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등 박지영
‘천사’라는 말을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무엇일까. 따뜻함, 자애로움, 깨끗함, 그리고 해맑음 이런 것들이 아닐까. 천사를 만난 이야기를 공모한다는 것을 듣고 바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를 만난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내가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수련하고 있던 2004년이다. 그해 10월 나는 내과 담당 인턴이었다. 대학병원 내과 환자는 대다수가 암 환자였고, 그것도 대부분 다른 병원에서 혹은 다른 과에서 치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말기암 환자였다. 인턴인 나는 새벽에 일어나 수십 명의 채혈을 하고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엄청난 양의 드레싱(소독)을 하느라 정신없었다. 복수가 차 배가 부어 숨을 헐떡이는 환자의 복수천자(복수를 제거하기 위해 복강 내로 바늘을 삽입하는 것)를 해야 했고, 변을 보지 못해 간성혼수(중증 간질환으로 일어나는 의식 상실 상태)에 빠진 환자는 4시간마다 관장해주어야 했으며, 상태가 안 좋은 환자가 생기면 중환자실로 옮기기까지 약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동맥 채혈을 해야 했다. 한마디로 일에 허덕여 환자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의사로서 당연히 지녀야 할 환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기엔 내 자신을 긍휼히 여길 여유조차 없었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첫 일주일간은 환자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마음도 안 들었다. 얼굴보다는 몇 호실 몇 번 침대로 환자를 기억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질 무렵, 한 여자 다인실 병실이 다른 병실과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우선 들어가면 환자들이 웃고 있었다. 말 그대로, 말기암 환자들이 모인 암울한 병동에서 웃음소리를 듣는 건 약간은 민망한 일이었음에도, 그 병실의 보호자도 아닌 환자들이 웃었다. 모여서 과일을 깎아 먹으며 자신의 상태와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수다를 떨며 웃는다. 내가 알고 있는 그 환자들의 상태는 웃을 만큼 희망적이지 않았다.
그 방 환자 중에 바로 그녀가 있었다. 말기 유방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던 스물다섯의 그녀. 당시의 나와 동갑인 그녀는 내가 가면 “인턴 선생님,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하면서 가운 주머니에 오렌지 주스며 피로회복제, 과자, 사탕 등을 넣어주었다. “어제 잠은 제대로 잤어요? 소독하느라 힘드시죠?” 하며 인사하기도 했다. 그녀의 한쪽 유방은 암이 이미 피부 밖으로 자라나와 끔찍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부위를 매일 소독해야 했다. 첫날, 자신의 환부를 나에게 보여주기 전 그녀는 나에게 “선생님, 죄송해요. 이런 일 하시게 해서”라고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그 말을 듣고 “뭘요. 원래 제가 하는 일인데요. 괜찮아요” 하고 응수했지만, 솔직히 놀랐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고, 오른쪽 유방은 암덩어리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녀는 너무나 밝았다. 항상 웃으면서 나를 맞아주었고, 다른 환자들에게도 눈을 반짝이며 농담을 던졌다. 그 병실의 나머지 환자들은 그녀를 “아가야~”라고 불렀다. 어머니 나이뻘인 환자들에게 그녀가 부탁했단다. 그 방의 막내딸을 자처해 환자들의 잡다한 심부름을 하고, 옆 환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의 일인 듯 나섰다. 피로하고 힘든 나도 그 방에 들어가면 그녀와 나누는 얘기와 장난스러운 눈빛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같이 장난치며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10월 마지막주 어느 날, 항상 밝고 웃는 얼굴이던 아름다운 그녀는 암이 뇌로 전이돼 의식이 없어졌다.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많은 환자들이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호흡까지 문제가 생겨 중환자실로 옮겨간 이후 몇 주를 의식 없는 상태로 버티다가 끝내 그녀는 원래 자신이 속한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사람의 웃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파되는지 보여주었던 그녀. 장난기 어린 눈으로 어느 순간에도 충실하게 즐거워한 그녀가 정말 천사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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