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지만 가녀린 18살 청춘들에게, 논다는 것은 세상의 중심에 서 있음을 확인시키는 절박한 증빙 행위 같은 것이다. 청소년 성장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그거 알아?”
“뭐?”
“초속 5센티래.”
“뭐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애니메이션 중에서
나의 10대 시절은 그렇게 느렸다. 다른 건 별거 없었는데 초등학교를 중퇴한 싱글맘의 무녀독남이었고, 저학력·저소득, 그래서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게 제일 컸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갈 때면 동네를 지나쳐 한 정거장을 더 갔다. 산동네 사는 걸 들키기 싫어서 그랬다. 한번은 가출한 적이 있다. 엄마에게 남긴 말은 이거였다. “난 엄마처럼 살기 싫어.” 난 내가 정주영처럼 자수성가할 줄 알았지만, 며칠 뒤 집에 돌아왔다.
나는 아버지를 찾고 싶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엔 아버지가 없는 게 이상한 건지 몰랐다. 학기 초마다 ‘아버지 없는 사람’으로서 손을 들어야 했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에게 가서 아빠 보고 싶다고 울었고, 엄마는 아빠가 미국에 가서 곧 돌아온다고만 했다. 그는 오지 않았다. 그걸 알게 된 순간 아버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물을 게 참 많았다. 왜 나만 남겨뒀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장래희망은 ‘평범한 아기아빠’였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중3이 되자 키가 177cm가 됐다. 그게 무기가 될 줄은 몰랐지만, 난 거의 무의식적으로 키를 자원으로 삼게 됐다. 학년이 갈수록 내 자리는 뒤로 갔고 학교 생활이 서서히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고등학생 시절이 가장 좋았다. 요즘으로 치면 일진 언저리에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뭐, 딱히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나는 말을 잘 못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도 못했고, 한번 터지면 주체 못할까봐 말을 아끼기도 했다. 그런데 말을 잊으면 마음도 잊는다. 얼마 전 이라는 영화를 보고 울고 말았는데, 그 시절의 나와 여러 이미지들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 시절 에피소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두 번 정도 친구를 때린 적이 있다. 중학교 때만 하더라도 알고 지내거나 제법 친한 친구였는데, 그때는 더 이상 그들과 놀기 싫어서였다. “아, 씨발 꺼지란 말이야.” 내 발이 친구의 복부에 꽂혔다. 그때 친구의 표정은 아프다기보다는 슬픈 얼굴, 실망한 기색이었다. 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나는 비겁했다.
여자도 일찍 만났다. 고1, ‘서클’ 활동을 통해 만난 친구였다. 당시엔 완전히 미쳐 있었다. 졸업하면 바로 결혼하기로 마음먹었고,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었다. 입시 스트레스도 별로 없었다. 학교에 가면 애정 행각을 자랑질했다. 아이들은 신기하게 들었고, 나는 토크쇼 주인공이 되어 온갖 ‘드립’을 쳤다. 어떤 친구는 농담 삼아 나더러 ‘쓰레기’라고도 했는데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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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두 배의 나이가 된 지금
논다는 건 나를 세상의 중심에 서 있게 했다. 2~3년, 시간은 더디다면 더딘 것이다. 오롯이 내 몸과 마음을 현재에만 집중하는 기술은 그 시절 내가 터득한 비법이었다. 세상 기준엔 어리석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되기가 뭐든 해결해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시간이 흐르지 않길 바랐다. 겁이 났던 걸까. 나는 미래를 참조해본 적이 없다.
서른여섯. 열여덟로부터 딱 열여덟 해가 흘렀다. 그것도 초속 5센티로.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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