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4일치 아침 신문엔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강원도 양구군 최전방의 백두산부대를 방문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연평도 피격 이후 ‘단호한 대처’를 강조한 이 대통령은 백두산부대에서 “북한의 기습공격을 받으면 가차 없이 대반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와 는 1면 톱으로 이 기사를 썼다. 특히 는 1면에서 이어진 기사를 4면 톱으로 실었다. 와 , 등은 5면에 이 기사를 내보냈다. 대통령의 주요 일정이고, 대북 대응과 관련한 메시지가 나왔으니 기사로 쓸 법도 했다.
MB 전방부대 방문을 하루 뒤 대서특필한 이유
» 1월5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미디어행동 주관으로 긴급 종편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조·중·동과 매경이 종편 사업자가 된 것은 정부 편향 기사를 남발한 데 대한 정부의 ‘보은’ 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21 정용일
문제는 다음날이다. 는 12월25일치 1면 톱으로 이 대통령이 백두산부대를 왜 찾아갔는지 설명하는 상자 기사를 내보냈다. ‘뉴스분석’이라는 문패도 달았다. 기사에선 “이 대통령이 ‘위기 상황 속에서 최전방을 찾아 장병들을 만나는 게 통수권자가 할 일’이라고 말했”고, “북한 위협으로부터 가장 위험한 부대를 가겠다. 혹한에 시달리는 험준한 산악의 초소를 찾아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북한 군과 가장 가까운 동부전선의 OP에 현직 대통령이 방문한 건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20여 년 만”이라며 부대 방문에 큰 의미도 부여했다. 그런데 과연 이게 다음날까지 분석할 만한 기사였을까?
사실 이 대통령은 백두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내가 북쪽과 가장 가까이 마주 보고 있는 부대, 아주 추운 부대를 가겠다고 해서 거리에 상관없이 왔다”고 말했고, 신문은 이 발언을 실었다. 그런데도 가 이튿날 또다시 기사를 내보낸 건 종합편성채널(종편) 사업자 선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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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사업자로 선정된 한 신문사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자 발표(지난해 12월31일) 전까지 엄청 조심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는 가급적 안 쓰거나 축소하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기사는 최대한 부각시켰다. 사장부터 나서서 종편 선정에 사활을 건 마당이니 데스크도 그런 방향으로 요구하고, 기자들 스스로도 자기검열을 강하게 하는 분위기였다.”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가면 사업자에 선정되지 못할까봐 일선 기자까지 ‘노심초사’했다는 것으로, 정부가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사업자 선정 발표를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뤘다는 해석이 억측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다른 언론사의 한 정치부 기자는 “사업자 발표를 앞두고, 종편에 뛰어든 다른 회사 기자들에게서 ‘곧 발표가 나니 바짝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거나 ‘종편에서 탈락하면 정치부장이든 여당 출입기자들이든 경질될 수 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고 했다. 한나라당의 한 고참 보좌관은 “종편 선정이 어떻게 돼가는지 알아보려고 기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러면서도 ‘데스크, 논설위원들 너무 심하다. 종편 때문에 여권 비판 기사는 못 쓰게 하거나 뜯어고치고, 사설·칼럼도 노골적으로 정부 편만 든다’며 하소연을 하더라”고 전했다. 신문사들이 기자와 기사를 이용해 종편 사업권을 ‘앵벌이’한 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기자는 기업에 투자 부탁하며 ‘앵벌이’
종편 선정 기준이 ‘정치적 고려와 판단’일 것이라는 예상이 노골적인 정부 편향 기사를 낳았다면, 투자자 유치 경쟁은 기자를 ‘영업사원’으로 만들었다. 종편에 선정된 한 신문사에선 기자들에게 기업에서 투자확약서까지 받아오도록 했다. 이 회사의 한 기자는 “데스크가 지시해 출입처는 물론 개인적으로 아는 기업이나 평소엔 잘 만나지도 않는 작은 기업에까지 찾아가 1억원이든 2억원이든 우리 회사 종편에 투자해달라고 부탁했다. 다들 자존심 상해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종편 선정사의 기자도 “팀장급 이상은 투자자를 유치해오라고 편집국에 공식적인 요구가 왔다. 이들은 대부분 돈 댈 기업을 찾아서 회사에 소개하고, 투자 양해각서를 맺는 자리에도 동석하는 등 큰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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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돈을 대준 기업들은 언론사들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줬을까? 경제부 소속인 한 일간지 기자는 “오늘 나온 A기업 기사는 3억원짜리, 어제 나온 B기업 관련 칼럼은 5억원짜리라는 식으로 신문사들이 기업에서 종편 투자를 받는 대가로 홍보성 기사를 써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확인할 길은 없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 출자자 명단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탓이다. 어쨌거나 종편이 되려고 언론을 포기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는 셈이다.
“기자들이 ‘데스크, 논설위원들 너무 심하다. 종편 때문에 여권 비판 기사는 못 쓰게 하거나 뜯어고치고, 사설·칼럼도 노골적으로 정부 편만 든다’며 하소연을 하더라.” -한나라당의 한 고참 보좌관종편 선정은 끝났지만, 정권 홍보와 기업 압박 행태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지금도 포화 상태에 가까운 방송시장은 종편 4개가 더 뛰어들면서 ‘블러드 오션’이 될 게 뻔하기 때문에 조·중·동 등이 특혜를 받으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라는 논리다. 전조는 올해 처음 발행된 1월3일치 신문에서부터 감지된다. 이날 는 사설에서 “정부가 종편 설립 취지를 살려나가려면 종편의 자립을 촉진하는 관점에서 종편의 채널 위치 배정 방식과 광고 확대 정책 내용을 다시 고민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며 노골적으로 특혜를 요구했다. 는 외부 칼럼을 통해 “종편이 시장에 안착해 애초의 목표를 구현하기까지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날엔 일제히 이 대통령의 새해연설이 실렸다. 는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유연한 자세” “현실주의 외교정책”으로 평가한 데 이어, 사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일에 욕심이 많고, 실제로 쉬지 않고 일해 많은 성과를 거둬온 것이 사실”이며 “신년연설은 대통령의 이런 평소 소신과 태도가 집약”돼 있고 “이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각종 정치 비리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라고 추어올렸다. 는 이 대통령이 “‘새로운 10년’의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썼다. 이런 보도를 놓고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주요 일간지 일일 모니터 브리핑’을 통해 “종편 얻은 조·중·동, 오늘도 ‘MB 띄우기’ 열심”이라고 비꼬았다.
“언론-정권 유착 계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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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의 이런 보도 태도는 여론을 왜곡시킨다. 특히 정권 말기로 가면 권력형 비리가 집중적으로 터져나오는데,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조·중·동이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으면 독자는 알 권리를 제대로 충족할 수 없다. 조준상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정권이 뒷배를 봐줘야 종편이 광고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에 조·중·동은 정권과의 유착을 끊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미국에서 진행 중인 BBK 소송을 비롯해 권력형 비리의 소지가 될 만한 내용을 취재해놓고, 그걸 바탕으로 채널 배정, 광고 특혜 등을 놓고 끝까지 정권과 밀고 당기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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