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2월15일 밤 9시10분. 수인번호 55, ‘5사하9방’(5동 아래층 9번 방)에 살던 26살 청년 유홍준(당시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 4학년) 전 문화재청장이 서울 영등포교도소 문을 나섰다. 회색 솜바지 저고리 차림이었다. 밤 9시35분 머리를 빡빡 민 시인 김지하(당시 34살)씨도 출소했다. 김씨는 “종신형을 받았는데 벌써 나오다니 시간이 미쳤든지 내가 미쳤든지 둘 중 하나가 미친 것”이라고 했다. 둘 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형집행정지로 이날 풀려난 것이다.
교도소 자체 편집한 드라마와 뉴스
30여 년이 흘렀다. 2007년 세밑인 12월31일 오후 5시. 영등포교도소 문이 열리고 연말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김성환(53)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걸어나왔다.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을 비판한 책을 냈다가 명예훼손 등의 혐의가 인정돼 5개월형이 확정됐는데, 집행유예 상태에 있던 3년형까지 보태져 감방에서 34개월여를 살았다. 2011년 9월30일 오전 10시 양심적 병역거부자 김영배(29)씨가 서울남부교도소(옛 영등포교도소·2011년 5월 개칭) 문 밖으로 나왔다. 1년6개월의 형기를 석 달여 남겨두고 가석방됐다. 세상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자신이 믿는 정의와 가치와 신념 때문에 교도소에 가게 되는 이들이 있다는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남부교도소는 10월29일 신축 건물로 이전한다. 김영배씨는 옛 영등포교도소 건물에서 출소한 사실상 마지막 병역거부자다. 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건물이 오래되고 시설이 열악한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다고 한다. 일부러 그리로 보내는 것이 아니다. 병역거부를 ‘준비’하는 이들 가운데는 자신의 주소지를 서울남부지법이나 서울서부지법 관할로 옮겨놓는 경우가 있다. 주소지 관할 법원에서 재판을 받으면 법원 관할 교도소에 수감되는데 영등포교도소가 시설은 나빠도 서울 도심에 있어 면회 가기가 편하고 대화할 ‘동료’도 많기 때문이다. 김영배씨도 그렇게 해서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다.
교도소에서 그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아침 6시30분, 수용거실을 향해 달린 스피커에서 법무부의 ‘법질서 로고송’ 음악이 나온다. “법은 어렵지 않아요~ 법은 불편하지도 않아요~ 우리 모두 법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라는 음악이다. 법 때문에 교도소에 갇힌 이들에게 ‘법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다소 가혹한 가사다. 기상을 알리는 음악이지만 수형자들은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난다. 바로 점검을 받고 아침 식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미리 일어나 이불을 개고 청소를 해야 한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하나밖에 없다. 교도소 짬밥 순으로 들어가서 씻는다.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 대신 2~3주 지난 드라마 등을 틀어준다. ‘생방송’이 아니라 교도소 쪽에서 자체 편집을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는데 주인공의 감옥 장면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다. 텔레비전 뉴스도 그날 낮 12시 뉴스를 오후 5시30분에 보여준다. 범죄 관련 뉴스라고 해도 편집하지 않고 대부분 보여준단다. 하지만 ‘탈옥수’ 신창원의 자살미수 사건은 편집됐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아침에는 라디오를 생방송으로 1시간가량 틀어준다. 운동장에는 ‘과격운동 금지’라는 구호가 쓰여 있다. 그래서 축구는 하지 못한다. 하다가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족구나 농구를 한다.
단식으로 ‘먹방’의 창문을 뚫다
기본적으로 온돌 난방은 다 된다. 굉장히 따뜻한 방도 있다. 지난겨울 재수 없게 창문 아귀가 맞지 않는 방에 수용됐는데, 신문지를 말아 틈을 막아도 많이 추웠다. 여름에는 더운 것보다 습한 게 문제다. 웃통을 벗고 지내거나 찬물을 끼얹는다. 의료과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병동으로 쓰이는 8동의 창문이 크고 넓어서 좋았다고 했다. 여전히 열악한 구석이 있지만 시설 면에서는 신축 교도소로 이전하면 상당 부분 해소될 문제들이다.
병동의 창문이 크고 넓은 것은 김영배씨보다 앞서 영등포교도소를 거쳐간 김성환 위원장의 덕이다. 8동은 애초 창문이 없는 ‘먹방’이었다. 김 위원장은 창문 설치를 요구하며 단식을 했고, 교도소 쪽은 그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14개 방마다 100cm×68cm 크기로 창문을 냈다. 김 위원장이 뚫은 창문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김영배씨가 숨을 쉬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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