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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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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자살, 숨죽인 죽음의 비명

두번 자살시도했다 살아난 김금희씨의 ‘심리학적 부검’ 통해 경제적 곤궁과 노인자살의 연관성을 살펴본 ‘죽음의 한 연구’
등록 2011-05-10 17:35 수정 2020-05-03 04:26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숨죽인 죽음이 비명을 지른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09년 자살한 65살 이상 노인은 4071명이었다. 2008년 80대 이상 노인 인구 자살률(10만 명당 자살자)은 112.9명이다. 2008년 한국의 전체 자살률 26.0명의 4.3배가 넘는다. 1995년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501명이 숨지고 937명이 다쳤다. 지금 한국에선 매년 삼풍백화점이 수도 없이 무너지는 셈이다. 국회가 지난 3월 본회의에서 ‘자살예방법’을 통과시킨 이유다. 정부 지원으로 각 지자체에 자살예방센터를 설립하는 등 자살 대응책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민단체의 기대에 못 미치지만, 중요한 진전이다. 이 숨은 죽음을 찾아나섰다. _편집자

아침 8시5분 9번 마을버스를 눈앞에서 놓쳤다. 뒤늦게 올라탄 마을버스는 익숙한 거리를 달린다. ‘땡초곱창’ ‘돈부리-최저가격’ ‘맥도날드’ ‘○○성인PC방’ ‘○○문고’…. 손잡이를 잡고 바라본 차창 너머로 익숙한 간판이 지나간다. 간판들은 “살아서 먹으라” “살아남아 마시라” “살아서 성욕을 해소하라”라고 외친다. 신문사에 들어서서 텔레비전을 켠다. 10분 지나자 익숙한 상조회사 광고가 나온다. 타인의 죽음도 산 사람들에게 먹고살 거리가 된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간판이 ‘살아라’고 외치는 나라에서 죽음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죽음은 숨어 있다. 특히 가난한 노인들의 죽음은 가려져 있다. 기사를 쓰려고 취재에 나서지 않았다면 신문사 동료한테도 자살에 가까운 노인 학대의 가족사가 숨어 있었음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왜 스스로 삶을 끝마치는가

살인사건 현장엔 법의학자가 있다. 부검 등을 통해 사망의 종류와 사인, 사후 경과 시간, 사용 흉기나 독물 등을 규명한다. ‘왜 사람은 자살하는가’에 답하려면 주검보다 마음을 연구해야 한다고 1930년대에 일군의 미국 학자들이 나섰다. 자살자의 부모와 자녀 등 친족은 물론 이웃과 주변 인물을 두루 만나 인간이 왜 스스로 삶을 끝마치는지 밝혀내는 작업은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ptosy)이라고 명명됐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 최초로 심리적 부검을 도입해 연구에 나섰다. 한국 상황에 가장 걸맞은 심리적 부검 기준도 연구했다. 자살자의 유족에게서 요청을 받아 실제 자살자 4명의 심리적 부검도 시도했다. 4명 모두 청장년층으로 노인은 아니었다.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박사학위 논문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살아난 노인과의 면담 자료를 확보했다. 보건복지부의 심리적 부검 기준을 이에 적용해봤다. 모든 간판이 “살아남으라”고 외치는 도시에서 죽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물리적 시선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죽음은 숨어 있다. 유족은 자살에 대해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을 아낀다. 죽음이 숨어 있기는 농촌도 마찬가지다. 충청도의 한갓진 농촌 지역에서 김금희(75·가명)씨는 조금씩 삶을 내려놓고 있었다. ‘6시 내고향’ 카메라가 좀체 찾기 어려운 지점에서 죽음은 김씨에게 깃들고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두 차례 자살 시도에서 살아났다. 그러므로 ‘부검’이란 단어는 적절치 않다. 김씨의 경우 ‘심리적 부검’이란 ‘심리적 조사’를 뜻한다. 보건복지부가 밝힌 심리적 부검의 추진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김씨의 경우를 ‘→’로 표시해 조사했다. 죽음의 한 연구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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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사망자 발굴 경로
-경찰청의 사건수사기록, 응급의료기관
→ 김씨의 경우: 마을 이장과 이웃이 발견, 응급의료기관

○심리적 부검 정보제공자
-자살사망자의 가족, 가까운 친척, 친구 또는 직장 동료
→ 본인과의 심층 인터뷰

○심리적 부검 조사 방법
-조사원과 정보제공자의 직접 대면 조사를 원칙으로 진행

→ 자살을 시도했던 김씨와의 직접 인터뷰. 치료가 아닌 연구 목적의 인터뷰였으므로, 연구자는 김씨에 대한 윤리적 고려에 크게 신경 썼다. 면담 내용은 철저히 익명으로 했다. 면담 땐 김씨의 심리 상태와 말 속도, 기억 속도에 보조를 맞췄다. 인터뷰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그들의 생활을 느끼려고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 머물렀다. 일방적으로 질문하지 않았다. 연구자 스스로 본인의 욕구에 대해 먼저 털어놓기도 했다. ‘자살 4건’이라는 숫자 뒤에 ‘절박하고 절실하게 죽음을 택한 4명의 사람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연구는 객관적일 수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노인 자살은 깊은 연관성을 보인다. 노인 자살 문제는 상당 부분이 경제적 문제에서 온다. 또한 경제적 곤궁은 대개 \'가족관계의 문제\'를 낳는다. 지난 5월4일 서울시내의 한 공원에서 노인이 벤치에 홀로 앉아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노인 자살은 깊은 연관성을 보인다. 노인 자살 문제는 상당 부분이 경제적 문제에서 온다. 또한 경제적 곤궁은 대개 \'가족관계의 문제\'를 낳는다. 지난 5월4일 서울시내의 한 공원에서 노인이 벤치에 홀로 앉아 있다.

멍에가 된 자식, 상처가 된 가족

○심리적 부검 조사 항목
-사망자의 인적 정보(성별, 나이, 가족관계 등)
→ 75살. 4남3녀를 두고 남편 및 결혼하지 않은 둘째아들과 충청도의 농촌 고향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큰아들과 딸들만 결혼했다. 셋째아들은 20여 년 전, 넷째아들은 2009년 가출해 소식이 끊겼다.

- 사망과 관련된 주요 정보(사망 방법 등)
→ 첫 번째와 두 번째 자살 시도 때 각각 꿩 잡는 약과 제초제(근사미) 등의 농약을 썼다. 취재를 위해 구입한 제초제에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


-가족의 과거력(가족의 질병 및 사망력)

→ 질병으로 죽은 가족은 없었지만, 자식들과의 정서적 불화가 김씨의 건강을 해쳤다.


-자살사망자의 신체적 질병력 및 정신질환력

→ 김씨는 신체적 약화로 일상이 힘들었다. 일상의 좌절로 삶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김씨는 종종 받았다. 손마디가 관절염이 와서 다 휘었다. 불면증이 심해 약물치료를 받아야 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마루에 앉아 있기도 하고 누워 지내는 날이 허다했어. 며느리가 억지로 날 병원에 끌고 가더라고…. 의사가 수면제와 우울병 약이라며 마음을 편하게 생각하고 잘 먹으라더군.”


-자살사망자의 음주 및 약물 남용 과거력

→ “애들 때문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


-자살사망자의 이전 자살 시도력

→ 2006년 알코올중독이던 둘째아들은 매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렸다. 김씨는 자식을 잃을 것 같은 불안감에 자살을 시도했다. 지나가던 동네 주민에게 발견돼 살아났다.



-자살사망자의 재정적 상태

→ 경제적 궁핍이 김씨의 일상을 갉아먹었다. 김씨는 큰아들에게 가족의 중심 역할을 기대하며 모든 재산을 주고 기반 마련을 도왔지만, 아들은 기대를 져버리고 잇달아 사업에 실패했다. 남편은 무능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다른 자식들 또한 무능했다. 김씨는 돌봄을 받아야 할 노년기에 역으로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처지였다.

“20여 년 전 큰아들이 정미소를 한다고 해서 얼마 안 되는 전답이지만 다 팔아서 주었지. 어떻게 해, 큰아들이 그런다는데 먹고살게는 해주어야지. 그 뒤 품도 팔고 남의 도지(소작)를 해서 먹고살았어. 남들은 늙으면 자식이 부모 먹여살린다는데 우린 거꾸로야. 내가, 늙은 우리가 애들을 건사하지. 아들 놈들은 하나같이 부모 속 썩여. 아들은 많은데다 기어나가서 없어. 장가도 안 가고. 큰아들 하나만 결혼했어. 난 애들 때문에 제 명에 못 살 것 같아.”

자식들의 경제적 무능은 큰 스트레스였다. 김씨는 한국의 평범한 어머니였다. 그에게 가족은 소중한 울타리였다. 기대가 컸고, 그만큼 실망도 컸다. “남들 자식은 출세했다고 노인정에 돈도 내고 올 때마다 맥주며 과일을 박스로 넣는데, 우리 내외는 하루 종일 그곳에서 얻어먹고만 오지. 그러니 내가 그곳에 간들 편하겠나? …다른 노인들은 하지도 않아. 남들이 해주면 그냥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지. 그런데 난 거기서도 눈치가 보여. 큰애 하나 빼곤 나머지 세 아들놈이 나에겐 웬수나 다름없지…. 여기가 시골이라 누구네 집에서 큰소리 나면 다들 알지 않남.”

-자살사망자의 대인관계
→ 김씨에게 가장 중요한 대인관계는 가족이었다. 그 가족이 김씨의 기대를 배반했다. 논문은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도 원인의 일부로 분석했다. “김씨는 가족이란 훈훈하고 끈끈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으나, 변화된 가족상으로 삶이 허망해졌다”고 논문은 분석했다.

특히 자식과의 관계가 상처였다. 자식이 그에게는 짐이었다. “막내아들 집 나간 것 때문에 고생 많이 했지. 일 다니다 얘기도 없이 나가버려서 지금도 연락 없어. 또 우리 셋째아들은 죽은겨. 집 나간 지 20년이 넘었는데,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연락도 없어. 세월이 가도 안 되더라고. 어미가 자식 망가지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비참한 거야. 이렇게 살면 뭐하나 하는 고통이야. 자살 생각은 특별한 날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날 더 심각해져. 집 나간 자식들 잊어버리려 해도 지금도 명절 같은 때는 더 신경이 쓰여서 잠도 잘 못 자. 즐거워야 할 명절에 우리 집은 더 힘들어. 나는 애들 생각나서 술 마시고 큰소리치고 하니 좋은 날 집안에서 웃음소리보다 싸우는 소리가 더 크지.”

-자살자의 사망 당시 특징
→ 자살하려는 사람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알리고 자살을 시도한다. 김씨도 그날 술을 마시고 가족에게 “죽어버리겠다”고 입버릇이 된 그 말을, 다시 꺼냈다.

잘 살기 위해 죽음에 대해 말하기

심리적 부검 시도는 여기서 멈추어야 했다. 김씨는 다시 살아났다. 자살을 시도한 순간에 대해 그는 담담했다고 설명했다. “죽으려니 생각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딸들 다 시집가서 지들대로 사는데, 뭐. 아들들은 남은 자식 반, 없는 자식 반인데… 그냥 담담했지. 그냥 죽고 싶었어. 술기운 때문에 무서운 것도 없고 어쨌는지 잘 기억이 안 나.”

김씨가 만취한 아들과 싸우다 집 뒤편 언덕에서 꿩 잡는 약을 처음 마셨을 땐 두려움도, 거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시도엔 두려움이 생겨 약을 먹다가 중단했다. ‘무언가’가 김씨 손을 잡아챘다. “술기운에도 한 잔 벌컥 마신 다음에 더 마시면 안 될 것 같더라구. 그 다음에 병을 바닥에 흘린 기억까지는 나는데 그 뒤론 아무런 기억이 없어. 이러다 내가 정말 죽는다 싶었는지 마시다 버린 것 같아. 그 약도 많이 먹으면 죽거든. 잘 모르겠어. 집 나간 애들이 보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이 꼬여.”

김씨는 숨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자살시도자는 ‘자살마저 내 뜻대로 안 된다’는 패배감에 싸여 남은 삶을 산다고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한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임미영씨는 전했다. 김씨는 두 번째 자살 시도 뒤 딸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심리적 부검 작업에 참여했던 이영문 아주대 의대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과 노인 자살의 연관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저 없이 “매우 연관성이 깊다. 노인 자살 문제는 상당 부분이 경제적 문제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제적 곤궁을 넘어선 ‘관계의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심리적 부검을 하는 이유는, 첫째 자살 경로와 이유를 알면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유가족의 죄책감을 덜고 그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쉽지 않다. 일단 자살이 벌어지면 유가족이 죄지은 것처럼 쉬쉬한다. 2009년 경찰청을 통해 전국에 심리적 부검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나섰는데도 선뜻 신청한 유가족이 거의 없었다.”

‘절망에 대해 쓰는 것은 오직 더 잘 희망하기 위해서만 의미가 있다’고 쓴 문학평론가가 있었다.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오직 더 잘 살기 위해서’라는 게 이 교수의 취지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심리적 부검’이란
포괄적 사후정보로 자살 원인 규명

‘심리적 부검’이란 자살사망자와 관련한 포괄적인 사후 정보를 통해 자살 원인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누군가 자살했을 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유서 등 모든 활용 가능한 자료를 수집해 그가 왜 자살에 이르게 됐는지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대개 정신과 의사나 임상심리사 등 전문가들이 자살사망자의 부모, 배우자, 자녀, 연인, 직장 동료, 담당 의사 등을 상대로 체계적으로 질문·조사하는 과정을 밟는다.
심리적 부검은 1934~40년 뉴욕 경찰 93명이 연속적으로 자살하자 처음 실시됐다. 이후 1956년 미국 워싱턴대학이 1년 동안 세인트루이스에서 벌어진 134건의 자살을 체계적으로 조사하며 본격화됐다.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ptosy)이란 용어는 1958년 에드윈 슈나이드먼이 처음 사용했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 2차 자살예방대책 5개년 계획을 발표해 “근거에 기반하여 자살예방 대책을 수립하고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확산시키기 위해 자살사망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자살연구예방센터에서 개발해 현재 중국·홍콩·일본에서 사용되는 심리적 부검 조사 방식을 수정·보완해 기준을 마련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근거로 경찰청의 도움을 얻어 2009년 5월 말부터 그해 12월 중순까지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벌어진 4건의 자살 사건에 대해 심리적 부검을 시범 실시했다. 한국자살예방센터가 실무를 맡아 추진했다. 당시 27살 남성, 14살 여성, 32살 여성, 59살 여성 자살 사건을 조사했다.
자살 원인을 입체적으로 밝히고 유가족에 대한 정서적 위로가 이뤄지는 등 성과가 있었으나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 조사에 참여했던 연구진은 유가족이 좀체 자살에 대해 말하지 않는 풍토를 난제로 꼽았다. 그래서 ‘심리적 부검’이란 용어를 바꾸자는 주장이 나온다. 조사에 직접 참여한 이영문 아주대 의대 교수는 “번역할 말이 없어 심리적 부검이란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지만, 연구 취지로 볼때 ‘유가족 상담지원 서비스’라는 명칭이 거부감이 덜하다”라고 말했다.


*참고 문헌
(임미영·한서대 노인복지학과 박사학위논문), (보건복지부·한국자살예방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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