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9년 초 기아차의 카니발이 잦은 고장으로 소비자 불만이 높았다. 정몽구 회장은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차를 가져오도록 했다. 한 달 뒤 품질회의가 열렸다. 회의장 가운데는 카니발이 놓였다. MK(정몽구 회장의 영문 이름 약칭)는 회의를 진행하던 중 불쑥 일어나 차에 다가섰다. 그리고 분필로 슬라이딩 도어 위쪽 창문부터, 시트 밑, 바닥, 천장, 문틈 등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들을 당장 고쳐!” 집에서 밤낮으로 고민하며 문제점들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2. 매년 초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 개최 기간에는 산하 자동차분과위원회가 함께 열린다. 회원은 폴크스바겐·도요타·포드·르노닛산 등 세계적인 자동차 관련 업체의 최고경영자다. 현대차에서는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참석한다. 지난해 포럼 기간에 전년도 자동차분과위 공동의장인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이 정 부회장을 따로 만났다. “올해 자동차분과위 공동의장을 맡아달라.” 정 부회장은 시기상조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10년 만에 ‘글로벌 톱 5’에 올라
두 사례는 현대차가 10여 년 만에 ‘글로벌 톱 5’에 오르는 성공신화를 만든 비결과, 현대차가 변방에서 싸구려 차나 만들던 처지에서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주역으로 올라선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11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을 꼽으라면 재계 2위의 현대차그룹이 단연 돋보인다. 국내외 대표 기업들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고전하는 동안, 현대차는 매월 사상 최대 판매실적을 경신하고 모기업인 현대건설 인수, 30여 년 숙원사업을 이룬 종합제철소의 지속적인 확장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올해 예상 판매량은 650만 대를 넘어, 지난해 574만 대에 비해 76만 대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8% 중반을 넘어서 GM·폴크스바겐·도요타·르노닛산에 이어 5위 자리를 굳힐 것으로 보인다. 2012년에는 중국의 현대차 3공장(연산 40만 대) 완공에 힘입어 사상 처음으로 700만 대 판매와 9% 점유율 달성이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표 참조).
현대차그룹의 비약적 발전은 현대그룹에서 독립한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10여 년간의 실적 추이에서도 확인된다. 매출액은 3.6배, 계열사 수는 4배, 고용인원 1.9배, 자동차 판매대수는 2.4배로 각각 증가했다. 순이익은 무려 11배로 급증했다. 재계 1위인 삼성과의 격차도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표 참조). 현대차그룹의 매출과 순이익은 삼성 대비 2000년에는 각각 27%, 16%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51%와 55%로 높아졌다. 현대차그룹의 12월 결산 9개 비금융 상장사의 올해 예상 순이익은 17조5천억원으로, 삼성그룹 12개 비금융 상장사의 예상치 17조1천억원을 사상 처음으로 앞지를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의 고용인원은 삼성보다 적지만, 실제 고용기여도를 보여주는 고용유발계수(매출액 10억원당 직원 수)는 현대차가 1.42명으로, 삼성(0.75명)의 거의 2배다.
#3.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구에 있는 현대·기아차파사산대리점. 베이징 시내의 20개 대리점 중에서 판매실적 3위의 대형점이다. 정흠(35) 부소장은 중국인들이 현대·기아차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과거에는 일본 차에 비해 품질이 많이 뒤떨어진다는 평이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현대·기아차의 우수한 품질을 인정한다”며 “가격 대비 실용성이 뛰어나고, 디자인이 좋으며, 스타일리시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투싼·위에둥(중국형 아반떼)·베르나 등은 공급이 달릴 정도”라고 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에 대한 외국의 시선은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현대차그룹이 2000년에 “2010년까지 세계 초일류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한다”는 ‘비전 2010’을 발표했을 때도 대부분 코웃음 쳤다. 하지만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중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모두 옛이야기가 됐다. 2010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은 신년호에 ‘자동차업계 최고 강자’라는 표지 기사로 현대차를 다루었다. 도요타의 아키오 사장은 지난 9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폴크스바겐·현대차 등 강력한 경쟁사의 움직임에 대해) 신경 쓰인다”며 “어떤 의미에서 도요타는 이들의 도전자”라고 자세를 낮추었다. 정석수 현대모비스 부회장은 지난 2월 중순 일본 출장에서 만난 미쓰비시자동차 사장에게서 “이제는 현대차를 배워야겠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도요타는 한때 현대차의 벤치마킹 대상이었고, 미쓰비시는 초기에 기술을 전수해준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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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현대차 향후 가장 두려운 존재”
일본 업체들의 발언은 빈말이 아니다. 현대차는 2006년과 2009년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제이디파워’의 신차품질조사에서, 일반 브랜드 부문에서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최고 위치에 올라섰다. 현대차와 도요타에 함께 납품하는 한 부품업체 사장은 “2009년 도요타의 와타나베 사장과 만났는데 ‘현대차의 제네시스를 다 뜯어보니, 우리는 그 원가에 그 정도 품질의 차를 도저히 못 만들겠더라’며 ‘향후 현대차가 가장 두려운 상대’라고 경계했다”고 소개했다. 신종운 부회장은 “2000년 우리가 2010년까지 도요타의 품질을 따라잡는 목표를 세운 뒤 모두가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2004년에 조기 달성했다”면서도 “품질에 관한 한 만족이 있을 수 없고, 방심하는 순간 망한다”고 몸을 낮췄다.
현대차의 성공신화는 세계 자동차업계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로 평가받는다. 또 자동차산업이 전자산업과 함께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양대 축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국가경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조형제 울산대 교수는 “현대차가 외국 기술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해 독자적인 혁신능력의 축적을 통해 세계 유수의 선진 완성차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과정은 한국 경제의 발전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4. “현대차를 지금처럼 만들지 않아야 성공한다.”
MK 회장이 1999년 현대차의 경영을 처음 맡았을 때 한 얘기다. MK는 현대차의 애프터서비스(A/S)와 판매를 담당하던 현대자동차써비스의 사장을 1974년부터 맡아 일하며 ‘자동차를 이렇게 만들면 안 되는구나’ 하고 절감했다고 한다. 차의 품질이 떨어져 잘 팔리지 않고, A/S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가 성공신화의 비결로 ‘품질제일경영’을 꼽는 배경이다. 현대차는 품질경영을 체계화했다. 신차개발·생산·판매·A/S 등 부분별로 나뉘어 있던 품질 관련 기능을 하나로 묶어 품질총괄본부를 발족시켰다. 또 MK가 품질회의를 직접 주관했다. 서울 양재동 그룹 본사 2층에는 글로벌 종합상황실이 있다. 해외 딜러들로부터 품질 관련 불만사항이 접수되면 실시간으로 공장과 연구소 등 해당 부서에 통보해 24시간 내에 처리한다. 또 수십 대의 모니터를 통해 시시각각 전 세계 공장의 생산·판매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일종의 워룸(전시상황실) 구실을 한다.
‘10년 10만 마일 무상수리’로 미국 공략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10년 10만 마일 무상보증수리제’를 본격 시행한 것은 1990년대 말 이후다. 한 임원은 “회사 안에서도 현재의 현대·기아차 품질로는 뒷감당이 안 돼 3년 내에 망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 상당수였지만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현대차의 품질에 대한 자신감으로 소비자에게 비쳐져, 미국 시장에서 ‘저품질의 싸구려 차’라는 이미지를 개선하는 획기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현대차가 최근 자체 조사한 구매자 성향 분석에 따르면, 미국 고객의 연평균 소득은 7만7492달러를 기록했다. 기아차 고객의 연평균 소득도 6만3665달러였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중산층(연간 소득수준 5만~7만5천달러)의 패밀리카로 확실히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연소득 5만달러 이하의 소비자가 주류를 이루던 상황에서 크게 달라졌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재구매율도 올 들어 도요타와 포드를 제치고 업계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중형차 이상의 판매 비중도 60%로 크게 높아졌다.
현대차의 현장중시경영은 품질경영과 동전의 양면이다. MK는 생산현장에 가면 자동차 앞부분의 보닛을 열고 내부를 살펴보는 것이 습관처럼 돼 있다. 10년 전 이를 처음 본 기자들은 “현대차의 품질은 회장이 보닛까지 열어봐야 해결되느냐”고 비아냥댔다. 하지만 현대차의 품질이 세계적 수준으로 높아지자 이런 얘기는 사라졌다. 지난해 8월 미국 앨라배마의 공장장이 갑자기 경질됐다. MK가 생산라인을 돌아보다가 조립된 쏘나타의 보닛을 열어보라고 지시했는데, 공장장이 보닛을 여는 후크를 찾지 못해 허둥댔다. 당시 앨라배마 공장은 역대 최고 성적을 내던 상황이라 일부 동정론도 있었다. 교세라그룹의 창업주로 일본 최고경영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현장에 신의 음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도 늘 “현장에 답이 있다”고 강조했다. MK가 현장 중심의 경영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MK는 미국 유학 시절 자동차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기아차 인수로 ‘규모의 경제’ 실현
현대차 성공신화의 둘째 비결은, 1998년 10월 기아차 인수를 통한 규모의 경제 확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10개가 넘는 플랫폼(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자동차의 기본이 되는 골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수 뒤 이를 통합해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개당 4억~5억달러의 투자비가 들어가는 플랫폼의 수가 줄어드니 비용이 크게 절감됐다. 또 플랫폼 1개당 생산 대수가 크게 증가해 생산 단가가 낮아져 경쟁력이 강해졌다.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은 “플랫폼 통합은 엔진 등 부품 공유, 품질 향상 등 시너지 효과도 컸다”고 말했다.
기아차 인수와 함께 현대모비스가 주도한 부품 모듈화(작은 부품들을 큰 부품 뭉치로 합쳐서 자동차를 만드는 방식)도 품질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정석수 현대모비스 부회장은 “모듈화를 통해 품질 개선, 생산성 제고, 원가 절감 등에서 큰 효과를 거두었다”며 “해외 자동차업체들 중에서 현대차만큼 모듈화를 광범위하게 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기아차 인수 제안자는 당시 사장을 맡고 있던 이계안 전 민주당 의원이다. 정세영 회장 등 경영진이 모두 반대했지만, MK 회장은 적극적이었다. 자신이 경영하던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의 철도 차량과 컨테이너사업, 철강사업인 하이스코와 강원산업 지분까지 모두 포기하며 “나는 자동차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했다. 부친인 정주영 회장에게 자동차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이 한창인 상황에서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려는 양수겸장의 승부수였다. 결과는 적중했다. 이후 현대차는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절대 강자의 지위를 굳혔다. 하지만 그에 따른 독과점 폐해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현대차 성공신화의 셋째 비결은 해외 전략이다. 현대차는 1986년 미국에 엑셀을 수출하던 첫해에 16만 대를 팔아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했지만, 점차 품질관리 미흡과 정비망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급기야 1998년에는 현대차의 미국 시장 판매가 9만 대까지 곤두박질쳤다. 판매 부진에다 수익 악화까지 겹치자 당시 최고경영진은 미국 시장에서의 철수를 심각하게 검토했다. 하지만 새로 경영을 맡은 MK는 “해외시장만이 살길”이라며 수출 총력전을 선언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성공을 못하면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현대차는 이듬해부터 미국 시장 판매량이 배 가까이 늘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와 중소형 차 강점
현대차는 2002년 이후 무역마찰 완화와 환율변동에 대응하려고 중국의 현대·기아차 공장을 시작으로 해외 공장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밀어붙였다. 불과 10여 년 만에 미국·유럽의 전통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인도·러시아·중남미의 신흥시장까지 연결하는 총 308만 대의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완성했다(표 참조).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현대차 중국3공장 등이 모두 완성되는 2~3년 뒤에는 총 해외생산 능력이 400만 대에 육박하고, 국내 공장까지 합치면 모두 750만 대 수준이 된다. 전세계에 골고루 분포한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와 중소형 차에서의 강점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과 유럽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자 진가를 발휘했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도요타가 무리한 해외 확장과 수익성 높은 대형 차 위주로 미국 시장 공략에 올인하다가 위기를 자초한 것과 비교된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행보는 2009년 이후 정반대로 바뀌었다. 해외 딜러들이 공급 부족을 하소연하며 해외 공장의 증설을 요청하고, 현대·기아차 임원들도 확장을 건의했다. 하지만 중국과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동이 걸렸다. 지난 8월 이후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재정위기 악화로 세계경제가 다시 급냉 조짐을 보이자 현대차의 선택은 또 한 번 맞아떨어지게 됐다. 김봉경 현대·기아차 홍보담당 부사장은 “요즘 MK 회장은 ‘나는 끝까지 품질이야. 그래야 디자인도 산다’는 말을 틈만 나면 강조한다”고 전한다. 신종운 부회장은 “도요타가 2010년 판매량 세계 1위를 목표로 내걸고 무리하게 물량 확대 전략을 쓰다가 품질 불량을 자초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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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만 임직원들의 땀과 눈물
현대차그룹의 성공신화는 18만여 임직원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그럼에도 현대차 성공신화는 최고경영자인 MK 회장을 빼놓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현대차 성공의 비결인 품질경영, 기아차 인수를 통한 시너지, 효과적인 글로벌 경영전략 등을 MK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정석수 현대모비스 부회장은 “판단은 신중하게, 결정은 빠르게, 한 번 결정한 뒤에는 무서운 추진력을 보여주는 게 MK 회장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MK 회장의 무서운 추진력이 추동한 현대차 성공신화의 이면에는 사내 하청과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일감 몰아주기, 협력업체를 상대로 한 불합리한 납품단가 인하 등 어둠도 짙다.
현대차그룹의 성공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 환율이 대표적 사례다. 현대차는 2002년 4월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건설을 시작해 2005년 5월 완공했다. 고공행진을 하던 원화 환율은 공장 완공 한 해 전인 2004년부터 하락하더니 2007년에는 달러당 900원대까지 급락해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됐다. 하지만 현대차는 미국 현지 공장 덕에 환율 하락의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도요타가 품질 불량으로 자멸하더니, 지난 3월에는 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태가 터져 일본 업체들의 추격에 제동을 걸었다. 지속적인 엔화 강세에 이어, 지난 10월 타이 홍수로 현지 부품업체들의 공급이 중단돼 일본 업체들은 엎친 데 덮친 꼴이 됐다. 유럽과 미국 업체들도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회복 지연에 발목이 잡혔다.
MK 회장은 지난 12월4일 향후 5년간 저소득층 대학생과 중고생, 농어촌 소외지역 초등학생 등 모두 8만4천 명을 지원하는 대규모 사회기여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그는 이에 앞서 지난 8월 사재 5천억원(글로비스 지분 7%)을 ‘현대차 정몽구 재단’(옛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에 출연하는 결정을 내렸다. 순수한 개인 기부로는 사상 최대 금액으로, 최근 대기업의 사회책임 강화 요구에 부응하는 조처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사회와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리더십을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현대차가 합리적 기간 안에 대주주의 글로비스 지분을 처분함으로써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서로 항소를 포기하기로 했다”며 “삼성은 시민사회와 소통 불능인 반면, 현대차는 대화와 타협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뚝섬 부지에 건물이 지어질 때까지는 경영을 하겠다.”
MK 회장이 한 모임에서 한 말이다. 현대차는 서울 뚝섬 부지에 110층의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를 지을 계획이다. 범현대가에는 ‘빌딩을 짓는 데는 건물 층수에 2를 더한 개월 수만큼 필요하다’는 ‘정주영 법칙’이 있다.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이 기간만큼만 공사 기간을 주었다. 아직 인허가도 안 받은 점을 고려하면 올해 일흔셋인 MK 회장이 향후 10년 정도는 계속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린다. MK는 지난 10년간 마음먹은 일 중에서 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강-부품-자동차-물류-금융 등 자동차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것은 물론, 건설·광고·보험·레저·정보기술(IT) 등 비관련 영역까지 사업을 다각화했다. 어려움이 있었다면 2006년 비자금 사건으로 법정에 서고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일 정도다. 그나마 법원이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내세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경쟁 업체에 비해 연구·개발 역량 미흡
현대차그룹의 향후 10년이 여전히 탄탄대로일지는 미지수다. 당장 시장 상황이 만만치 않다. 4분기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경기의 찬바람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친환경·고연비 차 개발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업체들은 하이브리드(가솔린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친환경 차)·전기차·수소연료전지차(수소를 원료로 전기를 발생시켜 움직이는 친환경 차)·클린디젤차 중에서 각자의 경쟁우위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여러 분야에 골고루 힘을 쏟는 전략을 펴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 역량은 글로벌 업체들에 비하면 미흡한 실정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연구·개발 비용은 16억유로로 도요타(67억6800만유로)의 24%에 불과하다. 연구인력이 8천 명으로 2만 여명을 확보한 도요타의 절반에 못미친다. 정석수 부회장은 “자동차의 전자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데 국내 기술 경쟁력이 낮다”며 “3년 안에 1천 명의 기술인력을 선발할 계획이지만, 향후 연구·개발에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차의 상징인 혼다의 캐치프레이즈는 ‘이것이 혼다’(It’s Honda)다. 유럽차의 상징인 폴크스바겐의 캐치프레이즈는 ‘이것이 자동차’(Das Auto)다. 현대차그룹이 다시 향후 10년간 지속적 발전을 이룬다면 글로벌 세계가 ‘이것이 현대차’(It’s Hyundai)라고 말할 날이 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는 2003년 표지 기사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을 ‘마지막 제왕’(Last Tycoon)이라고 불렀다. 만약 현대차그룹이 향후 10년에도 성공신화를 이어간다면, MK 회장은 ‘코리아의 차신(車神)’으로 불릴 수 있을지 모른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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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의 박승하 부회장은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가격은 포스코와 같고, 품질도 세계 어느 제철소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해 4월 현대제철이 외판재를 2011년부터 양산하겠다고 발표하자, 포스코는 10년은 걸릴 것이라며 의문을 나타냈었다. 박 부회장은 “수익성보다는 품질이 최우선”이라며, 현대·기아차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고품질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를 강조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연산 800만t 규모의 제1·2고로를 잇달아 지어 그룹의 30년 숙원사업인 일관제철소(용광로에 철광석을 넣어 철을 직접 생산하는 제철소) 건설에 성공했다. 현대제철은 공사 중인 3고로가 2013년에 완공되면 조강능력이 2350만t으로 세계 7위권에 올라선다.
현대차그룹이 일관제철소를 지은 이유는.
자동차는 철구조물이다. 전자화 비중이 높아지지만, 궁극적인 경쟁력은 철소재의 경량화와 내구성 개선을 통한 품질과 안정성 제고다. 외부 철강업체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현대차그룹이 직접 개발하는 게 유리하다.
과거 포드의 실패 사례를 들어 우려하는 전문가도 있다. 자동차회사가 철강을 생산하는 곳은 전세계에서 인도 타타그룹과 현대차그룹 두 개뿐이다.
포드의 ‘로즈스틸’은 자동차 강판 의존도가 85%로 지나치게 높았다. 또 포드가 제철소를 직접 운영하다 보니 경쟁력이 떨어졌다. 우리는 전혀 다르다. 현대·기아차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제철소 운영에 전문성을 갖고 있고 기술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대·기아차에 대한 거래 비중은 정확히 얼마나 되나.
올해는 250만~260만t 정도를 공급한다. 현재 현대제철의 연간 조강능력 1950만t을 기준으로 13%에 불과하다. 올해 현대·기아차가 연간 필요한 800만t을 기준으로 보면 32% 수준이다.
현대·기아차에 대한 공급량이 앞으로 늘어나지 않겠는가.
내년에는 300만t, 2013년에는 400만t으로 늘어난다. 이 기준으로 봐도 20%가 채 안 된다.
원래 3고로는 2015년에 건설할 계획이었다.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가. 추가 확장 계획은 있는가.
안정 기간을 거치려 했는데, 예상보다 품질과 조업 안정성이 조기에 달성됐다. 추가 계획은 없다.
과거 포스코에 비해 고로 투자비가 많이 들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투자 시점 차이가 있으니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현대제철의 고로와 전기로는 전세계에서 최신 설비다. 400만t 규모의 3개 고로로 구성돼 있어 설비투자의 효율성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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