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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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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풍자의 정신 간직한 시민들에 경의”



G20 홍보물에 쥐 그림 그려 입건된 대학강사 박아무개씨

“재미난 퍼포먼스나 운동의 에너지로 이어지길 원해”
등록 2010-11-18 11:43 수정 2020-05-03 04:26
지난 10월31일 새벽 서울 종로 주변 가판대에 붙여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작은사진)에 쥐를 그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대학강사 박아무개(40)씨. 한겨레 정용일 기자

지난 10월31일 새벽 서울 종로 주변 가판대에 붙여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작은사진)에 쥐를 그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대학강사 박아무개(40)씨. 한겨레 정용일 기자

“행위의 의미를 따진다면 ‘법과 상상력의 싸움’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 10월31일 새벽 서울 종로 주변 가판대에 붙여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작은 사진)에 쥐를 그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대학강사 박아무개(40)씨는 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다. 미술을 전공한 예술가도, 각종 집회 및 시위에 몸을 던지는 활동가도 아닌 그는 그날 그린 ‘작품’으로 하루아침에 ‘G20을 방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위험인물’이 됐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박씨를 현장에서 긴급체포해 검찰의 지휘에 따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손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영장은 기각됐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이 과잉 조처였는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위험인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11월10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박씨를 만났다.

“예술가들이 예술을 사회 쟁점과 일상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무거운 저항이 아니라 상상력을 해방시키는 방식의 유머나 풍자가 더해지고, 그런 저항의 기술이 확산됐으면 한다.” 포스터에 그림을 그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해달라.

지난 5월 낙동강 상주보 건설현장에 답사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해 제작된 자전거도로를 봤다. 실제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경사로에 조성해놓은 자전거도로를 보고 이거야말로 대단한 공공미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용적 가치가 전혀 없는데 단지 전시용으로 국토를 파괴하면서까지 만들고 있었다. 두 달 뒤인 지난 7월에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기획하는 웹진 와 관련해 서울시의 디자인서울 홍보 포스터에 스티커를 붙이는 ‘해치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을 만났다. 그들을 보면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 하지 못하는 심리적인 선을 넘어보고 싶었다. 정부가 한창 G20 정상회의를 홍보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공부하는 이들과 뭔가 해보고 싶었다. 어떤 형태로 할까 고민하다가 홍보 포스터를 배경 삼아 해보기로 한 거다.

청사초롱이 그려진 포스터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문학을 전공해서 사회·경제학적 분석보다 상징적인 분석을 하게 되는데, 청사초롱이 그려진 포스터를 보고 ‘필이 꽂혔다’. G20 정상회의 의제와 관련된 내용의 포스터가 아니라 귀빈을 맞이하겠다는 청사초롱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가 붙여진 게 의아스러웠다. 외국 정상들을 영접하는 자세가 의제나 결과물보다 중요하다는 게 이해가 되나. G20의 성격과 정부의 태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게 청사초롱이다. 그 이미지와 의미를 생각하다가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로 한 거다.

그림을 그리러 나설 때 기분이 어땠나.

그래피티 아트를 처음 해보는데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흥분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전대미답에 다가서는 기분이었다. 경찰이 민감하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예상은 했다. 스텐실 기법으로 종이 위에 이미지를 그리고 칼로 오려내 본을 만든 다음 그림을 그릴 곳에 본을 붙이고 검은색 스프레이를 뿌리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새벽에 완성한 그림이 아침까지 남아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인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사진이 남아 있으면 트위터 등을 통해 알려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하필 쥐를 그렸나.

일차적으로 지(G)라는 알파벳을 읽었을 때 한국어 발음에서 바로 연상되는 동물 ‘쥐’를 떠올렸다. 이번에 그래피티를 하는 데 영향을 많이 받은 영국 작가 뱅크시의 작품에도 쥐가 자주 등장한다. 쥐는 권력자를 상징하기도 하고, 공동체를 갉아먹는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쥐에 대해 종적인 차원에서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단지 쥐라는 동물의 이미지를 선택한 것뿐이다. 물론 의식의 한 귀퉁이에서 쥐라는 동물이 특정 인물과 결합됐을 거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거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특정 인물에게서 쥐라는 동물을 도출한 것은 아니다.

그림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낙서 정도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느냐는 반응과 국가 행사인데 이렇게 해도 되느냐는 반응이 반반이다. 공공미술을 하는 이들이 내가 한 일을 지지하고 소개해주는 글을 쓴 것을 볼 때 가장 기분이 좋고 고맙다. 예술가들이 예술을 사회 쟁점과 일상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예술뿐 아니라 시민적 저항에도 이런 에너지가 전해졌으면 한다. 무거운 저항이 아니라 상상력을 해방시키는 방식의 유머나 풍자가 더해지고, 그런 저항의 기술이 확산됐으면 한다.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이 넘었다. 전과 비교해 달라지거나 명확해진 것이 있다면.

정부의 이미지나 명예를 훼손하는 시민들의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정부의 태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촛불집회로 임기 초반에 겪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정부의 권위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데 유난히 민감하더라. 다행인 것은 시민들에게는 유머나 풍자의 정신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국가에 무조건 헌신하기보다 해학의 표현을 용납하는 이가 많다는 것에 안도했다.

우려되는 점은 없나.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혹여 그래피티를 하고 있거나 하고 싶은 사람들이 위축되지 않을까, 그래피티 자체가 구속감이라고 여겨질까 걱정이다.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정부가 웃음거리가 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행위로 인해 개인에게는 큰 불이익이 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나. 거꾸로 이번 사건으로 그래피티가 부딪힐 수 있는 법적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했으니, 구속을 두려워하기보다 더 많은 이들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스텐실 기법을 이용한 그래피티는 약간의 기술만 습득하면 누구나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장르다. 나도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데 하지 않았나.

이번 G20을 둘러싼 상황에서 아쉬운 점은 없나.

각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떤 의제가 어떻게 다뤄지는지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실제 실효성 있는 결론이 나오기도 어렵다. 우리가 주목하는 건 주변적인 사건이다. 정상회담에 초대받지 않은 이들이 모여 각각의 단체나 개인적 차원에서 여러 문제를 고민해보고, 서로의 문화나 노하우를 공유하는 연대의 경험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모이겠나. (웃음) 재미있는 방식의 퍼포먼스나 행동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번 G20에는 그런 모습이 충분치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보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번 사건으로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을 복기해보고, 공부할 거리를 찾아내고 싶다. 싸움의 기술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휴대전화다. 휴대전화로 인해 위치와 연락처 등이 너무 쉽게 노출됐다. 체제와 시스템에 맞서는 대안적 삶을 얘기하려면 다른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전자우편 등 소통 수단도 마찬가지다. 진보한 기술과 매체에 존재하는 논리와 권력, 감시에 무감각했다는 걸 느꼈다. 원시적이고 야생적인 삶의 기술, 소통의 기술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시스템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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