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597원까지 상승했던 환율이 1114.5원(10월7일 기준)까지 하락했다. 원화의 가치가 점점 올라가는 것이다.
환율이란 우리나라 원화와 기축통화인 달러 사이의 교환 비율을 말하며, 두 나라 통화 간의 상대적 가치를 나타낸다. 환율이 달러당 1200원에서 1100원으로 내리면, 1만원으로 8.3달러를 바꾸던 것이 9.1달러까지 바꿀 수 있게 된다. 원화로 더 많은 달러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원화 강세다. 앞으로 원화 강세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환율 하락의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2010년 12월, 환율 1080원 수출기업 채산성 우려11월, 미국 중앙은행은 1조 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을 확대하기로 했다. 1조 달러가 외환 시장에 풀리자 달러의 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대신 유로화·엔화 등의 가치가 올라갔고, 덩달아 원화도 가치가 올라 환율이 달러당 1080원까지 떨어진 것이다.
올해 경영계획을 달러당 1200원에 맞춰 잡았던 수출기업 ㄱ사는 환율이 떨어지자 울상이다. 환율 때문에 제품 가격이 자동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원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개발을 한 것도 도로묵이 됐다. 기술 격차가 줄어든 수출시장에서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해외 바이어들이 금세 발길을 돌린다. 반면 미국에서 상품을 수입하는 무역상 ㄴ씨는 요즘 살맛이 난다.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1500원까지 치솟을 때는 사업을 포기할까도 고민했는데, 꿋꿋이 견뎌냈더니 볕들 날이 온 것이다. 환율이 1500원 일 때는 100달러짜리 상품을 국내에 들여오면 15만원 이상에 팔아야했지만, 이제 12만원에 팔 수 있어 수지가 쏠쏠하다. 그러나 ‘환율 급락에 따른 무역수지 흑자 대폭 감소’라는 뉴스에 왠지 개운치는 않다.
한편,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난상토론이 이어진다.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과 원화 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이 맞섰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외국인들이 국내 금융시장에 몰려 원화 수요가 늘어나는 탓에 원화 가치가 더욱 오르는 ‘환율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2011년 3월, 환율 1050원 울고 웃는 손익계산서
인천공항은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로 매주 토요일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3년 만에 해외여행을 간다는 김씨는 환전하기 위해 들른 은행에서 환율 고시 전광판을 보고 웃음꽃이 핀다. 재작년만 해도 100만원으로 630달러밖에 바꿀 수 없었지만, 이제는 950달러까지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원화로 환산한 항공료 인하와 여행객 증가로 항공사와 여행업체는 오랜만에 ‘원고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또한 환율의 추가적 하락이 예상되자, 해외에서 신용카드 사용액도 늘어났다. 실제 사용한 날짜와 결제 날짜의 환율 차이를 이용해 이득을 보는 스마트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 남대문시장과 명동에 넘쳐나던 일본과 중국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고, 국내 호텔은 빈 방이 넘쳐난다.
여행·유학·연수 등이 늘어남에 따라 여행수지가 매달 20억달러 적자로 늘어나고, 무역수지 또한 적자로 돌아서는 바람에 경상수지 적자 폭이 50억달러로 커졌다. 매일 뉴스에는 ‘국내 경제 빨간불’을 진단하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2011년 6월 세 자릿수 환율 시대 도래거침없는 원고 추세가 이어져 마침내 환율 1000원이 무너졌다. 2008년 3월18일 1000원대로 올라선 지 2년 3개월 만이다. 국제투기자본은 안전자산인 미 국채에 투자한 자금을 빼내 금과 석유 등 상품시장에 치중했다. 그 결과 달러 가치는 더욱 하락하고, 금값과 유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그만큼 원화는 계속 가치가 올라 세 자릿수 환율 시대가 온 것이다.
매달 2조원이 넘는 외국인의 주식 매수가 꾸준히 이어져 종합주가지수도 2000을 넘어섰다. 환율이 1200원이던 2010년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60만원에 대량 매수했는데, 지금은 주가가 80만원을 웃돌고 있다. 여기에 환율 1000원이 붕괴되면서 환율 차익까지 생겨 60%에 달하는 수익률을 달성했다. 외국인들은 서서히 주식을 팔아 차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
한편, 그동안 고환율로 해외 어학연수를 나가지 못했던 학생의 부모들은 방학을 맞아 유학 준비에 분주하다.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들도 추가적인 환율 하락 가능성이 예상되자 달러 송금 시기를 늦추고 있다.
2011년 9월, 환율 950원 원화 강세, 위기 우려수출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더 이상 채산성이 맞지 않아 해외에 물건을 팔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외환시장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환율 하락에 따른 시나리오별 비상 사업계획 마련에 분주하다.
중소기업은 원화 강세로 외국에서 들여오는 원자재를 좀더 싸게 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기업의 납품 단가 인하 압력으로 남는 게 없어 울상이다. 특히 대기업은 외국시장에서 원화 강세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매일 납품업체에 단가 인하를 강요하는 실정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환율이 1100원이던 시절 휴대전화 수출 가격이 100달러였다면 환율 950원이 된 현재는 115달러에 팔 수밖에 없어 수출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내수시장에서는 외국 제품이 잘 팔린다. 일본이나 유럽의 자동차는 매달 새로운 판매 기록을 세우고 있고, 백화점의 수입 상품 코너에는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울상이다. 설탕·밀가루 등 대표적인 수입 상품이 환율 하락으로 값이 내려야 하는데, 여전히 그대로다. 환율이 지난해(1150원)에 비해 17%나 떨어졌는데도, 환율이 오를 때 재빨리 제품 가격에 반영한 기업들이 이번에는 생색내기에 그치며 행동이 여간 굼뜬 게 아니다.
마침내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했다. 외국인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대규모 매도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상투’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외국인들이 환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빠져나가는 것이다. 일주일 만에 환율이 100원 넘게 폭등했다. ‘Confidential’이라는 표지가 붙은 카드로 출입문을 열고 딜링룸으로 들어선 외환딜러 김 과장은 밤사이 AP·로이터 통신에서 보내주는 환율 동향에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지난 2008년 수개월 만에 환율이 900원대에서 1600원대까지 올라 많은 국내 기업이 위기를 호소한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기업들이 수개월 전 사들인 원재료 값을 결재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급격한 환율 상승으로 10%의 추가 부담이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환차손을 견디지 못한 중소기업은 무너졌고, 대기업 역시 명예퇴직이나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실업율은 지난해 3%대에서 5%대까지 껑충 뛰었다.
이같은 시나리오가 그대로 맞아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원화 가치 상승은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화 가치의 상승은 우리 경제와 생활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일까? 이는 대답하기 쉽지 않다. 글로벌 시대에 환율은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제주체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외 의존도와 자본 시장 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환율이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급격한 환율변동성을 막기 위한 정부의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여경훈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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