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돼야 안 되겠습니까. 부산 사람들도 이번에는 좀 변해야 하는데, 거물이라 되겠지 싶기도 하고…. 결국엔 접전 지역이 안 되겠습니까.”
지난 2월20일 부산 사상구 학장동의 한 카센터에서 만난 김형무(61)씨는 거리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새누리당이 집권당인데, 이제는 좀 분배적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정권 교체가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문 후보를 보며 그는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김씨는 “여기는 신공항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다. 젊은이들이 직장을 못 구한다. 김해공항이 나가야 발전이 된다”며 “여긴 동남권인데, 박근혜는 지난번에 남부권 공항이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술 마시면서 사람들이 그럽니다. 저쪽(호남)도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데 아니냐고요.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찍다 보니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김씨는 “(당선)됐으면 좋겠는데…”라며 멋쩍게 웃었다. 살림살이에 대한 불만, 지역주의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게 뒤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정당득표율 새누리 40.4%, 민주 11.9%
사상구에 불고 있는 ‘문풍’은 지나가는 바람일까, 태풍일까. 사상구는 부산 지역 18개 선거구 가운데 ‘야성’이 상대적으로 센 곳으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낙후한데다, 젊은 노동자와 다른 지역 출신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2010년 부산시장 선거 때 민주당 김정길 후보의 득표율(48.5%)이 부산에서 가장 높았다는 사실도 자주 언급된다.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불과 3%포인트 차이였다.
그러나 그 차이를 넘어선 민주당 후보는 여태껏 한 명도 없었다. 15~17대 내리 3선을 한 권철현 전 한나라당 의원이 2008년 18대 총선 때 공천에서 탈락한 뒤 주일대사로 임명돼 떠났지만, 민주당은 후보를 아예 내보내지도 못한 채 당시 장제원 한나라당 후보와 강주만 친박연대 후보의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다. 정당득표율에서도 당시 한나라당 40.4%, 민주당 11.9%로 비교할 수준이 못 됐다. 진보정당의 정당득표율(민주노동당 7.1%, 진보신당 2.3%)까지 다 합쳐도 한나라당의 절반 수준이었다. 야권 연대로 큰 성공을 거뒀던 지방선거 때의 높은 득표율에다 문 후보 스스로 ‘마의 5%’라고 표현하는 득표율을 더 얹어야 당선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번 총선에서 문 후보의 출마로 사상구에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이 쏟아지는 것과 달리, 현지 주민들에게는 아직 총선 분위기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총선 얘기를 하면 “잘 모르겠네예”라고들 했다. 20년 넘게 노점상을 했다는 김아무개(67)씨는 “아직은 선거 분위기가 아니다. 아직은 누가 좋다, 싫다,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후보를 모르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동의대3)이 “문재인요?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했다가 사장한테 “너는 문재인도 모르나” 하고 핀잔을 듣긴 했지만, 이날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문 후보를 알고 있었다. “(문 후보가 연초에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인) 를 봤다” “텔레비전에서 봤다”는 얘기가 많았다. 문 후보가 부산 지역에서 노동자와 대학생의 변론을 많이 한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과가 늘 같았던 선거를 겪은 이곳 주민들에게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민주당 후보의 등장은 화제임이 틀림없다.
“다들 좋게 얘기” VS “사상에 연고 없어”
문 후보에게 호감을 나타내는 이들은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주부 구옥자(54)씨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씨 좋아합니다. 다들 좋게 이야기하데예. 정치가 너무 엉망진창이잖아예. 좀 바꿔줄랑가 싶네예.” 전영숙(40)씨는 “한나라당이 워낙 썩어서 그렇다. 문재인씨는 도덕적인 문제가 없잖은가. 아기엄마들이나 대학생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는 없었는데, 요즘은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런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문 후보의 이미지가 상당히 작용하는 듯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김기수(26)씨는 “안철수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문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려고 서울에서 왔다는 최유정(22·대학생)씨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문 후보의 모습에는 울림이 있었고, 책 을 읽으며 더 관심을 갖게 됐다”며 “정치인이 아니라고 해도 좋아할 만한 분 같다”고 말했다. 반면 박병문(50)씨는 “선거 때 봐서는 모른다”고 말했다.
문 후보가 대선주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황보현(48·자영업)씨는 “문재인씨는 좀 안정감이 있어 보여서 노무현이나 유시민 같은 사람과는 또 다른 것 같더라. 큰 배가 갈 때는 천천히 가야 하는데, 노통은 너무 빨리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그러면서 “나는 아직까지는 여자가 대통령이 된다는 게 가능할까 싶다”고 덧붙였다. 인테리어 매장을 운영하는 한 40대 여성은 “아직 많이 바뀐 건 아니지만, 이 동네도 당보다는 사람을 보는 분위기가 많아졌다”며 “문재인씨가 인물이 좋아서 이번에 큰 인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인물론’과는 정반대로, 민주당의 대선주자를 뽑으면 안 된다는 얘기도 적지 않았다. 김명근(64)씨는 “나이 많은 분들은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한다”며 “문재인씨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도, 대선 후보로 나가면 또 보궐선거를 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게 지역을 위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60대 남성은 ‘문 후보를 아느냐’고 묻자 “잘 알기야 하는데, 속내는 어떤가 모르지”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기수씨는 “어떤 어르신들은 문재인씨가 사상에 연고도 없는 사람이라며 안 좋게 얘기하더라”고 전했다.
가장 뜨겁게 달아오를 사상구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사상의 선거 분위기는 전국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사상 주민들이 ‘문재인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아직은 그들도 모른다. 학장동의 한 아파트 경로당에서 만난 70대 할아버지는 “70%는 학실하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은 이름도 모르겠다”고 했다. 수입자동차 매장에서 일하는 한 30대 남성은 “새누리당에서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을 민주당원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이번에는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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