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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떼먹은 귀뚜라미?

귀뚜라미문화재단, 그룹 임직원에게 학자금 지급해 세금 탈루 의혹 일어… 본사 영업비도 재단 비용으로 처리 논란
등록 2011-10-06 11:20 수정 2020-05-03 04:26

“함께 사는 사회 귀뚜라미가 세상을 1℃ 높이겠습니다.”
귀뚜라미그룹의 사회공헌 모토다. 사회공헌 활동으로 진정으로 이웃을 생각하며 함께 나아가는 활동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귀뚜라미그룹은 이를 실현하겠다며 1985년 귀뚜라미문화재단을, 2003년 귀뚜라미복지재단을 세웠다.

» 2009년 귀뚜라미그룹의 인트라넷에 게시된 문서에는 고등학교 학자금 정산을 귀뚜라미문화재단에서 한다고 돼 있다.

» 2009년 귀뚜라미그룹의 인트라넷에 게시된 문서에는 고등학교 학자금 정산을 귀뚜라미문화재단에서 한다고 돼 있다.

장학금으로 받으면 면세돼

귀뚜라미문화재단은 오랫동안 청소년들에게 많은 장학금을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누리집에는 장학사업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친 장학생들에게 1985∼2005년 186억3430만원을 3만3590명에게 지원했다고 명시돼 있다. 이런 활동으로 최진민 회장은 2001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하지만 문화재단의 장학금이 지급 대상으로 명시된 ‘소외계층’에게만 전달된 것은 아니다. 상당액의 장학금이 회사 임직원의 자녀 학자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확보한 귀뚜라미 내부 문서를 보면 귀뚜라미 계열사 임직원의 학자금을 문화재단에서 정산했다. 2009년 귀뚜라미그룹의 인트라넷에 게시된 문서는 임직원 자녀인 고등학생 학자금을 반기 단위로 6월과 12월에 정산하고, 지급은 귀뚜라미문화재단에서 한다고 나온다. 이 내부 문서의 열람 범위에 귀뚜라미홈시스, 귀뚜라미범양냉방, 신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귀뚜라미의 전직 고위 임원은 “모든 그룹 계열사의 임직원 학자금을 문화재단에서 수년간 정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귀뚜라미 방혜정 홍보팀장은 “2009년에 한해 사내 복지기금이 고갈돼 문화재단의 도움을 받았다”며 “재단의 문제제기로 2010년부터는 각 계열사에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뚜라미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문화재단 비용을 이용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임직원 처지에서 보자면, 회사에서 자녀 학자금을 지원받으면 수입으로 잡혀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회사가 장학금 형식을 빌려 학자금을 지원하면 임직원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회사 또한 그 비용만큼 문화재단에 기여한 형식을 빌리면 세금이 면제된다.

회사 접대비와 세금을 아끼려?

여기에 일부 장학금이 귀뚜라미그룹과 일로 얽힌 보일러 업계의 관계자들에게 지원돼 기업이 부담해야 할 영업비를 문화재단이 부담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문화재단은 누리집의 ‘재단뉴스’를 통해 올해 초 장학금 지급 사실을 공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좀 이상하다. 재단뉴스를 보면 “열관리 시공 및 보일러 설비 관련 협회 자녀와 자치단체 및 학교에서 추천받은 소년·소녀 가장과 모범학생 570명을 대상으로 모두 3억6천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돼 있다. 귀뚜라미그룹과 일로 얽힌 열관리 시공 및 보일러 설비 관련 협회의 자녀들도 재단의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재단이 장학금 지급대상으로 명시한 ‘소외계층’이라는 걸까?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역시 재단뉴스를 보면 “이번 행사는 (중략) 2011년 신제품인 트윈알파 가스보일러, 경판식 기름보일러, 펠릿보일러, 하이브리드 화목보일러, 1등급 에어컨 등을 소개하기 위해 홍보용 탑차 5대를 활용해 시연 및 체험 코너를 마련하였다”고 돼 있다. 장학금 수여 행사장에서 회사 제품 홍보 행사를 했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전직 임원은 “보일러 시공업자에게 회사가 영업비로 써야 할 돈을 장학금으로 둔갑시켜 문화재단 자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회사에는 접대비 한도가 있는데, 한도가 넘을 경우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내야 한다. 만약 귀뚜라미가 장학금 지급 형식을 빌려 영업활동을 펼쳤다면, 회사 접대비는 물론 세금도 아낄 수 있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귀뚜라미 쪽은 “보일러 시공업자들이 형편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이들에게 장학금을 준 것”이라며 “홍보 역시 이왕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새 제품을 선보인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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