해 전 친구에게서 경남 산청의 귀촌 공동마을인 ‘민들레공동체’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였다. “도시 생활에 지쳐 있었는데, 귀촌이 새 삶의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 봄부터 지리산을 찾았다. 민들레공동체가 있는 산청을 둘러보고, 귀촌인이 많다는 경남 하동·악양도 가봤다. 그러나 공동체 마을에 살기에는 용기가 안 났고, ‘귀촌인들의 강남’이라 불릴 정도로 집값이 오른 하동·악양에 가기에는 돈이 부족했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저처럼 지리산 자락을 타고 전남 구례·곡성 등으로 넘어오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내려온 귀촌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 ‘구례 귀농귀촌네트워크’에서 집을 소개받았다.
결단은 과감하게 실천했다. 내려가서 뭘 할지, 어떻게 살지 정하기보다는 우선 부딪쳐보기로 했다. “집 보러 구례에 와서 보름 뒤 계약을 하고, 다시 보름 뒤 이사를 했어요.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내 삶도 바뀌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도 컸지만, ‘후회하더라도 살아본 뒤에 후회하자’고 생각하며 짐을 쌌다.
| |
귀촌으로 ‘돈 대신 시간을 벌었다’
그가 도시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 때문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그는 어릴 적부터 꿈꾸던 재즈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눈덩이처럼 이자가 불어나는 빚도 남겼다.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학원 강사는 어느새 직업이 됐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 1~2시였어요. 쉼 없이 떠들고 오면 바로 잠을 못 잤죠. 다음날 일어나 오전을 보내고, 다시 밥 먹고 학원으로 가고….” 기운을 내 오전에 뭔가 하려면 저녁에는 기진맥진하기 일쑤였다. ‘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멍하게 앉아 있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위해 사는 게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더라고요. 돈을 벌고 갚는 걸 유지해야 하는 자유가 없는 삶 말고, 내가 행동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내년이 올해와 다를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구례에 내려와 첫 겨울을 나는 동안 김씨는 할 일이 없었다. 타고 다니던 차를 판 돈으로 겨울을 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사온 지 일주일 만에 마을 아이들이 피아노를 가르쳐달라고 문을 두드렸다. “사실 제가 피아노를 아주 잘 치는 건 아니에요. 어릴 적에 1년 배우고 제가 좋아서 독학을 했거든요.” 하지만 젊은 사람이 적은 마을에서 그의 ‘피아노학원’은 인기를 모았다. 혼자 내려와 사는 젊은 여성을 경계하던 마을 어른들도 그를 “김 선상(선생)”이라고 부르며 받아줬다.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농사 말고 제가 할 일이 있더라고요.”
그는 귀촌을 통해 ‘돈 대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도시에서는 돈만 있으면 먹는 것, 노는 것, 사는 것 등을 해결할 수 있고, 이 때문에 하루의 대부분을 돈 버는 데 써야 한다. 하지만 귀촌한 삶은 달랐다. 그는 요즘은 교육청에서 뽑는 방과 후 학교 영어강사를 하며 생활한다. 하루 2시간씩 학교를 돌며 강의하는 게 전부다. 시간당 3만5천원을 받는데, 이곳 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하단다. “연극·체육·외국어 등 다양한 분야의 선생님을 구하고 있지만, 젊은 사람이 적어서 못 구하더라고요.” 얼마 전부터는 구례 일대에 사는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밴드 ‘봉실사운드’에서 건반을 맡고 있다. 도시에서는 꿈만 꾸던 피아노를 치는 일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읍내에 다방으로 쓰던 건물 지하를 개조해 만든 연습실이 있어요. 저희 말고도 7~8개 밴드가 와서 연습을 해요.” 지역 사람들과 협동조합을 운영하기 위한 공부 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그의 목표는 동네에 팥빙수 가게를 여는 것이다.
막막했던 일 실타래처럼 풀리기도
그의 귀촌에 정해진 기간이 있는 건 아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갈 수도 있다. “사실 지금껏 도시 생활을 하며 살아왔잖아요. 평생 살 수 있는지는 살아보지 않고는 모르니까요. 일종의 실험이죠.” 그 실험이 성공하려면 뭔가 하고픈 게 뚜렷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도시에서 내 삶이 없어서 젊은 나이에 농촌을 찾아온 거잖아요. 그런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거나, 안정된 길만 걸으려 한다면 도시에서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그는 요즘 도시에서 막막했던 일들이 구례에 와서 실타래처럼 풀리는 기분이다. 일상에 치여 꿈꾸기 어려웠던 연애도 이곳에 와서 시작하게 됐다. “예전에는 미래를 생각하면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 무기력해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미래를 생각하면 두근거려요.”
구례(전남)=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명태균 녹취에 확신”…전국서 모인 ‘김건희 특검’ 촛불 [현장]
[영상] “국민이 바보로 보이나”…30만명 ‘김건희 특검’ 외쳤다
해리스-트럼프, 7개 경합주 1~3%p 오차범위 내 ‘초박빙’
거리 나온 이재명 “비상식·주술이 국정 흔들어…권력 심판하자” [현장]
에르메스 상속자 ‘18조 주식’ 사라졌다…누가 가져갔나?
로제 아파트는 게임, 윤수일 아파트는 잠실, ‘난쏘공’ 아파트는?
노화 척도 ‘한 발 버티기’…60대, 30초는 버텨야
“보이저, 일어나!”…동면하던 ‘보이저 1호’ 43년 만에 깨웠다
이란, 이스라엘 보복하나…최고지도자 “압도적 대응” 경고
구급대원, 주검 옮기다 오열…“맙소사, 내 어머니가 분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