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굶기기’란 말이 있다.
미국에서 재정 전략의 하나로 종종 등장하는 표현이다. 특히 미국의 시장주의자들이 감세 정책을 주장할 때 주로 쓴다. 말의 유래는 인도의 호랑이 사냥법이다. 사냥꾼들은 호랑이를 잡으려고 깊은 함정을 판다. 눈먼 호랑이들이 종종 함정에 빠져든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함정 속 호랑이라도 우리 속에 가두지 않으면 시장에 내다 팔 방도가 없다. 사냥꾼은 이럴 때 ‘야수 굶기기’에 들어간다. 호랑이를 오래 굶긴 다음 우리 속에 먹이를 넣어둔다. 굶주린 호랑이는 별수 없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된다. 간단히 호랑이를 생포하는 방법이다.
감세, ‘야수 굶기기’식 재정정책미국의 감세론자들에게 호랑이는 ‘세금을 마구 낭비하는 정부’다. 국가가 먹이(세금)를 쫄쫄 굶어야 비로소 ‘작은 정부’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말이 가장 잘 통하던 때는 1980년대 도널드 레이건 집권기였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야수 굶기기’식 재정정책을 더 쉽게 설명했다. “사치하는 아이의 버릇을 고치려고 하면,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간단히 용돈을 줄이는 방법으로도 버릇을 고칠 수 있다.”
출범 초기부터 작은 정부를 주창하던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의 알짬은 감세였다. 세율을 낮춰 시장의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MB노믹스’의 핵심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감세 정책은 ‘부자 감세’라는 비난을 샀지만, 정부는 ‘적하효과’를 들어 감세 정책을 정당화했다.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란, 감세를 통해 먼저 혜택을 본 대기업과 부유층이 투자나 소비를 늘리면 그 효과가 하류 계층에게도 번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삼성에서 세금을 덜 거둬 삼성이 벌이가 늘면 투자도 많이 해 일자리도 늘리게 된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늘고 서민의 수입이 늘면 과세 수입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세수도 늘어나니 나라 살림에도 보탬이 된다. ‘성장’과 ‘분배’, ‘재정 안정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전략이 된다. 잘되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정부의 전략이 성공했을까. 이를 둘러싼 논쟁이 결국 최근 돌고 있는 감세 철회 논란의 핵심이다. 답은? 가장 정확한 설명은 ‘아직은 알 수 없음’이다. 이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감세 정책이 우리 경제에 끼친 영향은 헤아리기 쉽지 않다. 다수의 경제전문가들이 감세 정책 평가에 조심스러운 까닭이다. 감세 정책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 경제성장, 분배, 재정 안정성을 들 수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감세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세 가지 기준을 둘러싼 몇 가지 정황이 있을 뿐이다. 물론 정황 속에서 인과관계의 윤곽은 아련하게 드러난다. 하나씩 짚어보자.
먼저 경제성장 효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표는 매우 긍정적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6.1%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터키(7.8%)를 빼곤 가장 높다. 2007년 말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에도 우리나라 경제는 꾸준히 플러스 성장을 했다.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활약이었다. 여기에서 감세 정책의 공을 무 자르듯이 단언하기는 힘들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대체로 주류 경제학자들은 감세 정책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감세를 통해 경제성장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법인세 감세는 기업의 투자 증대로 이어지고 곧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고 풀이한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경제학)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그는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이른바 ‘부자 감세’ 바람이 불었지만 실제로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룬 실증적인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안개처럼 퍼지는 감세 회의론
최근의 국내 연구는 감세의 긍정적 효과를 지지한다. 2009년 한국경제연구원은 법인세를 3%포인트 깎아주면 국내총생산(GDP)이 0.48~0.59%포인트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또 올해 초 조세연구원도 법인세를 5%포인트 깎으면 GDP가 0.4~1.2%포인트 늘어난다고 풀이했다. 물론 두 연구 모두 이론적 분석에 따른 것이지, 감세 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싱크탱크이고, 조세연구원은 국책연구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이인호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감세 효과는 시기마다,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 일반화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감세 기조를 유지하려면 실증적 숫자를 내놓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정부가 감세 정책의 성적표를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직접 공개해 보이라는 말이다. 물론 정부는 아직 그런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여권에서 소장파로 분류되는 정 의원은 지난해 말 문화방송 라디오 에 나와서 “수차례 정부에 (감세의 경제효과를 분석하는 자료를) 요구했지만, 정부가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당 거물 인사조차 감세 효과를 확인할 근거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올해 들어 정 의원은 감세 철폐론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내년으로 예정된 추가 감세를 철회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 법률안을 지난 5월4일 대표 발의했다. 경제성장에 대한 감세 효과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감세 회의론’이 안개처럼 퍼지고 있다.
둘째, 감세가 분배에 끼친 영향은 어떨까. 앞서 조세연구원도 올해 연구에서 감세가 소득분배에는 악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법인세 5%포인트를 줄일 때 생기는 효과를 분석한 결과, 소득불평등 수준을 가리키는 지니계수가 0.3407에서 0.3414로 소폭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니계수는 0~1 사이를 오가는데, 1에 가까울수록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한다는 뜻이다. 즉, 법인세를 낮추면 가진 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가지게 된다.
또 법인세를 줄여서 기대되는 혜택 7조7800억원 가운데 생산 부문이 83%(6조5500억원)를 가져가고, 소비 부문은 나머지 17%(1조2300억원)의 혜택을 받게 된다. 생산 부문 가운데서도 노동이 취하는 몫은 7200억원이지만, 자본은 5조8300억원을 챙기게 된다. 결국 법인세 감세 혜택은 주로 자본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뜻이다. 좀더 들여다보면, 감세는 심지어 자본도 규모에 따라 차별했다(표 참조). 법인세율이 5%포인트 줄 때, 매출액 10억원 미만 업체의 자본에 돌아가는 이득은 0원이지만, 매출 1조원 이상 업체에 돌아가는 몫은 3조6천억원인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 대자본들이 실제로 받은 혜택은 얼마나 컸을까. 국내 10대 기업의 매출 증가를 보면(856호 표지이야기 ‘대기업의 넘쳐나는 부가 서민에게 흐르지 않는다’ 참조), 대자본의 비약적인 성장에 눈이 부실 정도다. 삼성전자, 현대차, SKT, LG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10개사의 전체 매출액은 2007년 206조원에서 2010년 309조원으로 3년 사이 50% 증가했다. 액수 기준으로는 103조원이나 늘었다. 삼성전자는 매출액이 3년 동안 거의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10개 기업의 영업이익도 지난 3년간 19조원에서 31조원으로 63%(12조원) 급증했다. 10대 기업은 매출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는 뜻이다. 정부의 감세 효과는 저금리나 고환율 같은 다른 친기업적 정책들과 함께 대기업의 실적을 도와주는 주요한 변수였다.
그렇다면 대기업이 쌓은 막대한 부가 정말 아래로 흘러내렸을까. 안타깝게도 그렇게 보기 힘들다. 수치들은 정부의 기대를 배신했다. 지난 3년 사이 10개 대기업의 전체 종업원 수는 지난해 말 현재 26만3404명으로 3년 전의 24만6312명에서 6.9%(1만7092명) 늘었을 뿐이다. 매출액 10억원당 고용 인원을 보여주는 ‘고용유발계수’는 오히려 평균 1.08명에서 0.84명으로 줄었다. 대기업들은 매출과 이익 증가로 성장한 것만큼 고용을 늘리지 않았다. 대기업으로 흘러간 부는 흘러내리지 않고 고였다. 대기업의 ‘나 홀로 성장’은 다른 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GDP는 2007년 957조원에서 2010년 1042조원으로 8.95% 성장했다. 10대 기업의 같은 기간 매출액 증가분(103조원)은 나라경제의 생산 증가분(86조원)보다 오히려 컸다. 뒤집어 말하면, 10대 기업을 제외하면 다른 기업 또는 가계의 생산 규모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쯤 되면 동반성장이 아니라, 대기업의 ‘독식성장’이다.
감세 정책이 지닌 고약한 역진성은 새로운 사실은 아니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09년에 낸 보고서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연구원은 “법인세 감세에 따른 약간의 형평성 약화는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실제로 ‘충분히 보완’했을까. 복지예산은 감세가 파놓은 불평등의 골을 메웠을까. 그렇지도 않다. 저소득층에게 불리한 감세 정책을 펴면서 복지예산 증가율은 오히려 줄었다. 2006~2009년 해마다 10%를 넘던 복지예산 증가율은 지난해 8.8%로 떨어졌고, 올해에는 6.6%로 줄었다. 조세정책과 복지정책 모두 ‘부익부 빈익빈’을 부채질했다. 정부가 말한 적하효과는 자리잡을 곳이 없었다.
셋째, 감세가 나라 금고에 끼친 효과다. 감세는 일단 세입에 영향을 준다. 소득세와 법인세의 변화 추이를 보면, 소득세는 감세 정책의 효과로 2008년 36조원에서 2009년 34조원으로 떨어졌다가, 지난해 다시 37조원 수준을 회복했다. 법인세 신고분은 2008년 39조원에서 2009~2010년 연속해서 35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 덕에 소득세와 법인세의 세입은 2008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향은 앞선 노무현 정권 시기와 대조적이다. 소득세는 2003~2007년에는 21조원에서 39조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법인세도 같은 기간 26조원에서 35조원으로 대폭 늘었다. 이번 정권 들어 감세로 세수가 줄어드니, 당연히 나라 살림은 쪼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증세, 경기침체와 양극화 해법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정부의 ‘관리대상수지’를 보면, 2008년 이후 적자폭이 크게 늘었다. 적자 규모는 2008년 15조6천억원, 2009년 43조2천억원, 2010년 13조원에 달했다. 최근 3년간 관리대상수지의 GDP 대비 적자비율은 1.1~4.1%다. 참여정부 5년간 GDP 대비 적자비율(0.4%)보다 훨씬 크다. 그만큼 나랏빚이 늘어나게 된다는 뜻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는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어섰다. 박시백 서울시립대 교수(조세학)는 “감세를 하면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재정 적자가 커지는 단점이 있다.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증세를 고려해야 한다. 경기침체로 양극화가 가속화하고 정부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감세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감세로 생기는 구멍을 복지예산을 깎는 등 지출을 줄이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OECD의 경제전망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일반 정부 지출 비중은 2009년 31.9%로 정점을 찍은 뒤 2012년 27.3%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OECD 평균 일반 정부 비중은 매년 40% 안팎이다.
감세를 둘러싼 우리나라의 풍경을 보면, 한국에서도 시장의 몫을 키우려고 정부가 세수와 세출을 죄는 한국판 ‘야수 굶기기’가 진행되고 있다. 굶주리는 호랑이 주변의 희미한 정경에 초점을 정확히 맞추면, 또 하나의 주인공이 시야에 또렷이 들어온다. 야수를 굶겨서 득을 보는 사냥꾼, 대기업들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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