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기 시장’은 자꾸 커진다. 국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연간 1천억원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화이자의 비아그라(382억원), 릴리 시알리스(310억원), 동아제약 자이데나(200억원)가 천하삼분을 하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유통되는 양을 고려하면 시장 규모는 훨씬 커진다. 비아그라는 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1998년 출시했다. 국내에는 이듬해인 1999년 상륙했고, 발기부전 치료제의 대명사가 됐다. 비아그라는 출시 이후 10년 동안 전세계에서 18억 정이 팔려나갔다.
2천원짜리 ‘비아그라’도 나와
그런 비아그라도 ‘특허 약발’이 다했다. 지난 5월 비아그라 주성분인 ‘실데나필’의 물질특허가 풀렸다. 특허와 관련한 법적 분쟁이 있기는 하지만 복제약 수십 종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최근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에서 시판 허가를 새로 받은 비아그라 복제약은 50여 종에 달한다. 가격도 싸졌다. 비아그라는 용량에 따라 1정당 1만5천~1만1천원 선에 판매됐는데, 복제약은 이보다 절반 이상 싼 5천원 이하가 주력이다. 2천원대 제품까지 나왔다. SK증권 제약 담당 애널리스트는 “복제약이 쏟아져 약가가 대폭 떨어졌다. 제약사들은 ‘블랙마켓’ 쪽 수요를 흡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주로 중국산 가짜 약이 싼값에 불법적으로 유통됐는데, 값싸면서도 안전성을 확보한 복제약이 나와 소비자를 양지로 끌어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를 살려내는 횟수는 크게 증가했다. 반면 ‘피임 시장’ 규모는 ‘발기 시장’에 크게 못 미친다. 사전(경구)피임약 시장은 한 해 140억원 정도다. 응급(사후)피임약 판매는 2007년 22억8천여만원에서 2010년 56억8천여만원, 지난해 62억여원으로 커졌다. 현대약품 관계자는 “이 가운데 우리가 판매하는 ‘노레보’가 30억원 정도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콘돔 판매량은 해마다 1억 개 정도 된다.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는 유니더스로 60%를 넘는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219억원인데, 콘돔 판매 비중이 70% 정도다. 피임 시장은 사전·응급 피임약, 콘돔 등을 모두 합쳐도 연간 300억~400억원대에 머문다는 뜻이다. 유니더스 박재홍 과장은 “콘돔은 가장 저렴하면서도 부작용이 없는 피임 기구이자 의료 용품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콘돔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에 사용이 저조한 편”이라고 했다.
한쪽은 지난 10년간 떨쳐 일어났는데, 이를 진압하는 쪽은 잠잠하거나 미약한, 불균형한 모양새다. 유니더스 쪽은 “비아그라의 출현과 콘돔 판매량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성관계에는 상대가 있지만, 피임은 주로 여성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남녀가 함께 책임져야 함에도 남성은 발기의 영역에서 멈추려 한다. 그렇다고 피임이 온전히 여성의 권리인 것도 아니다. 피임에는 끊임없이 국가가 개입한다.
식약청은 지난 6월7일 ‘의약품 재분류안’을 발표했다. 지난 40여 년간 의사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살 수 있던 사전피임약이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으로 재분류됐다. 이 안이 확정되면 앞으로는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사전피임약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전문의약품이던 응급피임약은 의사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이 됐다. 사전·응급 피임약이 서로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여성계와 약사업계 VS 의사업계
논란은 뜨겁다. 여성계와 약사업계는 ‘사전피임약이 전문약이 되면 여성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결국 여성의 임신결정권을 빼앗게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수십 년간 전세계적으로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됐다’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사전피임약은 전문약으로 바꾸면서 응급피임약은 일반약으로 돌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따른다. 의사업계는 약사업계와는 정반대다. 의사 처방을 받게 한 사전피임약 재분류는 환영, 처방을 없앤 응급피임약 재분류에는 반발한다. ‘응급피임약은 여성호르몬 함량이 사전피임약보다 10배는 많기 때문에 일반약으로 전환하면 위험하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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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청도 이런 맞바꾸기를 한 판단 근거가 있다. 사전피임약은 혈전증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유방암 환자 등은 먹어서는 안 된다. 미국·캐나다·일본·영국·프랑스·독일·스위스·이탈리아 등도 모두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응급피임약은 장기간·정기 복용이 아닌 일회성 복용이 많기 때문에 부작용 우려가 사전피임약보다 적다고 설명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처럼, 1960년대 들어 피임은 국가의 불임정책과 직결됐다. 피임을 잘한 집에는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졌다. 부양가족 소득공제는 두 자녀까지로 제한됐다. 세 자녀 이상을 둔 가정은 세금을 더 내야 했다. 불임시술 가정에는 생업·영농·영어 자금을 우선 융자해줬다. 불임수술을 받으면 복지주택 자금융자, 공공주택 입주시 우대 조처를 해줬다. 아이 1명을 낳고 불임수술을 하면 취학 전 자녀에게 1차 무료 진료도 해줬다. 이런 출산억제 위주의 정부 정책은 1995년 2월, 인구 감소를 예상한 인구정책발전위원회의 정책 변경 건의를 계기로 180도 바뀌게 된다. 이듬해 6월 정부는 35년간 지속해온 출산억제 정책을 공식 폐기했다.
식약청의 사전·응급 피임약 재분류안은 이르면 7월 말, 혹은 8월 초에 최종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사·약사·제약 업계 등이 두루 얽혀 부작용·안전성 등을 말하지만, 정작 여성의 결정권과 건강권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 많다.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임약 재분류는 여성의 권리를 빼앗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해관계나 이윤적 관점에 이용되는 듯하다. 여성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남성이 나서면 좋지 않을까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여성학 박사)는 이렇게 비판했다. “1980년대까지 정부가 나서서 무료로 낙태를 해줬다. 3개월 된 태아를 가진 시골 여성을 택시까지 태워가며 낙태수술을 받게 했다. 그런 식으로 국가가 출산율을 통제했는데, 그 안에서 여성의 몸은 목표를 이루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랬던 국가가 40년간 약국에서 팔아오던 피임약을 전문약으로 갑자기 바꾸겠다며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는 피임을 두고 “여성들이 자신의 생애주기를 조절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언제 아이를 낳을지 스스로 통제하고, 임신의 부담 없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성적 결정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여성이 왜 피임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남성이 ‘우리 모두 콘돔 쓰겠다’고 나서면 좋지 않을까. 남녀가 함께 즐기고서 피임·출산·낙태는 모두 여성이 책임져야 하는 식이다. 남성도 ‘성감’만 따질 게 아니라 사고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래, 이제 좀 바꾸자. 알약이 여성의 건강에 좋다, 안 좋다 따지기 전에 부작용 없고 피임률은 높은 콘돔 사용부터 늘리자. 어렵지도, 부끄럽지도, 특히 불만족스럽지도 않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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