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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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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 45%의 우울

평균 실업률 21.2%, 청년 실업률 45%…
비정규직으로 떠돌다 해고 당하는 스페인 젊은이들
등록 2011-10-13 10:45 수정 2020-05-03 04:26

지난 7월 첫딸을 순산한 엘리사벳 바르셀로(33)는 임신 초반이던 지난해 10월, 정부의 신생아 보조금 2500유로(약 300만원) 지원제도가 2011년부터 폐지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1년짜리 계약을 맺고 다니던 회사에서는 동료 7~8명과 함께 해고를 당해, 산후 휴가 4개월이 끝나는 11월 중순부터는 실업수당을 받게 됐다. 바르셀로는 산휴 뒤에 바로 출근했으면 3개월짜리 딸을 한 달에 500유로 하는 탁아소에 보내야 했을 거라고 안도하다가도 새 직장을 구할 생각에 까마득해진다.

“경력은 쌓여도 월급은 줄어”
스페인의 신문에는 거의 하루도 ‘위기’라는 단어가 지면에서 빠진 적이 없다. 1980년대부터 관광업과 함께 발전한 건설업에 의존해 성장해온 경제의 거품이 꺼지자 건축시장이 얼어붙었다. 스페인의 경제 기반인 중소기업 도산이 속출했고, 올해 상반기 평균 실업률 21.2%, 청년 실업률은 45%, 실업수당 수급자 483만 명 등 최악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평균 실업률이 9.4%, 재정위기를 겪는 그리스의 평균 실업률이 15%인 것과 비교하면 그 심각성이 드러난다. 이 우울한 현실은 지난 5월 스페인 전역의 젊은이들이 정치·사회 개혁과 일자리를 요구하며 광장 등에서 노숙시위를 벌인 이유 중 하나다.
지난 5~6월 카탈루냐 광장의 시위에 여러 번 참여한 에두아르도 카탈란(32)은 역사학을 전공하고 4개 국어를 하는 역사책 에디터였다. 디지털 교과서와 시사 잡지의 역사 인포그래픽 자료집을 편찬했지만 지난 7월 프로젝트 종료와 함께 500만 실업인구에 합류했다. 3개월 동안 30여 곳의 출판사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카탈란은 “비정규직으로 떠돌다 보니 경력은 매해 다양해지는데, 경제위기를 핑계로 월급은 줄어들고 있다. 친구들 중에도 1~2년 이상 같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없지만, 그렇게라도 옮겨다닐 수 있으면 다행”이라며 “경제위기는 정부와 은행의 무책임으로 초래됐는데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경제위기의 주범들이 엄청난 퇴직금을 받으며 물러나는 건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카탈루냐 주지사에 당선된 아르투르 마스는 취임하자마자 복지와 교육 관련 예산을 대대적으로 삭감했다. 바르셀로나 시내 병원의 의사와 교사, 학부모들은 거리행진으로 반대 의사를 표했지만 공공기관의 부채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받아들여야 하는 분위기다. 마스 주지사는 주정부 보유 차량도 절반으로 줄이고, 주정부 고위 공무원 350명의 크리스마스 보너스는 지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샤비에르 트리아스 바르셀로나 시장도 예산 삭감에 동조해, 취임한 지 석 달 만에 고위 공무원의 월급을 23% 삭감하고 비정규직 직원의 20%를 해고했다. 보통 일주일 동안 진행하던 바르셀로나 최대의 축제 ‘메르세’도 나흘로 줄여 분위기가 예전만 못했다.

백지 투표로 불만 드러내
스페인 정부는 내년 1월에 예정됐던 총선도 새 총리가 업무에 빨리 전념할 수 있도록 11월20일로 두 달이나 앞당길 만큼 경제회복에 대한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총선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커 보이지 않는다. 공립고등학교 교사 조셉 마리아 마르티네스(35)는 6월에 카탈루냐 광장을 점령했던 시위대가 해산한 뒤 매주 소규모로 열리는 토론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마르티네스는 “정치인들이 우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대안도 없다”며 “총선 때 ‘백지표 시민당’ 운동에 동참해, 투표에 참여하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한편 백지 투표지를 내서 국민의 불만을 전달하려 한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스페인)=유동연 통신원 dongyeon.y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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