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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P는 리비아의 운명을 바꿀까

유엔의 ‘보호책임’(R2P) 처음 적용한 리비아 무력 개입에 관한 좌담…

“주권 침해 논란 뛰어넘는 인도적 의미” vs “개입 남용·재건 문제 등 양면의 날”
등록 2011-03-31 14:19 수정 2020-05-03 04:26

내전으로 치달은 리비아 사태에 국제사회가 무력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선제공격의 정당성과 무력 개입 범위, 지휘권과 전투 비용,민간인 희생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일부 국가가 반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 개입의 이유가 된 ‘보호책임’ (R2P·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주제로 박기갑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국제법) 교수와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가 토론했다. 박 교수는 “보호책임 개념을 동원해 인도적 범죄를 막기 위해 개입한 것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국제사회의 개입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개입 이후 재건 등 현실적 문제 역시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교수 모두 국제사회의 개입이 ‘용두사미’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좌담은 지난 3월24일 오후 회의실에서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미국 해군 전투기가 지난 3월20일 이탈리아 공군기지에서 리비아 폭격을 위해 출격하고 있다. REUTERS/ NADINE

미국 해군 전투기가 지난 3월20일 이탈리아 공군기지에서 리비아 폭격을 위해 출격하고 있다. REUTERS/ NADINE

주권침해냐, 예외적 개입이냐

사회: 미국 등이 ‘보호책임’을 이유로 리비아에 무력으로 개입한 것에 논란이 일고 있는데.

박기갑(이하 박): 나는 찬성한다. 지난 3월17일 채택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1973호를 보면, ‘보호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고 ‘보호할 의무를 재확인하며’라고 돼 있다. 그럼에도 좋은 발전이라고 본다. 특정 국가가 일방적으로 개입하면 문제가 생기지만, 아프리카와 아랍의 국제기구에서 논의를 거쳐 유엔 안보리 결의라는 순서를 밟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 개입한 시점이 중요한데, 카다피가 정전 선언을 뒤집고 반정부군을 공격했고, 유엔이나 국제사회가 더 미루면 반인도적 범죄를 막을 시기를 놓칠 수 있었다. 결의 1973호에 앞서 지난 2월 대리비아 제재를 위한 안보리 결의 1970호에서 무기금수 조처를 요청한 바 있어 무력 개입은 정해진 절차였다.

이혜정(이하 이): 박 교수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일부는 생각이 다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보호책임을 적용해 개입한 첫 사례라고 밝혔는데, 보호책임 원칙을 살린 것은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리비아 사태에 대해 예비심사를 요청하는 게 더 중요하다. 결의 1973호는 중국·독일·인도·브라질·러시아가 기권한 것이어서 국제사회의 합의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국제법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국제적 정당성 논란을 모두 해결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박: 보호책임은 확립된 법적 개념이 아니고 ‘소프트 로’(soft law·형성 단계의 법) ‘이머징 폴리티컬 콘셉트’(emerging political concept·생성 중인 정치적 개념)이다. 국제법적으로는 승인의 근거가 되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변수가 있다.

리비아 반정부군이 지난 3월24일 벵가지 인근 도로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REUTERS/ GORAN TOMASEVIC

리비아 반정부군이 지난 3월24일 벵가지 인근 도로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REUTERS/ GORAN TOMASEVIC

사회: 결의 1973호에 포함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내용에 따라 미국 등이 리비아를 폭격했는데 과연 최후의 수단이었나.

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려면 리비아 정부군의 대공망 무력화가 필요한 만큼 결국 전쟁 행위다. 아랍연맹이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해놓고 실질적 군사 조처를 하니까 지나치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민간인을 보호하려면 비행금지 이상으로 나가야 한다. 시위자들이 민간인이냐, 무장한 반군이냐는 문제가 있다. 미국 입장에서 어디까지 지원할지와 지휘 체계도 논란이다.

박: 공감하는 바 크다.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은 외교적 수사로 무력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다. 군사 개입이 최후의 수단이었느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사회: 어찌됐든 국제사회의 개입은 내정 불간섭이라는 ‘주권침해 금지’ 논리와 상충한다.

이: 보호책임 개념이 애매하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제사회가 하겠다는 것인데, 책임을 누가 묻는냐의 문제가 있다. 이번 국제사회의 개입이 세계적 의미에서 분수령이거나 ‘주권 대 인권’ ‘유엔의 권한 대 독재자’의 대결은 아닌 것 같다. 아랍권의 전반전 변화는 물론 미국이 작전권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넘긴 것 등에서 보면, 미국의 패권이 이번 사태에 적극 개입할 능력이 있느냐, 미국 5함대가 주둔하는 바레인에 대한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무력 진입은 왜 넘어가느냐 등 주권보다 더 현실적 문제가 걸려 있다.

박기갑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기갑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 내 생각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 교수는 이번 개입이 분수령이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앞으로 국제사회가 인권 측면에서 보호책임을 한 번 더 볼 계기가 될 것이다. 상당히 역사적 의미가 있다. 결의 1973호에 보호책임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묵시적으로 인정한 것은 평가하고 싶다. 유엔 헌장 2조7항은 타 국가 사안은 간섭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7장(평화에 대한 위협, 파괴, 침략 행위)은 예외로 한다. 1973호 결의는 7장에 의거하므로 내정 간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권 개념은 급속도로 발전한다. 국제사회의 강행 규범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인권말살 등은 금지돼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개입은 주권침해 금지 논란을 뛰어넘었다. 이제 주권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 보호책임은 리비아 정부에 있지만, 정부가 못한다면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 주권과 인권을 조화시키자고 한 게 보호책임 논리다. 미국의 패권이 주권을 침해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는 딜레마가 있다. 수단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보듯 현실적으로 재건에까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재건 등 현실적 문제 해결도 가능한가

사회: 국제사회 개입의 기준이 그때그때 다른 것도 논란을 불러왔다.

박: 미국이 유엔의 승인 없이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유엔의 위상이 깎였다. 미국이 다시 다자외교로 돌아오겠다고 밝혔고, 유엔이 위상을 찾으려고 한 게 바로 보호책임이 살아갈 길이었다.

사회: 보호책임를 내세운 개입도 자국의 이해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박: 유엔 총회에서 보호책임 지지국은 서방사회, 반대국은 내부적 문제가 있는 러시아, 중국, 쿠바, 시리아, 이란, 인도 등이다. 정치적 입장에서 볼 때 정치와 법은 떼놓을 수 없다.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충돌하는데, 국제사회도 개별 국가 이익이 있지만 공동 이익도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천부인권을 간과하면 보호책임은 의미가 없다.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이: 반인도적 범죄 가능성이 있어 리비아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안보리 15개국 누구도 반론이 없지만,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정치적 문제가 걸릴 수밖에 없다. 군사적 개입도 하나의 방안이고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개입하는 것도 문제고 안 하는 것도 문제다. 개입이 남용될 때 어떻게 하느냐, 재건까지 완전히 정상화되도록 누가 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양면의 날이다. 유엔을 거치고 인권 보호가 이유라고 모든 판단이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인도주의적 당위에 동의하더라도 개입에 나서는 개별 국가 국민들의 동의와 희생도 필요하다.

박: 개별 국가 정부의 동의가 필요한 문제다. 유엔은 자체 병력이 없어서 결의 1973호도 회원국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한다. 대한민국은 리비아와 관련해 추후 재건 단계에 참여할 수 있지 않겠나. 보호책임이 주권에 앞선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보리가 주체가 돼 행동하는 경우는 내정불간섭 주장을 비켜나갈 수 있다. 앞으로 뒤치닥거리는 유엔이 중심이 돼 프랑스나 미국 등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는 나라에서 재건회의 등을 만들어서 할 수 있지 않겠나.

이: 긴축의 시대에 인도적 지원도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 국제사회의 개입이 결국 근본적 사태 해결은 못한 채 흐지부지될 때가 많다.

이: 새로운 리비아를 만들어야 한다. 독재자가 민주화 요구에 대해 학살로 대응하니까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된다는 요청도 있으니 도덕적으로는 옳다. 재건까지 해주지 못하면 의미 없다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미국은 빠지려 한다. 아랍과 민주주의의 문제가 카다피와 제국주의의 싸움으로 바뀌는 게 현실적 문제다.

박: 이라크처럼 결국은 용두사미가 되는 게 제일 큰 문제다. 아무래도 군사적·재정적 부담이 크다. 제3국 입장에서 명분은 좋더라도 현실적으로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는 고민거리로 남는다. 황폐화된 리비아 재건은 국제사회가 유엔 중심으로 해야 되지만, 선뜻 해답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리비아 사태 이후 보호책임 개념 확대될까

사회: 보호책임을 이유로 개입한 리비아 사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보호책임 확대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나.

이: 유엔의 역할은 인도주의적 보호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 반정부군이 힘을 얻을 때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타이밍을 놓쳤다. 당장 실천되지 않거나 장기전에 빠져든다고 유엔 결의의 의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엔은 항상 규범적으로 옳은 것을 해야 된다. 독재자가 학살하니까 (리비아 국민들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데, 평가의 기준이 뭐냐는 문제다.

박: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보호책임의 기준을 세워도 실행은 어렵다. 만약에 어떤 국가가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처럼 자국민 보호를 할 수 없거나 보호를 거부할 때 국제사회가 나서지 않는다면 인류의 발전이 어디에 있겠나. 유엔은 공개토론 장소다. 보호책임에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하지만, 집단살해, 인종청소,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와 같은 4가지 주요 범죄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국제적 대응은 총론에는 이의가 없다. 각론에서 문제가 있다.

사회: 이번 사태는 유엔 결의을 통해 개입했음에도 논란이다. 이번 논란이 주는 교훈은.

박: 독재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게 아닌가 싶다. 심각하고 중대한 인권침해를 하는 이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의 1973호가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보리의 거부권 행사가 하나의 아킬레스건이다. (거부권을 지닌) 러시아나 미국 등과 관련된 사안에서 과연 안보리가 보호책임을 이유로 결의를 채택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막연하지만 앞으로 유엔과 안보리의 개혁과 맞물려서 생각해야 한다.

이: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다느냐다. 민간인 보호책임은 강대국이 갖는다. 인도적 재난에 눈을 감고 개입을 남용할 때 누가 막을 것이냐. 여전히 어떤 기준으로, 누가 언제 하느냐가 숙제다. 국제사회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한 아랍연맹은 거리 민심을 반영했느냐. 미국과 영국은 40여년 동안 카다피의 독재를 허용했다.

사회: 일부에서 북한에도 보호책임 원리를 적용할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박: 보호책임 전체의 구조를 모르거나 무시하고 무력공격만 강조한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보호책임은 예방·대응·재건 3단계로 나뉜다. 보호책임의 1차 주체는 해당 국가다. 실패한 국가가 반인권적 정책을 펼 때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유엔이 경제 봉쇄와 유엔 총회 등 단계적으로 개입해가야 한다. 북한에 급변 사태가 나서 국제사회가 개입한다고 가정한다면 한국이나 중국, 미국 등 개별 국가가 나서서는 안 된다. 유엔이 주도해, 보호책임을 적용하는 게 현명하고 안전하다.

이: 이라크전쟁의 교훈 가운데 하나가 정권 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급변 사태가 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만 제거하면 된다는데, 이라크 경우를 봐도 그 이후가 굉장히 어렵다는 게 교훈이다. 한국은 그 교훈이 작동하는 단계는 아니다.

“세계 시민으로서 감수성 키워야”

사회: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박: 보호책임은 생성중인 개념이자 장치다. 향후 발전은 국가들의 의지와 국제기구 유엔의 의지에 달려 있다. 보호책임은 안보리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때문에 흔들릴 수 있어 보완 노력이 필수적이다. 모든 국가가 합의할 구체적 요건 정립이 필요하다.

이: 대한민국 시민으로 살면서 세계 시민으로서 인권이나 보호책임 등 윤리성과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 경제 영토나 해외 수주가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느끼는 고통을 공유하는 것이다.

사회·정리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보호책임’이란?
사후적 개입 아닌 ‘예방-대응-재건’ 의미

‘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 Protect)은 2005년 9월 유엔 세계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개념이다. 당시 “국제공동체는 유엔을 통해 집단살해, 전쟁범죄, 인종청소 및 인도에 반한 죄로부터 영토관할권 내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도록 개별 국가를 돕기 위해 적절한 외교적, 인도적, 기타 평화적 수단(방법)을 사용할 책임이 있다. …국가 당국이 실패할 경우 우리는 시의적절하고 단호한 방법으로 집단적 조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집단학살 및 인종청소가 자행된 르완다와 코소보의 비극 뒤 인도적 개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가 촉구됐고, 캐나다 정부가 구성한 ‘개입과 국가주권에 관한 국제위원회’(ICISS)가 2001년 ‘개입’이라는 표현 대신 개별 국가가 인권 보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보호책임 개념을 고안해냈다.
2009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보고서 등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기존 ‘인도적 개입’ 개념과는 달리, ‘간섭의 권리’가 아니라 ‘보호의 책임’을 강조한다. 인도적 개입은 사태 사후적인 데 반해, 보호책임은 포괄적이고 지속적이며 예방-대응-재건의 3단계로 나뉜다.
이른바 ‘제3세계’는 과거 식민지 경험 등으로 인해, 인도적 개입의 탈을 쓴 주권 침해가 아니냐고 의문시하기도 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 자국 내 민족 갈등 문제를 겪고 있는 나라들도 부메랑이 될 것을 우려해 호의적이지 않다. 이번에 미국 등 서방 연합군이 리비아를 공습하면서 내세운 개념으로, 반기문 사무총장은 이번 군사 개입을 “국제사회가 보호책임 개념을 적용해 나선 첫 사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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