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화면에서 초록·빨강·노랑·파랑의 그래프가 쉼없이 깜빡인다. 혈압은 103/69, 맥박은 78회, 호흡수는 25회다. 김순애(64·가명)씨의 ‘바이탈사인’(활력징후)은 모두 정상이다. 수술은 마무리 단계다. 절개한 부위를 봉합하면 4시간여에 걸친 수술이 끝난다.
혈액 주머니 없는 수술방
그는 평소 숨이 가빴다. 병원에선 승모판막협착증이라고 진단했다. 피의 역류를 막아주는 심장의 얇은 막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뜻이다. 수술이 필요했다. 1월27일 오전, 김씨는 심장혈관 전문의료기관인 부천세종병원 수술실 3번방에 누웠다. 의료진은 심장을 열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심장의 피는 혈관을 따라 흐르지 않는다. 그저 몸 밖으로 쏟아져나올 뿐이다. 그대로 두면 수술이 끝나기 전에 환자가 죽는다. 이를 막기 위해 의사들은 보통 수혈을 한다. 환자의 심장에서 만들어진 피 대신 다른 이의 피를 혈관에 주입한다.
그런데 김씨가 누운 수술방에는 수혈을 위한 혈액 주머니가 없다. 수혈은 마취과 전문의 담당이다. 이날 수술에는 이종현(47) 부천세종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과장이 참여했다. 이 과장은 김씨의 몸에 다른 이의 피를 주입하지 않았다. 보통 병원의 수술실이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사고 나면 어떻게 하느냐”며 의사들이 먼저 혈액 주머니를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부천세종병원 수술실 3번방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가위 소리와 바이탈 모니터 소리만 조용히 번졌다. 이윽고 김씨가 이동침대에 누워 회복실로 나갔다. 무수혈 심장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김씨는 다시 건강해질 것이다.
김씨가 누운 수술방에는 수혈을 위한 혈액 주머니가 없다.수술에 참여한 이종현 부천세종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과장은
김씨의 몸에 다른 이의 피를 주입하지 않았다.
대다수 한국 의사들에게 이날 수술은 놀라운 사건이지만, 이 과장은 거의 매일 ‘사건’을 치른다. 수혈 없는 수술은 이 과장에겐 일상이다. 2001년부터 무수혈 수술을 시작한 이 과장은 최근 3~4년 사이 매년 220~270건의 무수혈 수술을 이끌었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적어도 1천 건 이상의 수술을 맡았다. 심장혈관질환 전문병원이므로 그 수술의 대부분은 심장수술이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수줍은 표정에 자부심을 담아 이 과장이 말했다. “아마 한국에선 제가 무수혈 수술을 가장 많이 다뤘을 겁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무수혈 심장수술로 바빴던 지난해 12월 중순, 이 과장은 우연히 접한 뉴스에 착잡해졌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부모가 무수혈 수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심장병을 앓는 생후 1개월 아이가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언론과 여론은 부모를 광신도로 몰아갔다.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위독한 자녀의 시급한 치료를 막아 사망토록 방치한 것”( 2010년 12월13일치 기사)으로 규정했다. 기사를 읽은 이 과장은 7년 전을 생각했다.
2003년, 선천성 심장기형을 가진 생후 2개월 아이가 부천세종병원에 왔다. 아이의 부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다. 부모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무수혈 수술을 의뢰했다. “그 병원에서 ‘아이를 죽이려 하느냐’며 무수혈 수술을 거부했다더군요.” 부모는 주변의 소개를 받아 부천세종병원을 찾았다. 이 과장이 무수혈 수술을 맡았다. 아이는 지금 초등학생이 되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공교롭게도 7년 전 아이의 목숨을 건진 부모와 지난해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가 처음 찾아간 병원은 같은 곳이었다. 심장수술 분야에 정통하다는 그 대형병원은 여전히 무수혈 수술을 꺼리고 있다.
수술 후유증, 무수혈 환자가 더 적어
대형병원이 도리질 치고 언론이 ‘광신도의 집착’으로 몰아가는 무수혈 수술에 대해 이 과장은 다른 잣대를 갖고 있다. 남용되고 있는 수혈 치료의 유력한 대체요법이 무수혈 치료라고 그는 생각한다. 수술은 외과에서 맡지만, 마취와 수혈은 마취과 전공인 이 과장의 몫이다. 추정치이긴 하지만, 2010년 이 과장은 일주일에 2~4건, 한 해 250~270건의 무수혈 심장수술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종교적 이유로 무수혈 수술을 적극 요청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20~30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200여 건은 종교적 이유와 상관없이 “의료진이 보기에 무수혈로 충분히 수술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경우”다. 이 과장은 “우리가 무수혈 수술을 택하는 환자의 70~80%는 다른 병원에서라면 관성적으로 수혈 수술을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는 의료진이 판단을 내리기 전에, 종교적 배경이 없는데도 스스로 무수혈 수술을 요청하는 환자도 있다. “수혈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아는 ‘의료인’이 무수혈 치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 과장은 말했다. 지난해에도 그런 환자가 2~4건 있었다. 현직에서 은퇴한 의사 출신 노인의 암수술, 간호사 조카를 둔 중년 여성의 자궁근종수술 등을 이 과장은 무수혈로 이끌었다.
종교적 이유가 아닌 의학적 판단에 따라 무수혈 치료를 요구하는 환자가 생겨나는 데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이 과장은 2007년 국내 학술지에 무수혈 심장수술 100건에 대한 연구논문을 냈다. 그 가운데 70여 건은 이 과장이 직접 참여한 수술이었다. 100건 가운데 수술 뒤 사망한 환자는 오직 1명이었다. 대형병원 의사들이 호들갑을 떤 것과 달리 무수혈 수술은 “사람 죽이는 짓”이 아닌 셈이다. 2006년에는 고관절수술을 받은 환자 가운데 수혈 집단(20건)과 무수혈 집단(20건)을 비교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수술 이후 감염 후유증을 겪은 이가 수혈 환자는 3건, 무수혈 환자는 1건이었다. 또한 무수혈 환자는 수혈 환자보다 평균 2일 먼저 퇴원했다. 무수혈 환자의 회복이 더 빠르다는 뜻이다.
무수혈 수술은 다른 이의 피를 공급받는 대신 환자 자신의 피를 재활용한다. 적어도 수술 일주일 전, 보통 한 달 전부터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조혈제·철분제를 환자에게 투여한다. 수술 중에는 ‘셀세이버’(Cell Saver)라는 장치로 환자의 피에서 적혈구를 걸러내 다시 환자의 몸에 투여한다. 체내 혈액의 점도를 낮춰 수술 중 출혈량을 줄이는 방법 등도 병행한다.
수혈학회 “수혈은 될 수 있는 한 피한다”
196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무수혈 심장수술이 성공한 뒤, 미국·유럽 의학계에선 수혈의 부작용과 후유증을 막아줄 유력한 치료법으로 무수혈 수술이 확산돼왔다. 서양의학의 본토에서 무수혈은 ‘종교적 광신’이 아니라 ‘과학적 치료’의 도구로 인식된다.
항생제 오·남용에 대한 의료계의 성찰이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것처럼 수혈 수술에 대한 국내 의료계의 인식도 최근에야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 대한수혈학회는 2009년 ‘수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수혈은 일정한 위험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수혈은 될 수 있는 한 피한다. 예정수술 때는 적극적으로 자기수혈을 도입한다.” 그러나 병원을 찾는 환자 가운데 수혈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이는 여전히 드물다. 의료진이 이를 설명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10월 30개 의료기관을 조사한 결과, 수혈 치료 때 수혈을 대체하는 요법이 있다고 환자에게 설명하는 경우는 22%에 그쳤다. 수혈동의서를 제시해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경우가 28.2%였는데, 그나마도 각 병원이 자체 마련한 동의서를 쓰고 있었다. 수혈 부작용을 충분히 적어놓은 ‘질병관리본부 표준 수혈동의서’를 사용하는 경우는 6.7%에 불과했다. 일본에선 수혈동의서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법에 규정했고, 캘리포니아·뉴저지·펜실베이니아 등 미국의 몇몇 주에선 동의서 작성 전에 수혈에 대한 충분한 설명까지 마칠 것을 법적으로 의무화했다.
한국은 2000년부터 보건의료법에 “모든 국민은 보건의료인으로부터 자신의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 등에 관하여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이에 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고 밝혔지만, 수혈 때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명문 규정은 아직 없다. 한국에선 의료진과 환자 모두 큰 고민 없이 수혈을 결정하는 셈이다.
미국은 치솟는 핏값을 무한정 감당하는 대신 무수혈 치료를 권장하면서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틀었다.
이제 미국인에게 무수혈은 수혈보다 값싸고 안전한 치료법이다.
무수혈 대신 수혈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종교나 윤리가 아니라 경제의 논리다. “무수혈 수술을 하려면 수술 몇 주 전부터 환자를 입원시켜 의료진이 상태를 살펴야 하는데, 입원 환자의 순환을 빨리 해야 더 많은 이윤이 나는 병원 입장에선 이를 반기지 않는다”고 이 과장은 말했다. 환자 역시 경제적 부담이 있다. 무수혈 수술을 위해 필요한 조혈제·철분제는 30만~40만원이 든다. 수술 때 ‘셀세이버’를 사용하면 다시 20만~30만원이 들어간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비용은 모두 환자 부담이다. 한국 보건당국은 무수혈 치료에 의료보험을 적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15개 의료기관에 전문센터 개설미국·유럽 등에서도 경제 논리를 따른다. 다만 결과는 다르다. 미국 의료보험 회사들은 무수혈 수술 비용을 보장한다. 의료진도 무수혈 요법을 선호한다. 미국에서 약 500cc 혈액 한 팩을 수혈받을 때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220만원(1600~2400달러) 정도다. 한국에서는 그 비용이 8만원이다. 두 나라 모두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긴 하지만, 의료비용 측면에서 미국의 핏값이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미국인들의 피가 원래 비쌌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노령인구가 늘어 헌혈자가 감소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간염 등 수혈에 따른 감염 위험도 알려졌다. 덩달아 ‘안전한 피’를 검증하기 위한 수혈 혈액 검사비까지 올랐다. 그 결과 미국은 치솟는 핏값을 무한정 감당하는 대신 무수혈 치료를 권장하면서 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틀었다. 이제 미국인에게 무수혈은 수혈보다 값싸고 안전한 치료법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무수혈 수술에 대한 한국 의사들의 공포다. 수혈 여부의 기준이 되는 것은 혈중 혈색소(헤모글로빈) 수치다. 성인의 평상시 혈색소 수치는 15g/㎗ 정도다. 미국 마취과학회는 7~8g/㎗ 아래로 떨어질 때 수혈을 권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많은 의사들이 10g/㎗ 아래로 떨어지면 관행적으로 수혈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수혈 수술의 60~70%는 혈액을 한 팩 정도만 투입하는데, 그 정도 혈액 부족은 수혈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거든요.”(이종현 과장) 국내 의과대학에선 무수혈 수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다수 한국 의사들에게 무수혈 수술은 ‘듣도 보도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반면 부천세종병원에선 성인 환자의 절반, 소아 환자의 30% 정도를 무수혈로 수술하고 있다.
이 과장은 1999년부터 무수혈 수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무수혈 수술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지만, 의과대학은 물론 전공의 과정을 밟은 대형병원에서도 관련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 1999년 홍콩에서 열린 국제 무수혈 치료 세미나에 참가했다가 무수혈 수술의 확산에 기여하기로 결심한 그는 남들이 까다롭다며 피해가는 이 분야의 경험을 하나씩 쌓기 시작했다. 198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수혈 심장수술에 성공한 부천세종병원은 그에게 꿈의 직장이었다. 병원장이 나서서 무수혈 치료를 권하는 ‘예외적인’ 곳에서 그는 지난 10여 년간 일했다. 병원장을 비롯해 의사 70여 명 가운데 종교적 배경을 지닌 이는 드물다. 이 병원은 ‘의학적 신념’으로 무수혈 치료 분야를 개척해왔다.
의술은 개별적이다. 진단·치료의 잣대가 의사마다 다르다. 다만 임상 경험과 논문을 통해 그 잣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혹시 무수혈 수술에 대한 이 과장의 신념이 한국 의료계의 공감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닐까? 지난 10년 동안 무수혈 치료법이 확산된 과정을 살펴보면 이 과장의 신념은 앞으로 더욱 굳건해질 가능성이 높다. 1986년 부천세종병원이 무수혈센터를 처음 만든 이후 순천향대·인제대·서울대·영남대·동아대·조선대·충남대·을지대 부설 병원 등 15개 의료기관에 무수혈 치료 전문센터가 만들어졌다. 무수혈 수술을 적용한 분야도 각종 암수술, 인공관절대체술, 제왕절개술, 뇌혈관수술 등으로 확산돼왔다. 각 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무수혈 수술이 이뤄지는지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순천향대에서는 1998년 20건이던 무수혈 수술이 2008년 802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무수혈센터 개소 10년 만에 2천 건의 무수혈 수술을 시행했다.
미국에선 유대인·무슬림의 무수혈 수술 많아부천세종병원이 무수혈 수술의 시초라면 순천향대병원은 무수혈 수술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있는 첨병이다. 종합병원인 만큼 심혈관 수술은 물론 각종 암수술로 무수혈 치료 범위를 넓히고 있다. 2000년 순천향대병원 무수혈센터가 개원한 뒤 2008년까지 이뤄진 무수혈 수술 통계(총 1524건)를 보면, 부인과 양성종양 266건, 일반외과 201건, 제왕절개 135건, 인공관절 113건 등 거의 모든 중대 질병 치료에 무수혈 수술을 적용하고 있다. 순천향대병원 무수혈센터는 개원 때부터 국내에선 처음으로 무수혈 치료 전문 코디네이터를 배치했다. 병원 안내 창구에서 무수혈 치료법을 상담·안내·유도한 것이다. ‘의학적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순천향서울병원 무수혈센터장 염욱 교수는 “혈액도 장기다. 수혈을 하면 장기이식처럼 면역학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무수혈 치료를 적절히 사용한다면 수혈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부족한 혈액 수급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무조건 혈액을 사용하지 않는 게 옳다는 뜻이 아니고, 의학적 관점에서 환자에게 좀더 유리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무수혈 치료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통념과 달리 여호와의 증인 신도만 그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순천향대에서 무수혈 수술을 받은 환자의 10%는
종교적 이유가 아닌 ‘의학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했다.
이와 관련해 의료계의 가장 큰 숙제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갓난아기에 대한 수술이었는데, 2009년 7월 서울대병원 김웅한 교수가 체중 2.8kg인 갓난아이를 무수혈 수술해 심장병을 고치는 데 성공했다.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의료계의 주류가 무수혈 수술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이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수혈의 부작용이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수혈 동의서 표준안’을 보면, 수혈의 부작용으로 “발열·오한·오심·구토·알레르기·흉통 등을 초래할 수 있고, 적혈구의 비정상적 파괴·호흡곤란·급성폐손상이 드물게 발생할 수 있으며, 간염·후천성면역결핍증 등의 감염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오랜 기간 수혈을 받을 경우 심장·간·내분비 장애 등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09년 10월, 질병관리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6년부터 2009년 9월까지 국내에서 B형 또는 C형 간염, 말라리아 등 수혈 부작용으로 의심돼 신고·접수된 사례가 114건에 이르렀다. 수혈을 위한 피도 부족한 상황이다. 대한적십자사가 2009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 국민의 헌혈률은 2004년 4.59%에서 2008년 4.24%로 감소했고, 2015년에는 2.5%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통념과 달리 여호와의 증인 신도만 무수혈 수술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순천향대병원에서 무수혈 수술을 받은 환자의 10%는 종교적 이유가 아닌 ‘의학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했다. 이종현 과장은 무수혈 치료에서 세계적 명성을 가진 미국 뉴저지주 잉글우드병원에서 두 달 동안 공부한 적이 있다. 1994년 무수혈센터를 만든 뒤 지금까지 수만 명의 환자를 무수혈 방식으로 치료했는데 “환자 대다수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사람들이었고, 종교적 배경이 있다 해도 유대인이거나 무슬림인 경우가 많았다”고 이 과장은 회고한다. 여호와의 증인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와 이슬람교 역시 구약성경의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을 율법으로 삼는다. 이 과장은 “무수혈 수술을 소수 종파의 주장이라 여기는 의료인의 인식 전환도 시급하지만, 수혈 치료의 부작용을 이해한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수혈 대체요법을 의료진에게 요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혈 피할 수 없는 상황 있어”
의학적 논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한수혈학회 임채승 총무이사(고려대구로병원 진단검사의학과)는 “수혈받지 않는 것이 당연히 좋지만, 수혈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그런 경우에 한해 최소한으로 수혈해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통념이다. 무수혈 수술을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가 과학적으로 부족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청한 국립암센터의 한 의사는 “한국 의사들은 수혈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지나치게 수혈에 의존한다. 무수혈 수술은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의학적 차원에서 좋은 수술이므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암수술을 집도한 그는 “피가 부족하다며 헌혈을 장려하는 보건복지부도 수혈 대체치료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아야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수혈학회가 2009년 제정한 ‘수혈 가이드라인’을 보면, “혈색소 수치가 7g/㎗ 이하이면 수혈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한국 의료계의 대체적 통념인 셈인데, 무수혈 치료를 주장하는 의료인들은 그 수치를 더 아래로 끌고 간다. 순천향부산병원은 2002년 혈색소 수치가 2.6g/㎗인 환자까지 무수혈 수술로 치료했다. 국내 의료인들도 수혈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염려가 적지 않다. 무수혈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 무수혈 치료를 적용해도 좋은지 ‘구체적인’ 근거가 아직은 부족하다.
남겨진 논란을 마저 잠재울 유일한 방법은 무수혈 치료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논의다. 수혈이 필요한 큰 수술은 주로 대형병원에서 이뤄진다. 대형병원은 이윤 논리에 종종 휘둘린다. 하루하루 수술에 쫓기는 대형병원 의사들은 대체치료법을 고민할 여유가 없다. 결국 무수혈 수술의 노하우를 축적하려면 정부 차원의 연구 지원이 필요하고, 환자들의 부담을 줄이려면 의료보장 범위도 넓혀야 한다. 그렇게 하는 미국·유럽에선 수혈받지 않겠다는 요구가 환자의 당연한 권리다. 그렇지 못한 한국에선 수혈을 거부하면 종교적 광신도로 취급받는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신명주 인턴기자·연세대 의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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