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4월2일 펼쳐진다. 단 하나뿐인 챔피언 자리를 위해 8개 구단이 각각 133경기씩, 모두 532경기를 펼치는 대장정이다.
올해로 출범 30년째를 맞은 프로야구는 사상 처음으로 600만 관중 시대를 열 것으로 보인다. 프로야구 인기 빅뱅의 예감은 이미 시범경기부터 시작됐다. 비공식 집계지만 3월 한 달간 치러진 49차례의 시범경기에 모두 25만402명의 관중이 찾았다. 역대 시범경기 최다 관중은 17만1752명이었다.
인기로 따지면 ‘4강 구단’에 속하는 기아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가 선수 보강에 성공하며 탄탄한 전력을 갖춘 것도 심상치 않다. 이들이 시즌 막판까지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을 벌일수록 관중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마련이다.
여기 ‘밥보다 야구’를 외치는 4명의 열혈 야구팬이 있다. ‘OB’ 시절부터 30년간 베어스를 응원해온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꼴데’(꼴찌 롯데)에 영혼을 저당 잡힌 김준 작가, 최근 8년간 ‘6-6-6-8-5-8-7-6’위의 막장 전력을 유지해온 쌍둥이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이다혜 기자, 아직도 ‘해태 왕조’의 추억에 젖어 있는 위근우 기자 등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그들이 매년 4월만 되면 ‘야구에 미치는 이유’, 과연 야구의 매력은 뭘까._편집자
3월27일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보려고 수많은 관중이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연합
‘꼴데’와 ‘봄데’에 울고 웃는 주황 봉다리
지난해 10월5일,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이었다. 2승 뒤 3연패라는 차마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역전패로 가을야구를 마감한 날, 하루에도 수십 번 트위터로 연락을 주고받던 ‘꼴빠’(2000년대 8년간의 암흑기 시절 만들어진 ‘꼴찌 롯데 팬’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 선배의 소식이 끊어졌다.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아 생사 확인 차원에서 문자를 보냈다. “살아 있습니까?” 5분 뒤 답장이 날아왔다. “살아서 뭐하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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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데’(꼴찌 롯데)에 영혼을 저당 잡힌 사람에게 지난 3년의 가을은 말 그대로 “살아서 뭐하겠노”가 절로 나오는 탄식의 계절이었다. 시즌 내내 이상한 역전승과 황당한 역전패를 반복하며 기어이 진출한 포스트시즌에서 3년 연속 힘만 잔뜩 들어간 채 벌벌 떨다가 무너졌다. 2008년 0승3패, 2009년 1승3패, 2010년 2승3패. 3류 작가도 쓰지 않을 민망한 시나리오다. 8년 동안 한이 맺혔던 가을야구를 3년 연속 했건만, 이제 매년 가을 위액이 역류하는 상처를 받고 있다. 하나의 한을 풀고 났더니 새로운 한이 쌓이고 있다. 한국에서 야구팬이 되는 것은 운명이지만 꼴데팬이 된 것은 저주받은 운명이다.
왜, 언제부터 야구를 좋아했는지 나도 모른다. 그저 부산에서 자란 소년들에게 자이언츠는 모태신앙이었고 이유 없는 시작이었다. 야구장에서 그물을 타거나, 야구장으로 난입했다는 동네 아저씨의 무용담을 듣고 자랐고, 자이언츠의 푸른색 어린이 회원 유니폼이 내 초등학교 교복이었다. 언젠가 지역신문에서 “전날 롯데의 경기 결과에 따라 아침 기분이 좌우되는 부산 시민이 70%”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내 처지에서는 롯데의 경기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부산 사람이 30%나 된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한국 포크음악의 기린아인 음유시인 루시드 폴도, 한국 진보의 아이돌 의 조국 교수도, 부산역에 내리는 순간 모두 ‘사직아재’다.
올해도 꼴데는 시범경기에서 1위를 차지했다. 3년 연속이다. 그래서 ‘봄데’(봄의 롯데)다. 봄데는 양키스도 이긴다. 봄의 롯데 선수들로 축구를 하면 맨유도, 바르샤도 이길 것이다. 다만 가을에는 나이지리아 축구팀과 야구를 해도 질 것 같다. 번트를 대지 않고, 가장 단순하게 치고 달리는 야구. 황당한 역전패도 자주 당하지만 이상한 역전승도 자주 해내는, 속칭 ‘병신 같지만 멋있는’ 야구팀. 3년간의 악몽 같던 가을야구가 지나갔고, 야구 만화를 쓰던 미국인 감독은 쫓겨났으며, 공에 맞아 얼굴이 박살났던 상처투성이 2루수는 주장 자리를 내놓았고, 암흑기에 홀로 팀을 버텨오던 에이스는 어깨가 파열되었으며, 조선의 4번 타자는 7관왕을 하고도 연봉 협상에서 배신당했다. 무슨 야구팀이 이렇게 상처도 많고 트라우마로 가득 차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팬들과 같은 시간 같은 종류의 상처로 성장해온 선수들이 남아 있을 때 그들의 한으로 일구어낸 우승을 보고 싶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10년 9월2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 장면. 두산팬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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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서른 번째 봄이다. 원년 어린이 회원들은 사직아재가 되었고, 나를 목마 태워 야구장에 가시던 아버지는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가 됐다. 15년 전 더그아웃 윗그물을 타고 올라가던 흥분한 사직 청년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야구장에 가며 저주를 대물림하고 있고, 25년 전 구단 버스에 불을 지르던 사직 폭도들은 지정석에 근엄하게 앉은 원로가 되었다. 30대 중반의 샐러리맨이 된 지금, 고1 때 경험한 우승이 마지막일 줄은 차마 몰랐다. 가자, 자이언츠, 누가 우승하라 하더냐! 눈 똑띠 뜨고, 정신 차리고 단디 하면 된다. 져도 좋다. 이겨만 다오. 야구 보다가 수명이 단축되었고, 가끔은 부끄러웠고, 척척 야구 잘하는 다른 팀을 부러워하면서도, 7회말이 끝나고 울려퍼지는 를 들으면 다시 피가 끓어오르며 주황색 봉다리를 뒤집어쓰는, 우리는 사직아재다. (‘사직아재’ 김준씨· 저자)
‘6-6-6-8-5-8-7-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야구를 왜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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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질문을 받곤 한다. 누군가는 그 질문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가 아는 동생은, 야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을 경기장 밖으로 날려버려도 득점을 인정하는 구기종목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라 좋대.”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도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런 답을 고안해냈다. “밤 경기를 할 때, 잘 맞은 공이 경쾌하게 밤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는 광경을 외야석에 앉아 볼 때의 시적 감흥이 좋아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그 문답을 복기해보니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은….
웃기고 있네.
그깟 공놀이, 뭐가 그렇게 좋으냐 하면…, 좋은 선발투수가 볼과 스트라이크의 경계선으로 공을 꽂아넣으며 삼진을 연속으로 잡아낼 때 느껴지는 염통 쫄깃한 흥분, 제아무리 잘 던져도 (혹은 너무 엉망으로 던져서 공이 무릎 아래로 날아와도) 기어코 공을 당기고 밀어내 홈런을 만드는 타자를 볼 때의 오싹한 전율, 적어도 2루타 혹은 3루타가 될 공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수비의 쾌감, 포볼을 얻어내는 이상의 공격은 되지도 않을 때 말도 안 되게 도루에 성공해 마침내 홈을 파고드는 주자를 볼 때 울컥한 감격, 누가 봐도 농담 같은 대타 작전이 기막히게 성공해 끝내기 안타가 승리로 이어질 때의 환희. 공식적으로는 그렇고, 야구장을 굳이 가야 하는 이유는 그 바깥에 있다.
야외에서 고성방가할 수 있다(나는 가요 신곡을 언제나 야구장에서 처음 접한다). 우리 ‘편’을 대놓고 응원할 수 있다(아름다운 승부는 신문에나 실리는 표현이다). 세상에 하고 싶었던 모든 욕설을 선수들을 대상으로 큰 소리로 퍼부을 수 있다(그 공은 나도 치겠다, 이 개나리야). 떼로 모여 술을 마실 수 있다(잠실야구장 편의점에서 맥주 구입으로 마일리지를 쌓았다면 차 한 대는 샀다). 비현실적으로 탄탄한 야구 선수들 몸 구경이 재미있다(타격 스트라이드를 밟을 때의 허벅지는 인류 최고의 유산). 열 번 배트를 휘둘러서 세 번만 맞혀도 A급타자가 되는 게임의 속성은 현실의 실패에 위안이 되고, 꼴찌 팀이 1위 팀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일 때의 아이러니는 인생의 교훈이 된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축구나 농구나 배구가 아닌 야구를 사랑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야구의 신에게 ‘야빠’(야구 광팬)로 간택되는 이유는 논리 너머에 있다. 배우를 좋아하면 되는데 굳이 야구 선수의 ‘얼빠’(미남 애호가)로 살기를 자처하는 까닭은 또 어떤가. 흠 없는 피칭, 영리한 볼 배합, 영능력자 같은 수비를 좋아하면서 내가 지난 8년간 6-6-6-8-5-8-7-6이라는 순위를 기록 중인 ‘엘빠’(LG 트윈스 팬)로 남아 있는 이유 역시 해명 불가. 2008년 가을 LG 트윈스의 마지막 경기가 생각난다. 전 경기를 빼놓지 않고 관람한 팬을 뽑아 선물을 주는 행사가 있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중년 남성이었다. 몸이 안 좋아 회사를 쉬는 김에 LG 트윈스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꿈과 희망은 고사하고… 전 경기를 봤더니 돌아온 성적표는 꼴찌. 하지만 그날의 주인공도, 운집한 관중도, 나도 웃었다. 순위의 최저점에서 배우는 유머 감각. 그게 없이는 인생도 야구도 끌어안는 일은 불가능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야구와 LG 트윈스님께서 속삭이셨다. (이다혜 기자)
2009년 10월2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를 마무리한 기아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
‘내팀내’와 ‘잘놈잘’의 법칙은 없다
언제부터였는지를 말하는 건 새삼스럽다. 내 또래가 모두 그렇듯 나 역시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 지경까지’ 왔다. 휴일마다 공터에서 야구를 하던 초등학생과 프로야구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은 없었다. 프로야구 원년 당시 OB 베어스는 대전·충청 지역이 연고지였다. 대전이 고향인 나에게 OB는 그대로 ‘나의 팀’이 됐다. 여느 구단과 달랐던 알록달록 모자와 점퍼부터 이미 힙스터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던 박철순의 연승 행진, 그리고 모든 아이들의 가랑이를 찢게 만들었던 학다리 신경식까지, 당시 OB 베어스는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거기에 원년 우승이라는 훈장까지 더해졌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OB는 1985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며 떠났다. 대부분의 친구는 새로운 연고 구단인 빙그레 이글스를 ‘우리 팀’으로 받아들였다. 태어나서 처음 본 대상을 어미라 생각하고 쫓아다닌다는 오리 새끼처럼, 나만 혼자 여전히 OB 베어스를 응원하며 30년을 함께한 것이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선수도 언제든지 그날의 영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주변부에 머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역시 주변부의 선수들에게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불사조’ 박철순보다 ‘짱꼴라’ 장호연을 더 좋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 2011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치는 선수가 ‘김동주나 김현수가 아닌 임재철이나 유재웅이었으면’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프로야구에서 그런 일은 실제로 자주 있었다. 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노런 기록을 해태 타이거즈의 방수원 선수가 세울 거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1승3패로 몰린 한화 이글스의 절체절명의 위기, 거기에 투수진마저 바닥난 상황에서 지연규가 인생 최고의 역투를 펼칠 거라고 예상한 이 역시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야구 역시 ‘내팀내’(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와 함께 야구계의 2대 진리인 ‘잘놈잘’(잘하는 놈이 잘한다)의 스포츠다. 하지만 그 ‘잘놈잘’ 선수들이 133경기를 모두 책임질 수는 없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수가 역전홈런을 치고, 2군에서 막 올라온 선수가 결승타점을 올리며 133경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 동안의 영웅이라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두산 베어스에는 노경은이라는 입단 8년차 투수가 있다. 이제 유망주가 아니라 ‘노망주’에 가까운 나이로 매년 터질 듯 터질 듯하면서 결국엔 터지지 않아 팬들에게 애증과 희망고문을 안겨주는 선수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도 ‘올해는 달라졌다’는 뉴스를 보내왔지만, 역시나 시범경기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일찌감치 팬들의 기대를 접게 했다. 하지만 내가 야구를 보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런 선수의 활약을 보고 싶어서다. 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예술작품도 스포츠만큼 감동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은 상투적이지만, 그만큼 감동적이기에 쓰는 말이다. 굳이 중심선수가 되지 않아도 된다. 의 변덕규도 말하지 않았던가. 굳이 도미가 아니라 가자미여도 좋다. 야구 역시 수많은 가자미의 활약으로 굴러가는 스포츠다. 그 가자미가 어쩌다 하룻밤의 영웅이 되는 감동을 기대하며 나는 이번주부터 기다리던 야구를 볼 것이다. 그리고 그 가자미들이 드는 두산 베어스의 우승 트로피를 보고 싶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야구공은 서사를 싣고
기억이란 언제나 사후적 구성을 동반한다. 해태에서 기아로 이어지는 나의 타이거즈에 대한 열정도 마찬가지다. 정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한국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선동열이 장채근에게 안기던, 그 유명한 1991년의 장면이다.
그다음의 기억은 롯데에 플레이오프 패배를 당했을 때다. 처음으로 ‘우리 팀’이 진 것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정말 타이거즈 팬으로서 충성을 맹세했다. 그 충성의 이유와 자각이 무엇 때문에 생겨났는지를 말하려면 현재의 시각으로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아마 전라도 출신 아버지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어릴 때는 알지도 못했던 지역 연고의 개념으로 말이다. 한데 나는 경기도에서 자랐다.
야구가 먼저였는지, 타이거즈가 먼저였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그래서 참 애매하다. 지금이라면 영국과 스페인의 축구처럼, 한국의 프로야구 역시 강한 지역감정에 기반을 둔 연고제 덕에 인기를 끌었노라 설명할 수 있겠지만, 동네 놀이터에서 빙그레 팬이었던 친구와 ‘딸기원 시리즈’를 진행하던 초등학생 소년은 왜 ‘그깟 공놀이’에 심취했던 건지, 이제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이 레이스에 동참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왜 야구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사후적 구성은 충실하게 이뤄졌다. 스리아웃이 될 때까진 한 회에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임 속에서 스릴러 장르의 쾌감을 배웠고, 타이거즈의 팬으로 함께한 20여 년간 광주의 한을 대변해준 해태 왕조의 서사를 아버지 세대처럼 내 안에 갈무리했다. 하지만 그것이 야구의 매력을, 또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를 모두 설명해주진 못한다.
사후적 구성에 빗대 이야기했지만 야구, 특히 한국에서의 프로야구라는 텍스트는 로르샤흐 테스트(무작위로 제시된 도형이 무엇으로 보이는지 질문해 그 결과로부터 감수성·충동성 등을 진단하는 심리 테스트)와 같아서 누구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서사를 끄집어내 이야기할 수 있다. 부산 사람치고 자이언츠의 팬으로서 롯데와의 애증 관계에 대해 밤새 이야기하지 못할 이 누가 있을까. 스트라이크존에서의 공 하나 차이가 투수의 수준을 어떻게 가르는지, 또한 전체 승부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이야기하며 인생의 어떤 잠언을 끌어내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언젠가 인터뷰했던 20대 남자 배우는 야구는 수비의 게임이고, 수비는 노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야구를 좋아한다는 탁견을 밝히기도 했다. 요컨대, 야구에 대한 담론은 야구팬의 수만큼이나 많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 특유의 못된 습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룰을 가진 이 미국적인 게임이 한국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정말 특수하게 성장하며 이른 2011년 현재의 프로야구는 그만큼 풍성한 텍스트다. 타이거즈 팬으로서 이범호가 올해 기아 클린업 트리오로서 펼칠 활약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새롭게 떠오른 SK 왕조에 도전하는 7개 팀의 서사 역시 눈을 뗄 수 없는 부분이다. 개막을 앞둔 그라운드는 다시 말해 무한한 이야기의 바다다. 그 안에 뛰어들기 직전의 설렘,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곳에서 나와 당신이 야구에 미치는 이유 아닐까. (위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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