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화학적 거세란 치명적 유혹



내년 7월 시행 앞둔 ‘약물치료법’, 부작용·인권침해 우려 속에 실효성 높은 심리치료엔 무대책
등록 2010-08-06 16:04 수정 2020-05-03 04:26
‘화학적 거세’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부터 본회의까지 단 하루만에 통과했다. 법률이 제정된 뒤인 7월26일 처음 열린 국회 토론회 모습. 의협신문 제공

‘화학적 거세’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부터 본회의까지 단 하루만에 통과했다. 법률이 제정된 뒤인 7월26일 처음 열린 국회 토론회 모습. 의협신문 제공

성호르몬이 흐르는 인간의 몸은 ‘언제나 흥분 대기 중’이다. 섹시한 누군가를 보거나 야릇한 기억이 떠올랐을 때, 오감이 받아들인 자극은 온몸을 휘감은 신경세포망을 따라 힘차게 달려간다. 이 자극은 뇌의 바닥 가까이에 형성된 고리 안에 특수하게 배선된 신경세포의 집합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변연계’다. 변연계가 자극되면 호흡이 가빠지고 동공이 커지며 맥박이 빨라진다.

이 시각, 뇌의 중간 아래쪽에 위치한 시상하부의 회색빛 세포 구획에서는 황체형성호르몬분비호르몬(LHRH·Luteinizing Hormone Releasing Hormone)이 분비를 기다리고 있다. 이 물질이 좁다란 통로를 따라 쥐어짜듯이 뇌하수체로 흘러들면 뇌하수체는 황체형성호르몬을 내보낸다. 황체형성호르몬은 목을 타고 내려가 폐를 가로질러 남성의 경우 고환을 향해 달려간다. 고환에 도착하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방출되고 발기가 시작된다.

법으로 약물을 투여해 성욕을 없앤다?

지난 7월23일 제정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하 ‘약물치료법’)은 약물로 이런 성적 흥분을 막는 방안이다. 법이 정한 약물치료의 방법은 △비정상적 성적 충동·욕구를 억제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서 의학적으로 알려진 것 △과도한 신체적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을 것 △의학적으로 알려진 방법대로 시행할 것 등 세 가지 조건을 달고 있다.

‘의학적으로 알려진 방법’은 모두 네 가지다. 우선 황체형성호르몬분비호르몬을 조절해 남성호르몬 생성의 길목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과 촉진하는 약물이 있다. 억제제는 호르몬 분비를 막는 방법인 반면, 촉진제는 한꺼번에 호르몬을 다량 방출시킴으로써 고갈시키는 원리다. 이 밖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을 억제하는 스테로이드계 약물과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제제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성범죄자 치료에 약물이 등장한 것은 1940년대부터다. 당시에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제제를 주사해 화학적 거세를 했다. 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교수(범죄심리학)는 “에스트로겐 제제를 사용하면 구역질, 혈전증, 여성형 유방 등 부작용이 심해 사용 적합성에 관한 논란이 제기되다가 점차 다른 약물로 대체됐다”고 말했다.

부작용이 심한 약물을 통한 화학적 거세는 비극을 낳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밍 가능 디지털 전자 컴퓨터 ‘콜로서스’를 만들어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던 앨런 튜링은 화학적 거세 부작용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 1952년 동성애자임이 발각돼 체포된 그는 당시 영국 법률에 따라 감옥 대신 화학적 거세를 선택했다. 그의 몸에는 주기적으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주사됐다. 1954년 6월8일 그는 집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의 옆에는 한입 베어문 사과가 떨어져 있었고 사과에는 독극물인 시안화칼륨이 주사돼 있었다.

대한비뇨기종양학회 총무이사인 이형래 경희대 교수는 “이른바 화학적 거세에 사용되는 약물 가운데 여성호르몬 제제는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약품군”이라며 “가장 추천할 만한 약물은 황체형성호르몬분비호르몬 억제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억제제는 세계적으로도 연구가 진행 중이며 국내에 소개된 약물은 없다.

화학적 거세 당한 천재의 자살

차선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황체형성호르몬분비호르몬 촉진제다. 주로 전립선암 치료에 사용되는 촉진제는 ‘에보트’라는 미국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루크린’이란 약물이 원조다. 이 약은 현재 특허 기간이 만료돼 국내에도 복제약이 출시돼 있다. CJ제약사업본부의 ‘루프린’, 대웅제약의 ‘루피어’, 동국제약의 ‘로렐린’ 등이다.

국내에서 이같은 약물이 주사된 경우는 전립선암 등 환자 치료를 위한 용도뿐이다. 그래서 일반인의 성욕구 억제를 위한 용도로 사용할 경우에 대한 임상실험은 국내에 전무하다. 따라서 성충동 약물치료의 부작용에 대한 정확한 자료도 없다. 제약회사가 밝힌 약물의 이상반응·주의사항에 비뇨기과 의사들이 전립선암 환자를 치료할 때 경험한 부작용을 보태 추정하는 것이 전부다.

루프린은 자궁내막증, 전립선암, 폐경 전 유방암 등을 앓는 환자에게 12주에 한 번씩 투여하도록 만들어진 약물이다. 주사 1회분인 11.25mg의 가격은 34만8582원이다. 제조사인 CJ제약사업본부가 밝힌 ‘중대한 이상반응’은 △발열, 기침, 호흡곤란, 간질성 폐렴 등 호흡기계 이상 △급성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과민성 쇼크 △간기능 장애 및 황달 △당뇨병 발병 및 증상 악화 △갱년기 장애 형태의 우울증 △뇌하수체-생식샘계 자극에 의한 골통증, 요로폐색, 척수 압박 등이다. 제조사는 “이 약의 투여에 의해 뇌경색, 정맥혈전증, 폐색전증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다”고 밝혔다.

루피어와 로렐린은 4주마다 한 번씩 주사한다. 루피어 제조사인 대웅제약은 “전이성 척추 손상이나 요로폐쇄증을 수반한 환자는 치료 초기 몇 주 동안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또한 당뇨병·고혈압 환자나 우울증 병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신중히 투여해야 한다고 밝힌다. 루피어와 로렐린의 부작용은 루프린과 대부분 일치한다.

이런 부작용은 촉진제가 ‘남성호르몬 일시 대량 방출’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첫 주사를 맞은 뒤 2~3일 동안 급격히 많이 분비되는 남성호르몬 때문에 배뇨 곤란이나 전신의 화끈거림, 폐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호르몬이 고갈된 이후에는 성적 자극을 받아도 발기가 되지 않거나, 발기가 되더라도 성행위를 할 정도로 유지되지 않는다. 성욕도 저하된다.

 

외국에선 심리치료 중심, 약물 투여 보조

부작용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 만큼 화학적 거세는 재범 방지에 효과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두 가지 면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 약물 요법은 투약이 중지되면 성욕구가 언제든 되살아나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수정 교수는 “외국의 교정시설에서는 성범죄자에게 지속적으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하며 약물은 보조적으로 사용한다”며 “단순한 약물 투약이 지닌 범죄 예방 효과는 기대보다 훨씬 낮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허찬희 법무부 치료감호소 의료부장은 “화학적 거세가 법률로 인정되고 있는 미국 뉴욕주와 뉴저지주의 성폭력 센터를 지난해 방문했는데, 그들은 약물의 부작용을 우려해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화학적 거세도 시행하지 않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화학적 거세의 법적 근거가 존재함에도 부작용을 우려해 심리치료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1980년대 이후 성범죄자 치료에 ‘인지행동치료’가 도입됐다. 범죄자에 대한 체계적 검사를 바탕으로 맞춤 치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인지 재구조화, 사회기술 훈련, 피해자 공감하기, 혐오 치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심리치료를 진행한다. 2006년에는 미국에서 인지행동치료를 실시하고 8년 뒤 재범 여부를 추적한 결과 14.9%의 재범 감소 효과가 있었다는 보고가 발표됐다. 뉴질랜드에서는 16살 미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이 가운데 자원자를 대상으로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주에 걸쳐 임상면담과 심리검사를 한 뒤 지속적인 면담과 집단치료 방식의 심리치료를 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범죄자들의 재범률이 15~20%인 반면 참여자들은 3.2%에 불과하다.

영국에서는 27개 교도소에서 성범죄자나 성적 요소가 있는 폭력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면담, 심리검사, 건강 상태 측정, 일탈적 성적 기호에 대한 심리·생리 검사 등을 진행한 뒤 주당 2~5회의 인지행동치료를 하게 된다. 1년간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성범죄자가 1천 명을 넘어서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 인지행동치료는 이제 겨우 첫 발을 뗀 수준이다. 성도착증 환자인 성범죄자에 대한 치료감호는 지난 2008년 12월에야 시작됐다. 하지만 성범죄자 전반에 대한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판에서 검사가 치료감호 요청을 한 일부 성범죄자만을 대상으로 할 뿐이다. 현재 성도착증 등 정신질환이 인정돼 충남 공주의 법무부 치료감호소에 수감된 성범죄자는 30여 명에 불과하다. 이들의 심리치료를 담당할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정신과·외과·치과를 합쳐 모두 15명의 전문의가 성범죄자를 포함해 정신분열·마약중독·인격장애 환자 900여 명을 돌보고 있다. 

법무부는 영등포·마산·순천 교도소에 아동성폭력사범 집중처우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심리치료와 관련해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전무한 실정이다. 한 집중처우센터 관계자는 “집중처우센터로 지정만 됐을 뿐 수백 명의 성범죄자를 개별적으로 상담하거나 치료하는 프로그램은 없다”고 말했다. 성범죄자 개개인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일괄적인 성평등 교육만 간간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이번에 통과된 ‘약물치료법’은 성충동 약물치료를 ‘약물 투여 및 심리치료 등의 방법으로 도착적인 성기능을 약화 또는 정상화하는 치료’라고 정의하지만, 정작 심리치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두 번째 우려는 ‘본인 동의’와 관련돼 있다. 법 시행 이후 재판을 받는 성범죄자는 ‘검사의 청구 → 전문의의 진단 → 법원의 결정’이란 절차를 통해 화학적 거세가 정해지면 거부할 권한이 없다. 이경환 변호사는 “기본권 제한은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약물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현행법은 위헌의 소지가 크다”며 “대상자의 동의와 통합적 성범죄자 치료, 교육 프로그램 마련 방안 등을 포함하는 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본인 동의 없는 화학적 거세는 기본권 침해뿐 아니라 치료의 실효성 측면에서도 의심받고 있다. 허찬희 법무부 치료감호소 의료부장은 “화학적 거세의 경우 본인의 동의하에 의사와 긴밀히 협의해가면서 약물을 투여해야만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인이 동의한 상태에서 성욕구 조절을 위해 노력하면서 약물치료를 받아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가석방 받으려 무리한 지원자 나올 수도
‘화학적 거세’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황체형성호르몬분비호르몬 촉진제. 현재는 전립선암, 자궁내막증 등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화학적 거세’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황체형성호르몬분비호르몬 촉진제. 현재는 전립선암, 자궁내막증 등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한편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의 경우 ‘약물 남용’이 우려된다. ‘약물치료법’은 화학적 거세를 법 제정 이전에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에게까지 소급 적용하기 위해 “수형자 중 약물치료에 동의하는 사람에 대하여 관할 지방법원 등이 치료 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경환 변호사는 “약물치료가 가석방의 요건이 될 수 있어 가석방을 원하는 수형자들이 무리하게 화학적 거세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무부가 밝힌 운영계획을 보면 ‘약물치료법’ 시행을 위해 앞으로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기본적으로 아직 한국에는 성도착증 환자를 진단하는 절차나 도구가 표준화되지 않았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정신과)는 “성도착증 환자의 진단 기준은 주로 서양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행동적 진단 기준이므로 우리 현실에 맞는 진단 기준과 진단 과정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법무부는 표준화 작업을 위한 연구용역과 성호르몬 조절 약물의 종류와 투여량, 투여 주기 등 투약 방법을 결정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준비가 부족한 위험한 시행

약물치료 대상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문제다. 성범죄자에게 약물을 주사하는 시기는 출소가 임박한 시점부터 출소 이후까지 이어진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석 달에 한 번씩 치료 대상자가 일정한 장소에 찾아와 주사를 맞아야 한다. 법무부는 약물치료 대상자를 관리·감독하기 위해 보호관찰관을 투입할 예정이다.

아동 성범죄를 향한 전 국민적 분노에 힘입어 하루 만에 국회를 통과한 화학적 거세 법안. 하지만 화학적 거세에 사용할 약물도, 거세당할 대상도, 방법도 모호한 상태로, 더구나 심리 치료라는 큰 줄기를 놓친 채 시간은 법 시행 날짜인 2011년 7월24일을 향해 흐르고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