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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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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김밥 슈퍼 갑들의 폭식

골목 상권 잠식한 대기업 편의점의 폭력… 막강한 유통망·제조공장으로 중소업체 위협하고 공급업체와 점주 외면한 일방적 계약 횡포
등록 2012-02-02 11:53 수정 2020-05-03 04:26
» 서울 시내 한 편의점 삼각김밥 진열대. <한겨레21> 박승화

» 서울 시내 한 편의점 삼각김밥 진열대. <한겨레21> 박승화

재벌들의 문어발 확장이 관심사다. 대통령도 나서서 자제를 당부한다. 압력도 행사할 기세다. 총선·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규제할 태세다. 재벌들의 영토 확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편의점 시장은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편의점을 장악하자 먹는 것도 야금야금 잡아먹었다. 재벌 기업들이 값싼 삼각김밥 판매망까지 장악해 손쉽게 돈을 벌어온 실태를 더듬어본다._편집자

삼각김밥은 800원이다. 2010년 기준으로 편의점마다 하루 평균 31.4개가 팔렸다. 1991년 처음 국내에 소개됐다. 2000년대 들어 인기를 끌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계기였다. 해마다 판매가 늘어 지난해엔 각 편의점마다 21~40%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김밥·도시락·샌드위치 등 신선식품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편의점마다 신선식품(Fresh Food) 판매 공간이 들어선 배경이다.






2011년 훼미리마트와 GS25가 각각 약 1300개씩 늘었고, 세븐일레븐도 약 1천 개가 새로 문을 열었다. 이들이 지난해 늘린 편의점 수는 전체 편의점 증가 수인 4천여 개를 채우고 남는다. 그만큼 개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은 자취를 감춘 셈이다.
» 연도별 편의점 수와 매출

» 연도별 편의점 수와 매출

계열사 내부거래로 초고속 성장

편의점 신선식품의 인기는 대기업에 계열사 확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국내 편의점은 이른바 ‘빅3’인 훼미리마트, GS25, 세븐일레븐 등이 장악하고 있다. 선두인 훼미리마트를 운영하는 보광훼미리마트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의 둘째동생인 석조씨가 2007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이 회사는 홍 관장의 넷째동생인 석규씨가 대표를 맡은 보광그룹에 속해 있다. GS25(2005년 이전까지 LG25)는 GS그룹에, 세븐일레븐(2010년 바이더웨이 인수)은 롯데그룹에 속해 있다. 2011년 말 점포 수는 훼미리마트 6600여 개, GS25 6300여 개, 세븐일레븐 5500여 개로 추정된다. 이들 ‘빅3’가 1만8400여 개로 전체 편의점 2만650여 개의 90%를 차지한다.

재벌 대기업들은 신선식품의 인기를 틈타 식품제조회사를 속속 만들었다. 롯데그룹이 롯데후레쉬델리카를 1999년에, GS그룹이 후레쉬서브를 2007년에 설립했다. 보광그룹도 2002년 신세계와 함께 훼미리푸드를 세웠다 매각한 뒤 다시 2008년에 훼미리에프앤비를 세웠다. 또 제주에는 2010년 제주에프앤비의 문을 열었다.

재벌 식품회사의 성장은 빨랐다. 롯데후레쉬델리카의 매출은 2008년 370억원에서 2010년 58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후레쉬서브도 같은 기간 81억원에서 377억원으로 4배 이상 성장했다. 훼미리에프앤비는 2009년 141억원에서 이듬해 185억원으로 늘었다. 고속성장의 비밀은 ‘내부 거래’에 있다. 2010년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에 414억원어치를 팔았다. 전체 매출의 70.9%다. GS그룹의 후레쉬서브는 다른 회사에 판매한 2300만원을 제외한 모든 매출을 GS리테일로부터 기록했다. 보광의 훼미리에프앤비도 대부분 훼미리마트에서 매출을 낸 것으로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대부분 삼각김밥을 비롯해 김밥(1천원), 햄버거(1200원), 샌드위치(1800원), 도시락(2500원) 등을 자사 계열사인 편의점에 공급해 벌어들인 돈이다.

초고속 성장은 대주주의 이익으로 이어진다. GS25를 제외한 두 곳은 대주주 일가가 주식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신격호 회장의 딸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과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 각각 9.31%씩 지분을 갖고 있다. 훼미리에프앤비의 경우 홍석조 회장의 아내인 양경희씨가 10%를 보유하고 있다. 회사가 성장할수록 보유 주식의 가치가 커진다.

더구나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주식 편법 증여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7년 신격호 회장이 자신이 소유한 롯데 계열사 주식(당시 시가 2천억원)을 롯데후레쉬델리카를 비롯해 롯데미도파, 롯데알미늄, 롯데브랑제리 등에 무상 증여했기 때문이다. 주식을 건네받은 계열사들은 부가 커졌고, 그만큼 신영자·유미씨 등 대주주는 실익을 챙길 수 있었다.

» 편의점 빅3 삼각김밥 공급 현황

» 편의점 빅3 삼각김밥 공급 현황

그 많던 개인 슈퍼마켓은 어디로 갔나

대기업의 탐욕은 생산, 판매, 유통, 재료 공급 등 전방위로 뻗친다. 모든 것을 자사 계열사에 맡긴다. 수익은 당연히 대주주 몫이다. 세븐일레븐은 롯데로지스틱스, GS25는 GS리테일이 물류를 맡는다. 훼미리마트는 보광로지스·중부로지스 등 9개 자회사가 지역별로 나눠 맡는다. 특히 훼미리마트의 물류회사들은 대주주의 친인척이 상당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동부로지스는 홍석조 보광훼미리마트 회장의 여동생 라영(리움미술관 부관장)씨의 남편 노철수씨를 비롯해 3명이, 중부물류는 홍석규 보광그룹 대표의 부인 이계명씨가 대주주다. 또 중부로지스·보광로지스·대구물류 등에는 홍석조 회장과 그 아들 정국씨, 홍석규 보광그룹 대표가 대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원자재 역시 롯데후레시델리카는 롯데상사를 통해, 훼미리에프앤비는 사돈 기업인 신세계그룹의 계열사 신세계푸드로부터 받는다.

재벌 대기업의 이런 독식은 해당 업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는 ‘재앙’이다. 삼각김밥 등 신선식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은 납품할 곳을 찾지 못해 해가 갈수록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다. 대기업 편의점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일반 편의점은 계속 줄기 때문이다. 2011년 훼미리마트와 GS25가 각각 약 1300개씩 늘었고, 세븐일레븐도 약 1천 개가 새로 문을 열었다. 일본계 회사인 미니스톱과 한화그룹의 씨스페이스 등도 덩치를 키웠다. 이들 ‘빅5’가 지난해 늘린 편의점 수는 전체 편의점 증가 수인 4천여 개를 채우고 남는다. 그만큼 개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은 자취를 감춘 셈이다.

충북에서 삼각김밥 등 신선식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ㅂ회사의 이아무개 전무는 “대기업 편의점들이 장사가 잘되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을 웃돈을 주고 사버린다”며 “충청권에도 한때 ‘썬마트’라는 편의점이 있었지만 대기업 편의점이 급속 성장하자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어느날 문을 닫는다고 물품 공급을 중단하라고 통보한 편의점에 가보면 GS25나 세븐일레븐 등이 들어선 곳이 많다”며 “한 곳당 삼각김밥을 50~100개 공급하는데 일반 편의점이 줄어든 만큼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고 매출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국적이다. 대구에서 하루 5만 개의 삼각김밥을 생산하는 ㄷ업체의 최아무개 대표도 같은 하소연을 했다. 최 대표는 “대기업 편의점들이 계속 잠식해 들어오니까 시장이 빠르게 좁아진다”며 “그쪽은 자기네들 것만 납품 받아서 영세업체들 처지에서는 줄어드는 일반 편의점을 상대로 나눠먹어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개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은 해마다 줄고 있어 모든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느낄 것”이라며 “우리 회사도 연 20% 이상 매출이 줄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에서 삼각김밥을 납품하는 ㅈ업체 관계자 역시 “대기업의 시장 독점력이 워낙 강해지고 있고 그만큼 개인 편의점이 빠르게 줄어 힘들어져만 간다”고 말했다.

» 훼미리마트. <한겨레21> 박승화

» 훼미리마트. <한겨레21> 박승화

1+1 부담은 제조업체 몫

재벌 계열 편의점들의 삼각김밥 끼워팔기 요구로 다른 식품 제조업체들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하소연도 많다. 삼각김밥 하나를 사면 음료를 할인해주는 행사에 제조업체들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한 음료업체 관계자는 “유통업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판매대 진열 순위에서 밀리거나 진열대에 팝업 광고를 할 수 없게 하는 등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에 거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연말에도 직원 선물용으로 케이크를 사달라는 요구가 들어오는 등 압력이 계

» 바이더웨이. <한겨레21> 박승화

» 바이더웨이. <한겨레21> 박승화

속됐는데,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갑과 을 관계여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음료업체 관계자도 “삼각김밥에 음료수를 끼워팔면 낱개 정상 판매가 2300~2400원보다 훨씬 낮은 1500원 밖에 받을 수 없어 그만큼 마진이 줄어드는데, 그 손해를 삼각김밥과 우유 제조업체가 분담한다”며 “게다가 행사를 하면 알리고 싶은 신제품이 아니라 인기 상품으로 (편의점 업체 쪽에서) 정해 참여할 것을 요구하지만 거스를 수 없다”고 말했다.

재벌 계열 편의점 본사 쪽은 식품 위생과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하려면 생산·

세븐일레븐.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세븐일레븐.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판매·유통·재료공급 일관체계를 갖출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롯데중앙연구소가 식품의 품질이나 위생, 배송을 체계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상호협력을 원활하게 하려고 계열사에서 제품의 공급, 생산,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삼각김밥 등 신선식품은 위생이 중요해 대기업이 맡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GS25도 “후레쉬서브는 업계 최초로 HACCP(위해물질방지 위생관리시스템) 인증을 받았다”며 “고객의 안전과 직결되는 신선식품 제조업체의 위생과 품질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모델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GS25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에 위생, 품질, 맛 등 기술 지원을 통해 상생을 실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훼미리마트의 설명도 유사하다. 훼미리마트 관계자는 “훼미리에프앤비는 훼미리마트에 납품하는 삼각김밥 공장의 연구·개발을 맡는 공장으로 종합적인 상품 관리 및 상품 개발 등의 업무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소기업 쪽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김호균 도시락식품조합 이사장은 “대기업은 위생 때문이라고 하지만 중소기업이라도 위생이 안 좋다면 시장에서 존립할 수 없다”며 “오히려 위생 사고가 발생하는 곳을 보면 대기업 계열사인 경우가 더 많다”고 주장했다. 또 “위생은 대기업의 시장을 장악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며 “중소기업이 막대한 유통망과 제조공장을 가진 대기업을 상대로 경쟁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 대기업이 자사 식품회사 설립 이유로 내세운 위생에서 허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해 상반기 식품의약품안전청 조사에서 후레쉬서브의 제육볶음도시락에서 고무장갑 조각이 검출된 바 있다.

재벌 계열 편의점들은 중소기업과 상생 효과를 강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세븐일레븐은 롯데후레쉬델리카가 독점 공급한다. 훼미리마트는 2개, GS25는 3개의 중소기업에게서 삼각김밥을 납품받는다. 그런데 GS25에 납품하는 영진데리카후레쉬, 삼영델리카후레쉬는 대표이사가 동일인이다. 요컨대 중소기업 상생 효과를 거론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가격도 오히려 중소기업이 더 싸다. 편의점 시장 4위인 미니스톱은 중소기업에서 납품받아 700원에 삼각김밥을 팔고 있다.



“대기업은 위생 때문이라고 하지만 중소기업이라도 위생이 안 좋다면 시장에서 존립할 수 없다. 오히려 위생 사고가 발생하는 곳을 보면 대기업 계열사인 경우가 더 많다. 위생은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이 막대한 유통망과 제조공장을 가진 대기업을 상대로 경쟁할 수 없는 구조다.“_김호균 도시락식품조합 이사장

“삼각김밥만 보면 화가 치민다”

재벌 계열 편의점들은 호시절을 구가하지만 정작 점주들의 사정은 영 딴판이다. 편의점 본사는 해마다 점포가 늘어 성장을 거듭하지만 가맹점주는 오히려 매출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1월 말 폐점할 계획인 서울 삼성동 훼미리마트 점주 하승재씨는 삼각김밥을 보면 화가 치민다고 했다. 팔다 남은 삼각김밥은 바로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삼각김밥 등 신선식품은 팔다가 남을 경우 폐기 부담을 대부분 점주가 짊어져야 한다. 예컨대 삼각김밥의 공급가격이 500원이라면 폐기할 경우 본사는 20%인 100원만 지원한다. 나머지 금액 400원은 점주가 부담해야 한다. 본사 지원은 한도가 있어 폐기 물량 전부가 지원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폐기가 두려워 물건을 적게 받을 수도 없다. 아예 본사에서 일정량을 정해 공급하기 때문이다.

하승재씨는 “훼미리마트의 경우 삼각김밥 등 신선식품 생산업체와 이를 맡고 있는 유통업체가 계열사여서 상당한 이익을 보장해준다”며 “그만큼 점주 부담은 늘어나는 형태”라고 말했다. 더욱이 급속히 증가하는 편의점은 기존 편의점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하씨는 “최근 2~3년 새 주변에 편의점이 크게 늘어 매출이 줄었다”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월 300만원 이상의 순이익이 났지만 요즘은 100만원대 초반에 그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씨는 8년 전 회사에서 퇴사한 뒤 빚을 내 편의점을 열었지만 다시 실직 상태로 돌아가게 됐다. 폐점도 쉽지 않다. 보통 본사와 가맹점은 5년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이 기간 내에 폐점할 경우 수천만원의 해약금을 물어줘야 한다. 그 해약금은 본사가 일방적으로 정한다.

한국편의점협회는 올해 4550개의 편의점이 늘어나고 1100개가 문을 닫아 총 점포 수가 2만4100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매출액은 11조1600억원으로 2011년보다 13.3%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성장 속도만큼 대기업 편의점 본사와 그 계열사들이 부를 늘릴 것은 당연지사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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