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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고 위로하는 서정

최고의 시 문태준의 ‘가재미’…강렬한 첫인상과 긴 여운을 남기는 시
등록 2010-09-02 16:56 수정 2020-05-03 04:26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가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감탄을 자아내기는 하지만 이상해서는 안 되고, 독자의 생각을 넓히기는 하지만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시는 대개 ‘서정시’라고 부르는 영역 안에 있다. 이 중 당대의 시로 꼽히려면 강렬한 첫인상과 긴 여운이 또한 필요할 것이다. 미래 독자가 아닌 현재 독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는 한 번에 시선을 사로잡을 매력과 그것을 지속시킬 오랜 사유가 필요한데, 문태준의 ‘가재미’는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가자미처럼 병실에 납작하게 누운 큰어머니

〈가재미〉

〈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가재미’ 중)

‘가재미’에서 문태준은 죽음을 앞둔 큰어머니와 바다 밑바닥에 유영하는 가자미를 잇대놓아 감탄을 이끈다. 이 둘은 어떻게 닮아 있을까. 그녀는 병실에 가자미처럼 납작하게 누워 있다. 그녀는 눈이 한쪽으로 쏠린 가자미의 좁은 시야가 환기하듯 삶보다는 죽음만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녀 대신 그녀의 삶을 복원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오솔길”과, 그녀의 “뻐꾸기 소리”, 그녀의 “가늘은 국수”,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는” 그녀의 두 다리,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이 호명되는 과정에서, 그녀가, 그녀의 기억이 부활하기 시작한다.

시에서 그는 누웠고 보았고 떠올렸고 안다고 했다. 그는 그녀 옆에 가자미로 눕고, 그녀가 놓친 그녀의 과거를 대신 보고, 그녀의 눈물 속에 있는 삶을 떠올리고, 죽음만을 보는 그녀의 현재 상태를 아는(헤아리는) 것이다. 행위의 중심에는 그 자신이 아니라 그녀가 있다. 그의 시는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가 무엇인지 정성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정시에서는 그 특성과 역사 때문에 존중의 태도를 찾기 어렵다. 시인의 감정을 중시하는 서정시에서는 내가 슬프면 세계가 슬프고 내가 기쁘면 세계가 기쁘기 쉽다. 이것이 관습이나 권위로 굳어지면 내가 슬프기 위해 세계가 슬퍼야 하고 내가 기쁘기 위해 세계가 기뻐야 하는 것이 된다. 세계는 사라지고 자아만 남는 결과가 서정시에는 자주 보인다. 문태준은 존중의 태도로 둘레 세계와 그것의 기억을 서정시의 영역 안에 남겨놓았다.

 

나란히 곁에 누운 위로

그런데 그녀는 그의 위로를 받기만 하는 것일까. 죽음은 꼭 삶에 위로받아야 하는 것일까. 시의 마지막은 이렇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곁에 나란히 누운 뒤 눈에 맺힌 눈물 안으로 잠입해 그녀의 삶을 복원하는 시인의 경로를 거슬러, 그녀는 마지막 물기로 ‘나’를 적셔준다. ‘나’ 속에는 삶의 어느 단계에 목표를 설정한 뒤 죽음을 잊고 과거를 잊은 채 거기에 매진하는 ‘우리’가 포함돼 있을 것이다. 누워 있는 것은 우리의 망각이고 위안을 주려 곁에 누운 이는 죽음을 앞에 둔 그녀이자 시인이 되살린 그녀의 기억이다. 시는 이렇게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김종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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