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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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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지방정부를 부탁해

야권 연대로 당선된 뒤 시민단체·진보정당과
정책 논의하는 공동위원회 실험 이어져
등록 2010-09-15 17:58 수정 2020-05-03 04:26
경기 부천시가 민주당은 물론 민노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부천시정운영공동위원회’를 지난 8월 출범시켰다. 각 지자체에서 공동지방정부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생기고 있다.경기 부천시 제공

경기 부천시가 민주당은 물론 민노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부천시정운영공동위원회’를 지난 8월 출범시켰다. 각 지자체에서 공동지방정부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생기고 있다.경기 부천시 제공

민주노동당 서울 성북구위원회 전택기(36) 부위원장은 김영배 구청장이 취임한 이후 매주 한두 차례 구청에 간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어떻게 추진할지를 구청 교육지원과와 논의하기 위해서다. 전 부위원장은 구청장 직속의 생활구정위원회 산하 친환경무상급식추진위원회에서 대학교수, 시민단체 간부, 초등학교장 등 다른 위원 10명과 함께 추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2007년부터 민노당 성북구위원회에서 봉사활동이나 집회 참여 등 많은 활동을 했지만, 실제 지방행정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석진 민노당 성북구위원장도 생활구정위원회(위원장 김수현 세종대 교수)의 15명 위원 중 한 명으로 참여하면서 구청장과 정기적인 간담회와 구정 자문 활동을 하고 있다.

부천시장 “임기 동안 지속되는 연대”

민노당이 성북구의 행정에 관여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5월18일 ‘2010 민주진영 승리를 위한 성북구청장 후보 정책협약’에 따른 것이다. 당시 민주당과 민노당은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 비정규직 축소, 참여예산제 확대 등의 공약을 공유하고 양당 단일 후보로 김영배 민주당 후보를 추대했다. 그리고 김 후보가 당선된 뒤 미리 합의한 대로 생활구정위원회에 민노당이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민노당을 비롯해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행정 경험이 없는 야당도 지난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지방행정 운영의 공동 주체가 되는 이른바 ‘공동지방정부’ 구성에 참여하고 있다.

애초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와 야당은 ‘5+4회의’로 불리는 연대를 추진했다. 하지만 진보신당이 협상에서 빠진 데 이어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야권 연대 합의문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야권 단일 후보는 물 건너갈 뻔했다. 그러나 지역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선거 연대가 이뤄져 야권 단일 후보가 출마했다.

그 결과 많은 지자체에서 야권 후보가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서울의 노원·동대문·성동·구로·도봉·서대문·강서·성북구, 경기도의 성남·고양·안산·광명·수원·하남·화성·안양·용인·부천시, 경남 김해시 등에서 야권 단일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꺾었다. 인천시는 민주당 인천시당과 민노당 인천시당이 연대해 정책 합의와 단일 후보에 합의했다. 강원도와 경상남도 역시 야권 연대를 이뤘다.

선거에 승리한 지자체들은 공동지방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 가장 앞선 곳은 경기 부천시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지난 8월17일 기자회견을 열어 부천시정운영공동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위원회에는 민주당 2명, 민노당 2명, 진보신당 1명, 국민참여당 2명, 시민사회단체 2명 등이 참여한다. 김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부천시정운영공동위원회는 일시적인 연대가 아니라 4년 임기 동안 지속될 것”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위원회는 선거 시절 합의한 공약인 △친환경 무상급식 △사회적 기업 육성 △주민참여예산제 실행 등을 실천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부천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안’ ‘부천시 사회적 기업 육성조례안’ ‘학교급식조례 일부 개정안’ 등을 만들어 시의회에 냈다. 이들 조례안은 지난 9월2일 시의회 상임위를 통과했고, 본회의 의결만을 남겨둔 상태다. 민노당 관계자는 “처음 시도되는 공동정부의 모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시 집행부와 야당이 함께 전체회의를 열어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자문기구냐 정책 추진기구냐 논란도

서울 도봉구도 민주·민노·진보·국민참여당과 시민단체가 참여한 협의체인 ‘도봉발전협의회’를 지난 9월1일 발족했다. 현재 조례안을 만들어 구청 내 공식 기구인 ‘도봉정책협의회’로 발전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이 밖에 서울 노원·구로·동대문구와 경기 안양·안산시 등도 야당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정책협의회나 공동운영위원회 등을 꾸리면서 공식 기구로 출범하기 위해 관련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경상남도는 강병기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을 정무부지사에 선임한 바 있다.

공동지방정부가 항상 성공적으로 추진되는 것만은 아니다. 자치단체장이 공동지방정부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이 없다면 성공하기 힘들다.

경기 고양시는 야권 연대의 성공적 사례로 꼽히지만, 선거 이후 공동지방정부 운영에서는 진척이 더디다. 민주당 출신인 최성 시장이 당선된 지 100일이 지났지만 공동지방정부는 안정적인 활동을 못하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약속대로 ‘고양시정공동운영위원회’(시정위)가 구성되긴 했지만 그 성격을 두고 시민단체와 시청 간 의견이 나뉜다. 시청은 ‘자문기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시민단체 쪽은 ‘정책 추진기구’라고 맞선다. 구시정위 구성 합의문에도 시정위는 △공약 추진 점검 △분야별·지역별 거버넌스(협치) 체제 구축 △고양시 발전정책 제안 등 자체 사업을 추진키로 돼 있다. 여기에 시정위 위원장 선출을 놓고 시민단체의 지지 후보와 최 시장 쪽 사이에 벌어진 갈등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주민 참여로 변화 체감할 수 있어야”

서울 서대문구도 선거 전 합의한 내용에 진척이 없다. 민주당을 비롯해 민노당, 국민참여당 등이 참여하는 정책협의회를 마련하기로 했지만 지난 8월17일 각 당에서 1명씩이 참여하는 정책협의회 준비위만 구성됐을 뿐이다. 그나마 9월10일까지 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정책협의회를 만들기 위한 조례안도 구청에서 마련하기로 했지만 진척이 없다. 민노당 관계자는 “민주당 출신 문석진 구청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야당 공조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구청장이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할 경우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승우 경희대 NGO대학원 겸임교수(정치학)는 “지금까지는 야권이 공동으로 추천한 후보가 단체장이 됐다는 것 말고 공동지방정부가 구성됐다는 걸 체감하기는 어렵다”며 “‘지분 나누기’식으로 선거 연합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자리를 나눠가지는 건 옳지 않지만, ‘비전위원회’ 형식으로 자치단체 발전에 기여하는 정책을 생산하고 추진하는 데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주민이 직접 의견을 내고, 논의 과정에 참여하고, 결정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공무원이나 전문가 중심으로 논의·결정된다면, 주민들은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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