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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들’을 위한 살가운 위로



르포·만화·수다로 오늘의 청년세대를 통해 과거의 전태일을 기억하는 책 <너는 나다>
등록 2010-11-04 15:23 수정 2020-05-03 04:26
사이드2 -서평기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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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을 부끄럽게 하는 이름, 전태일. 이 아름다운 청년의 40주기를 맞아, 대표적인 사회과학 출판사 네 곳이 함께 모여 그의 뜻을 기리는 책을 펴냈다. (레디앙·후마니타스·삶이보이는창·철수와영희 펴냄)가 그것. 4개의 출판사가 공동 기획을 통해 한 권의 책을 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황지우 시집 에서 따왔을 듯한 제목은, 1970년의 전태일이 오늘에도 현현한다는 이 책의 출판 의도를 또렷하게 담아낸다. 먼저 레디앙이 기획한 1부는 경기 평택의 대학생에서 경남 거제의 선박공까지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6명을 찾아 그들의 삶과 일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쓴 손아람 소설가는 1960년대 전태일과 2000년대 전태일의 삶을 △가족 △학창시절 △사랑 △노동으로 나눠 각각 견줘본다. 예컨대 1967년 2월에 찾아온 전태일의 첫사랑을 소개하면서, 짝사랑 짝꿍에게 말 한번 못 건넨 2000년대 부산 사나이 전태일을 언급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결국 오늘의 전태일이 어제의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회과학 출판사 4곳이 함께 펴내

후마니타스는 만화가 이창현·유희씨가 쓰고 그린 만화 ‘나태일 & 전태일’에서 여전한 노동세계의 부조리함과 ‘외계인’에 빗댄 이주노동자의 처지를 풍자적으로 다뤘다. 게임회사에 다니는 주인공 나태일은 전태일을 본받으라는 형에게 (자기 생각대로 살다 갔다는 점에서) 전태일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거침없지만,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에 불과한 외계인의 처지에 공감할 줄 아는 여린 마음을 지녔다. 만화는 전태일을 둘러싼 형제의 언쟁 위에 그들이 종종 가는 편의점 알바 여학생의 고단함을 얹는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나태일과 형, 이주노동자 외계인, 그리고 알바 여학생이 함께 물놀이를 떠난다. 답답한 일상의 출구전략인 셈이다. 서로 처지가 다른 사람들이 연대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 주는 흐뭇함은 작위적인 느낌마저 눈감게 한다.

<너는 나다>

<너는 나다>

삶이보이는창은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조성주씨의 ‘청춘일기’와 의 저자 임승수씨의 ‘청춘수다’를 통해, 반지하와 알바로 상징되는 ‘88만원세대’ 청년들의 상처와 욕망을 들여다봤다. 젊은 보수 또는 안정적인 직업만을 좇는 세속적인 세대로 비친 청년세대가 실은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빛살 틔우며 분투하고 있다는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애틋했던 대목. “누가 뭐래도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라고, 오늘 짐을 다 옮기고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게 한번 달리고 나면 기분이 괜찮아질거라고, 흔들리는 건 내가 아니라 세상이라고….”(122쪽) 희망 없는 청춘의 터널에서도 젊음은 이렇듯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

철수와영희는 청소년이 궁금해할 노동에 관한 50가지 질문을 골라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소장의 친절한 답을 실었다. 노동이 무엇인지, 한국 사회에 왜 비정규직이 많은지, 흔하지만 학교와 언론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사실을 일러준다.

전태일을 새롭게 상상하는 일

약한 이웃의 곁에 머문 형이고 오빠였던 그가 고단한 삶을 사는 오늘의 전태일이 안쓰러워 재림한 것일까. 는 ‘열사’라는 이름에 갇혀 새롭게 그를 상상할 수 없는 젊은세대에게 어제의 전태일이 건네는 살가운 위로처럼 보인다. “그가 지금 살아 돌아온다면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는 대신, 편의점 같은 곳에 있는 ‘알바 전태일’을 만나러 갈 것 같다”라는 책의 머리말은 어제의 전태일이 오늘 어떻게 계승돼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한편, 전태일의 가치를 더 알리려는 순수한 뜻에 맞게 판매·출판 비용을 넘어서는 이익금은 전태일재단에 기부될 예정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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