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의 조종을 받아 전국의 대학생들을 선동해, 폭력혁명을 일으켜 정부를 전복하려 한 반국가단체’라는 ‘민청학련’에 가담한 죄로 내가 받은 형량은 징역 15년이었다. 춘삼월을 갓 넘긴 1974년 4월3일, 약관의 나이에 삼복에 개 끌리듯 끌려와 15년 징역의 대역죄인이 되었으니, 나는 청춘을 고스란히 감옥에 바치고 나서야 1989년 4월 불혹의 나이에 바깥세상을 볼 것이다.
» 음식 칼럼니스트 김학민씨는 서울남부교도소(옛 영등포교도소) ‘출신’이다. 교도소 인쇄공장에서 공문서를 만들던 이들은 자투리 종이를 제본해 수첩을 만들어 썼다. 김씨는 거기에 교도소 생활의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그는 교도소에 있는 동안 읽은 책을 수첩에 기록했는데 모두 97권이었다. <한겨레21> 탁기형
허수아비 재판관들의 폭력적 판결
1974년 4월, 중앙정보부는 내가 구속된 사실을 우리 집에 통지하지도 않았다. 내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안 것은 거의 한 달이 지나서였다. 출감하는 일반 사범에게 어렵게 부탁해, 그 사람이 약국을 경영하는 누나에게 내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구속 중에는 물론 징역형이 확정되기까지 면회는 당연히 금지되었고, 서신 왕래, 도서나 영치금 차입, 집필도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감방에는 교도소에서 준 신약성서가 유일했다.
음식 칼럼니스트 김학민씨는 서울남부교도소(옛 영등포교도소) ‘출신’이다. 교도소 인쇄공장에서 공문서를 만들던 이들은 자투리 종이를 제본해 수첩을 만들어 썼다. 김씨는 거기에 교도소 생활의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그는 교도소에 있는 동안 읽은 책을 수첩에 기록했는데 모두 97권이었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나는 이 신약을 앞에서부터 읽기도 하고, 뒤에서부터 읽기도 하여 20여 번을 통독했다. 또 시간이 나는 대로 양말을 풀어 꼰 실에 매듭을 만들고, 이 매듭에 교도소에서 화장지 하라고 지급한 마분지를 밥풀로 이겨 붙여 묵주를 만들었다. 십자가는 대나무 젓가락을 분질러 양말 실로 단단히 묶었다. 웬일인지 교도관들은 묵주 만드는 것은 그냥 놔두었다.
허수아비 비상보통군법회의 재판관 장군들은 20대 초반의 학생들과 옳으니 그르니 다투기가 창피했는지, 공판 내내 눈을 감고 조는 체하다가 피고인석에서 큰 소리가 나면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 하곤 했다. 중앙정보부의 취조 내용이 그대로 군검찰의 공소장이 되고, 검찰의 공소장이 토씨 하나 안 바뀐 채 그대로 판결문이 되었다. 항소심 격인 비상고등군법회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사법체계 안에서 방어하고 변호하기를 포기했다. 항소심 선고가 있던 날의 풍경이다. 헌병이 재판관 입장 때 기립을 명하자 피고인이 모두 일어나 애국가를 합창했다. 결국 나와 다른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강제로 끌려나온 뒤 궐석재판에서 항소를 기각당했다. 10월4일 항소기각 뒤 일단 상고했으나, 사법적 정의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에 절망한 나는, 10월21일 15년이라는 장기형을 선고받고도 상고를 취하했다.
서울구치소가 옮겨가 안양구치소로 바뀌기 전에는, 1심 확정까지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고, 항소를 하면 안양교도소로 이감을 간다. 그리고 안양교도소에서 항소나 상고가 기각돼 형이 확정되면 다시 전국의 교도소로 이감을 보낸다. 그러나 사형수는 안양교도소에는 사형장이 없기 때문에 ‘편의상’ 서울구치소에 놓아둔다. 군대로 치면 서울구치소는 신병훈련소이고, 안양교도소는 보충대이고, 전국의 교도소는 자대인 격이다.
2사징벌1방의 522번
나도 형이 확정돼 영등포교도소로 이감을 갔다. 11월3일 아침, 박형규 목사, 김지하 시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백영서 연세대 교수 등 10명이 안양교도소 호송버스를 탔다. 온몸이 오랏줄로 꽁꽁 묶이고, 버스 창은 철망으로 가리어져 있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바깥세상 풍경이 신기했다. 영등포교도소에는 긴급조치 1호 위반의 백기완 선생과 김동완 목사, 고영하 등 연세대 의대생들이 먼저 와 자리잡고 있었다.
교도소도 사람이 사는 사회다. 그러나 ‘교도소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이름이 있는 자와 숫자가 이름인 자, 머리카락이 긴 자와 머리를 박박 깎인 자다. 감시하고 부리는 자는 이름으로 불리고, 감시당하고 부림을 당하는 자는 숫자로 불린다. 나도 서울구치소에서는 262번, 안양교도소에서는 1389번, 영등포교도소에서는 522번으로 불렸다. 숫자로 불리는 자는 생활하는 방도 숫자로 표시된다. 2사1방, 2사징벌1방, 3사1방, 5동상5방이 내가 영등포교도소에서 3개월을 살며 거친 감방들이다.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프랑스혁명 때 국민의회에 ‘감옥 개혁안’을 제안했다. 그가 고안해낸 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은, 소수의 교도관이 쉽게 다수의 수인들을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원형 감옥이다. 파놉티콘이 원용돼, 수십 개의 감방을 갖춘 몇 동의 사동을 부챗살처럼 배치하고, 그 부챗살 사동들이 모이는 지점에 전체 보안을 담당하는 지휘소가 설치되는 오늘날의 교도소 건축양식이 태어났다. 일제가 만든 서울구치소는 이 ‘건축양식’대로였지만, 해방 뒤 건축된 영등포교도소는 개개 사동이나 공장이 제멋대로 떨어져 있었다.
영등포교도소 기결수는 대개 교도소 내 공장에 출역한다. 법무부가 쓰는 문서용지나 작은 책자 등을 인쇄하는 인쇄공장, 사무용구 등을 만드는 목공장이 있었고, 공장에 출역하지 못하는 수인들은 하루 종일 감방 안에서 조화를 만들었다. 공장에 출역하면 몇 푼 안 되는 일당도 주었지만, 돈보다는 잠시라도 감방 문 밖을 나올 수 있어서 좋았다. 가장 인기 있던 곳은 목공장이었고, 감방 안에 하루 종일 앉아 일하기 때문에 조화 만드는 작업을 가장 싫어했다.
김지하 시인도 한때 인쇄공장에 출역해, 1975년 석방 직후 이때의 풍경을 ‘지옥1’이라는 시로 지어 발표했다. 내 감방에서도 조화를 만들었다. 나에게는 작업 할당량이 없었지만, 일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혼자만 책 보기가 거시기해 하루 몇 시간은 다른 수인들의 조화 작업을 도왔다. 인쇄공장에 출역한 기결수들은 자투리 종이로 메모장이나 작은 노트를 만들기도 했다. 나도 어렵사리 작은 노트를 얻어 구속돼 영등포교도소에 오기까지를 일지로 정리해놓았는데, 이 노트 때문에 37년 전 영등포교도소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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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들의 고담준론 오가던 곳
나쁜 일에도 좋은 것은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의 ‘3대 구라’로 백(기완)구라, 방(배추)구라, 황(석영)구라를 꼽는다. 그런데 요즘에는 유(홍준)구라도 세간의 입에 오른다. 박학다식, 고담준론의 입담으로 치면 김지하 시인도 어느 구라에 못지않다. 한곳에 백기완·김지하·유홍준이 모였으니, 이들이 함께하는 자리이면 그야말로 고담이 동서를 넘나들고 준론이 고금을 오르내렸다.
교도소 쪽은 우리가 사식을 신청하면 간이식당에서 함께 먹도록 허용했다. 1975년 김지하 시인이 반공법 위반으로 재구속되었을 때, 검찰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장일담’ 시작 메모는 이때 사식 먹는 자리에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다. 김지하 시인이 ‘구라’를 독차지하면, 이를 참다 못한 백기완 선생이 “지하야, 나도 이야기 좀 하자!”고 한 소리 던지는 것이 그때의 풍경이다. 나를 키운 8할은 그 시절 영등포교도소에서의 독서와 그분들과 함께한 ‘구라의 향연’이었음을 지금도 믿는다. 그리울진저, 영등포교도소, 내 청춘의 시절이여!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프레시안 음식문화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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