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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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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에서도 대안적 삶 살 수 있나요

교사의 열정, 윤리적 삶과 도전의 가치를 일깨운 교육 높게 평가하지만 진로 고민과 불안감 떨치지 못하는 대안학교 아이들
등록 2011-11-23 15:37 수정 2020-05-03 04:26

최민유(27)씨는 대안학교 출신이다. 서울의 한 중견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11년 전 부모의 권유로 한 대안교육 특성화학교에 들어갔다. 입학 경쟁률이 40 대 1에 육박했다. 처음엔 좁은 관문을 통과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잖아 알게 됐다. 자신이 선택된 것은 학교가 선호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스펙’으로 갖고 있어서였다는 것을.

» 지난 11월8일 충북 제천의 ‘꽃피는학교’ 학생들이 점심시간 운동장 주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 지난 11월8일 충북 제천의 ‘꽃피는학교’ 학생들이 점심시간 운동장 주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결속력 높지만 폐쇄적인 재학생 문화

최씨의 부모는 ‘민청학련’ 세대다. 아버지는 ‘부림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치렀다. 어머니도 여성노동자회를 만드는 데 참여했던 운동권 출신이다. 부자는 아니었으나 빈한하지 않았고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야 한다는 세속의 욕망에도 초연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의 가계나 성장 배경도 비슷했다. 1970~80년대 운동권 출신 부모 밑에서 자란 그들은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개성도 강했다.

자라온 환경이 비슷하니 통하는 것도 많았다. 관심이나 고민, 포부가 비슷했다. 학교 품은 따뜻했다. 체벌도 잔소리도 없었다. 교사들은 끊임없이 자신감을 북돋웠다. “너희는 특별하다. 패기 있고 창의적이며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롭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단체 숙식에 따른 스트레스, 시골 구석에 갇혀 있다는 고립감, 자유와 방만의 경계를 넘나들며 흐트러지는 아이들, 일반 학교보다 덜하지만 좀체 근절되지 않는 왕따와 폭력, 진로에 대한 고민. 하나둘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생겨나더군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실망과 회의감은 커졌다. 졸업을 2개월 앞두고 자퇴원을 냈다.

학교를 나와 검정고시를 치른 뒤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단과학원을 다녔지만 뒤처진 공부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6개월간 대입 종합반을 다녔다. “충격적이었죠. 대체 왜 대안학교에선 이렇게 기초적인 내용조차 안 가르쳤단 말인가. 하지만 입시 공부가 싫지는 않았어요. 목표를 높게 잡지 않았으니 부담감이 적었거든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문예창작과를 갔다. 대학생활은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것보다 친구·선배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며 익히는 게 더 많았다. 가끔 대안학교 동기와 후배들을 만났다. 뒤늦게 대학 진학을 준비하거나 이미 대학을 간 친구, 놀면서 할 일을 찾는 후배 등 면면은 다양했지만, 말하고 생각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일종의 우월감이랄까? 만나면 하는 게 다니는 학교 욕하고, 주변 사람 흉보고, 세상일 불평하고. 결속력도 대단해서 대안학교 친구들 모임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왔어요.”

직장생활을 하는 요즘도 가끔 그 시절 친구들을 만난다. 대학원을 다니거나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도 있지만, 다수는 여전히 ‘모색 중’이다. “우린 그 친구들을 ‘홍대 앞 꾸러기들’이라고 불러요. 낮에는 카페에서 알바하고, 저녁엔 모여서 밴드를 하거나 술 마시고. 평범한 생활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도 여전해요.”

그 역시 대안학교에서 보낸 3년을 후회하지 않는다. 교사들의 열정과 헌신성도 높게 평가한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학교가 너무 많은 것을 하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게 돼버리진 않았을까. 입시교육 비판하면서 환경도 생각하고, 자발적이면서 창의적이고, 의식주 스스로 해결하면서 윤리적이기까지 한 학생들을 키우려 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거든요. 꾸러기 친구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요.”

만족과 불안이 공존하는 학교

물론 모든 졸업생이 최씨처럼 대안학교 생활을 비판적으로 회고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학교 경험을 토대로 지역에서 유기농업을 실험하거나,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대안적 삶’을 꾸려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은 한결같이 대안학교에서의 경험이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뜨게 만들고, 윤리적이면서 도전하는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소수다. 대안학교 졸업생들의 나이가 많아야 20대 후반~30대 초반이란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국내 대안학교의 효시 격인 간디고등학교(경남 산청)의 남호섭 교감은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 현황을 두고 대안학교 운동의 성패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졸업생들의 나이가 어린 만큼, 대학을 다니거나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그들의 활동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학교들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학교 운영과 교과과정의 취약점을 부단히 개선해온 게 사실이다. 초창기 불경시하던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을 대부분의 대안학교에선 ‘대안적 삶’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묵인하는 추세다. 일부 학교에선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인터넷 강의 수강 같은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3년 전 1회 졸업생 배출 당시 대학 진학률이 0%였던 충북 제천 간디학교(미인가)도 최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늘어 상황이 달라졌다. 교사 장희숙씨는 “입학 때는 모두가 입시교육을 않는다는 학교 방침에 동의하고 들어오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기수당 2~3명씩은 생겨나고 있다”며 “학교 입장에선 이들을 나 몰라라 방치할 수도, 그렇다고 입시공부를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도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실제 학교에서 만난 6학년(고3) 신지수씨는 “졸업하면 대학에 가서 요리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싶다”며 “3학년생 14명 가운데 진학 희망자가 나 말고도 2명 더 있다”고 귀띔했다. 지수씨가 대학에 가려면 수능시험에 앞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부터 치러야 한다. 같은 학년 조하늘씨는 “졸업하면 파종에서 수확까지 1년 농사를 내 손으로 지어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씨도 진로에 불안을 느끼긴 매한가지였다. “졸업요? 무섭죠. 내처지는 기분이랄까? 학교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학교가 너무 많은 것을 하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게 돼버리진 않았을까. 입시교육 비판하면서 환경도 생각하고, 자발적이면서 창의적이고, 의식주 스스로 해결하면서 윤리적이기까지 한 학생들을 키우려 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거든요. 꾸러기 친구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요.”

엘리트학교가 돼버린 인가학교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안학교 입학을 희망하는 지원자들 다수가 미인가 학교보다는 입시 준비 여건이 양호한 인가학교(대안교육 특성화학교)로 몰리는 추세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실제 몇몇 특성화학교는 학부모 사이에서 명문대 진학이 가능한 엘리트 대안학교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입학 경쟁률이 치솟고, 합격을 위해 별도의 컨설팅까지 받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딸을 경기 지역의 ‘명문’ 대안학교에 보내려다 실패한 공무원 조아무개(49)씨는 “대안학교이면서도 명문대 진학이 가능하고, 졸업생과 학부모 네트워크도 탄탄해 사회 진출에도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욕심을 내봤지만 탈락했다”며 “주변에선 서류전형과 면접을 준비하면서 대안학교 교사들에게 첨삭과 상담을 받은 친구까지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산청·제천=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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