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글라바(안녕), 므이안!
지난해 11월 카렌족 반군을 겨냥한 정부군의 공격으로 난민들이 타이 국경을 넘어 피난갔다는 소식에 걱정했는데 안부를 전해와 다행이었어. 이번 전투도 60여 년 분쟁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뿐 누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왜 끊임없이 피를 흘려야 하는지 세상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 분쟁의 원인이나 생명을 담보로 피난 생활을 하는 정글 속 카렌족 난민의 문제는 뒤로하고 관심은 타이 국경에 산재한 난민캠프에 집중돼 있어. 시끌벅적한 캠페인과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관심이 이어지면서, 버마 내부에서 독재에 저항하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현장은 저 너머의 분리된 역사로 인식되는 것 같다.
므이안! 너는 카렌족 저항운동을 이으며 청년 시기를 보냈지. 카렌민족해방군(KNLA)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정부군이 마을을 불태운 뒤 너희 가족은 뿔뿔이 헤어져 너와 네 동생은 저항군으로, 부모와 친척은 난민캠프로 떨어져 지내온 지 10년이 넘었지.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언젠가 볼수 있겠지”라며 담담하게 웃음으로 답하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왜 이토록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버마 정부군은 지난해 11월 총선을 비롯해 이슈가 필요가 있을 때마다 카렌족을 탄압해왔지. 반군 마을을 점령하면 강제 이주를 시키고 처형과 학살을 저지른다는 소문도 많았어. 앞으로도 소수민족에 대한 버마 정부의 통제와 억압은 수위를 높여가겠지. 사람이 소리 없이 죽어나가도 이제는 오랜 분쟁 탓에 ‘사망자 ○명, 부상자 ○○명’ 같은 숫자로만 기록되는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걸까?
우리가 처음 만난 2009년 내가 버마 사이클론 피해 현장의 참상을 전했을 때, 낮은 목소리로 “우리는 변화를 위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며 나를 향하던 네 눈을 잊을 수가 없어. 내가 외국에서 이념과 구호로 그리고 일시적 방문을 통해 보고 들은 사실에 분노하는 수준이라면, 네 눈에는 피 흘리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며 삶을 던져 변화를 만들려는 절절함이 묻어 있었지. 특히 소수민족에게 가해지는 박해는 정부 권력의 강화라는 구실과 맞물려 국제사회의 무관심과 암묵적 방조 속에 이뤄지고 있으니, 네겐 내 행동과 말이 사치스럽고 오만하게 비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피 흘리는 대립이 아닌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그런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 변화가 실현될 수 있음을 역설하던 모습이 생각나.
므이안! 정부군의 탄압에 맞서 오랜 무장투쟁을 해왔지만 카렌족 내부가 갈라지고 끊임없는 유화정책과 강경진압 등으로 양상이 복잡해지면서, ‘모두 함께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것 같더구나. 부디 버마가 더 자유롭고 평화로운 국가, 므이안 같은 평범한 청년들이 좌절하지 않고 꿈을 실현하는 곳이 되기를 기원하며 지구촌 형제들이 함께 손잡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줬으면 해. 그래야 지쳐 쓰러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지. 무엇보다 건강해야 네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어.
한국에 오면 눈사람을 만들자고 했는데, 조만간 한국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싸움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릴게. 한국은 곧 설날이라는 큰 명절이 돌아와. 가족이 함께 모여 정을 나누고 돌아올 새로운 날들에 희망을 담는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므이안! 내년에는 뿔뿔이 흩어진 네 가족이 버마 새해에 맞춰 열리는 ‘띤잔 축제’에 함께 모여 행복한 웃음소리 가득하길 바랄게. 건강하고 안녕!
윤법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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