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코앞이다. 보름 뒤면 그들이 몰려온다. PC방도 노래방도 깨어 있으라.
괜히 긴장하는 게 아니다. 지난해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조사해보니, 우리나라 남자 초등학생 90%가 게임을 한단다. 이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물어보니 여자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단연 노래방이었다. 대한민국 초딩은 바쁘다. 통계청의 2009년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은 평일엔 놀 시간이 평균 2시간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중 40분을 인터넷이나 게임을 하며 보낸다. 아이들은 놀면서 큰다. 이러다 우리 아이들이 스타크래프트 왕국을 떠받치는 저그나 프로토스나 테란족으로 자랄라. 불안한 부모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놀기 위해 나섰다.
체험전, 놀이시장의 새로운 유망주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를 둔 조혜영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주말이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공연, 전시, 체험활동을 찾아다닌다. 같은 반 친구 부모들도 뜻이 맞아서 5~7 가족이 함께 놀이 학습을 떠난다. 덕분에 조씨는 전시·공연 인터넷 예매 사이트인 ‘쑥쑥닷컴’의 최우수 고객이 되었고, 아이와 놀았던 경험을 살려 체험학습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다.
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마다 방학마다 아이와 놀려고 집을 나서는 부모들로 놀이시장이 뜨겁다. 방학이 되면 아동극 공연은 15만~20만 명을 끌어 모은다. 은 지난 10년 동안 100만 명의 관람객이 들었고, 는 20만 명이 관람했다. 은 관객 20만 명을 동원했고, 지난여름 공연한 에는 12만 명이 왔다. 인터파크에서 예매 순위 50위권에는 어린이 공연 7편이 올라 있다. 놀이시장의 새로운 유망주는 ‘체험전’이다. 쑥쑥닷컴 전시 체험전 예매 순위를 보면, 2010년 2월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로 문을 연 키자니아에는 1년간 75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키자니아는 문화방송이 투자법인을 세워 멕시코의 테마파크를 들여온 것이다. 9748.06m²(약 3천 평) 규모의 터에 90여 가지 직업체험을 위해 실제 방송사 스튜디오, 비행기, 피자가게에서 사용하는 기자재들을 그대로 들여놓았다. 한국방송도 어린이들에게 방송사를 견학하게 하는 직업체험전을 열었다. 예전엔 신문·방송 등 언론사 세계를 알려주는 정도였다면, 이제 애니메이션은 물론 라디오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현장까지 보여준다. 뽀로로를 앞세워 교육방송이 장악하고 있던 체험전 시장에 문화방송과 한국방송도 뛰어든 셈이다.
어린이 체험전 시장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인기 있는 체험전들을 보면 파티시에 체험부터 국회, 과학, 농촌, 불교, 다문화 체험 등 없는 게 없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나서는 이유도 역사와 현재를 고루 몸으로 체험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조혜영씨는 “아이가 역사적 인물을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이 보람”이라고 했다. “자주 아이를 데리고 나서면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아이가 공공질서를 몸에 붙이게 되는 것도 좋다”고도 덧붙였다. 초등학교 1학년, 4학년 아이 둘을 키우며 1년에 100회 가까이 전시·공연을 다녔다는 경기도 광명시의 이경아씨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들면 소통이 어려운데, 공연·전시를 함께 보며 놀면서 가르치니 쉽게 말이 통한다”고 했다.
초등 4년, 부모보다 또래 친구
부모 마음만큼 아이들도 잘 놀았을까. 이경아씨는 “많은 곳을 데리고 다녔는데 정작 아이가 두고두고 기억하는 일은 집에서 친구들과 모여 손발에 도장 찍고 물감 찍으며 놀았던 일이더라”며 “좋은 프로그램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맞춰 잘 놀아주는 일인 듯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무얼 하며 부모와 놀고 싶을까? 서울 강북의 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적어보라고 했다. 부모님과 밥 먹고, 춤추고, 술래잡기하고, 가위바위보하고, 멍하니 하늘 쳐다보면서 놀고 싶다고 했다.
물론 잘 놀아본 아이들은 부모와의 사이를 살갑게 여기고 간직하고 있는 기억도 많다. 소흘히 여길 수만은 없다. 게다가 곧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아이가 4학년에 들어서면 부모와의 놀이보다 또래 친구들과의 놀이를 찾는 일이 많다. 4학년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부모님과 여행 가고 싶다고 했고, 6학년 아이들은 캠핑과 여행 외에는 “없다”거나 대답하지 않았다. 한 6학년 아이는 “이젠 부모님과 놀기 싫어요, 부담스럽단 말이에요”라고 대놓고 말했다. 일찍 사춘기가 찾아오는 것을 고려하면 놀이 상대를 바꿀 시기다. 이경아씨는 부모가 책임지던 놀이를 이젠 학교에 맡겨보란다. 이씨는 “학원을 많이 보내야 해서 학교에서 하는 청소년 활동은 못 시킨다거나, 맞벌이라서 학교 활동을 몰라서 못 보내는 부모가 많다”며 “아이들이 또래와 단체 속에서 놀이문화를 찾을 수 있도록 학교 활동에 많이 참여시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공교육이 문화·사회 체험을 제대로 못 시킨다면, 아이들이 공교육 속에서 잘 못 논다면, 그건 공교육 책임일 터. 부모들이 더 많이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차피 아이들의 마음은 밖으로, 밖으로 향한다.
십수년 전인 1997년 부산·밀양 시내 초등학생에게 ‘방과 후에 어디서 노냐’고 물어봤더니, 240명 중 166명이 ‘집에서 논다’고 했다. 다음으로는 친구 집과 마을 놀이터가 있었다. 오락실은 2%에 불과했다. ‘뭘 하고 놀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그저 ‘친구랑 같이 놀고 싶다’는 답이 25%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엔 오락, 고무줄놀이, 롤러스케이트 타기였다. ‘부모님과 놀고 싶다’는 답도 7%였다.(‘초등학교 아동의 놀이 실태 및 개선 방안’, 박삼선·1998)
10년 새 초등학생의 놀이 세상은 확 달라졌다. 집이 가장 많았지만 비율은 부쩍 줄었다. 27.5%였다. 그다음은 노래방, 학교 운동장, 학원, PC방이었다. ‘주로 어떤 놀이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컴퓨터 게임(39.5%)이나 TV 보기(32.4%)에 치우친 것으로 나타났다. 축구와 야구 같은 여럿이 놀기보다 혼자 노는 비율이 부쩍 늘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초등학생의 놀이활동 실태 및 요구 분석’, 부산대학교 교과교육학 연구·2007)
4학년은 ‘지탈’, 6학년은 ‘왕게임’놀이는 트렌드다. 또래끼리 만나면 무얼 하며 놀까? 이 물어보니 초등 2학년 아이들은 지난봄 얼음땡과 술래잡기, 딱지놀이를 많이 했다. 4학년 아이들은 자기들은 딱지놀이 같은 건 초등학교 들어오기 전에 다 뗐다고, 이젠 유치해서 안 한다고 주장한다. 4학년 아이들 설문에선 ‘지옥 탈출’이 압도적이다. 선생님께는 ‘지탈’이라고 말씀드리고, 자기들끼리는 ‘지랄’이라고 부른다. 술래가 눈을 감고 다른 아이들을 잡는 술래잡기다. 그런데 지탈을 유행하는 놀이라고 하면 이젠 중딩의 세계로 가려던 초딩 6년차가 울컥한다. 6학년은 카드게임이나 보드게임, 체스를 즐기는 나이다. 교실 놀이의 대세는 ‘왕게임’이다. 왕이 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심부름을 시켜야 한다. 신하가 된 사람들은 아주 곤란한 일도 해야 한다. 이를테면 여자아이에게 가서 “널 좋아했어” 고백도 해야 한다.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들 놀린다. 진정한 6학년이라면 이쯤은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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