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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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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전역, 집중호우에 와르르



녹색연합 조사 결과 2008년 이후 고산지 6곳 이상 대규모 산사태…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천혜의 자연림 파괴
등록 2010-07-29 23:11 수정 2020-05-03 04:26
남덕유산 북사면 골짜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숲을 쓸어냈다. 녹색연합 제공

남덕유산 북사면 골짜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숲을 쓸어냈다. 녹색연합 제공

백두대간이 무너지고 있다. 산사태로 백두대간에 스키장만 한 훼손지가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발견된 산사태는 주로 지리산과 설악산 등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2008년 이후 백두대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녹색연합은 2008년 이후 2년여 동안 주요 산지를 항공 촬영 등으로 모니터링했다. 조사결과, 강원도 인제 설악산 가리봉·점봉산, 경북 김천 대덕산, 경남 거창 남덕유산, 경남 함양 백운산 등 해발 1천m가 넘는 고산지역 가운데 적어도 6곳 이상에서 2008년 이후 산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악산 가리봉(1518m)은 백두대간 산사태 발생 지역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약 30곳에서 크고 작은 산사태가 일어났다. 해발 1310~1460m까지 주로 1300m 이상 지대에서 발생했다. 정상 봉우리를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산사태가 발생해 아래쪽으로 쓸려 내려갔다. 산사태 발생 지역은 인근 도로에서 잘 관찰되지 않아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눈에 안 띄는 고산지역, 하늘에서 보면 ‘헉’

점봉산(1424m)의 경우, 정상과 곰배령 일대를 포함해 모두 3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점봉산은 국내 천연림의 상징이다. 수백 년 된 참나무 군락을 비롯해 200년 이상 된 사스래·거제수 등 고산 활엽수들이 켜켜이 들어차 있어 국내 으뜸의 원시림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이런 원시림의 속살을 흉기로 도려내듯 산사태는 숲과 나무를 쓸어내버렸다. 산사태 발생 지점은 역시 해발 1200m 이상이었다. 곰배령은 야생화의 천국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곰배령 고갯마루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5km가량 떨어진 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야생화는 물론 숲도 남아나지 못한 채 계곡으로 사라졌다. 주변 지역의 숲이 울창하고 발생 지역이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어 역시 아무도 산사태 현장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북 장수군과 경남 거창군의 경계에 자리한 남덕유산(1507m)에서도 천연림이 송두리째 쓸려 내려갔다. 전북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 토옥동 계곡 최상류 지역인 해발 1050m 부근에서 토양 전체가 산사태로 밀려 내려갔다. 60년 이상 묵은 생태자연도 1등급 이상의 숲이 사라지고, 지금은 산꼭대기부터 계곡에 이르기까지 암반만 남았다.

전북 무주, 경북 김천, 경남 거창 등 3개 도에 걸쳐 있는 대덕산에서는 해발 1160m 지역에서 산사태가 발생했고, 전북 장수와 경남 함양에 자리한 백운산에서는 해발 930m 지점에서 산사태가 터져나왔다. 백운산은 덕유산과 지리산을 연결해주는 백두대간 남부 지역의 대표적 생태축이다. 산사태가 발생한 곳은 함양군 서상면 부전계곡 최상류 지역이다.

새롭게 확인한 현장과 함께 지리산과 설악산 등 2000년대 초·중반에 발생한 산사태 지역도 점점 넓어지고 있음을 이번에 확인했다. 대표적인 곳이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 사이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연결되는 지역이다. 2006년 산사태가 발생한 이후 사태면이 더 넓어지고 있다. 지리산 중봉에서 칠선계곡으로 연결되는 곳도 해가 갈수록 피해 면적이 확산되고 있다. 두 곳 모두 등산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서 보면 입에서 헉 소리가 날 지경이다. 특히 겨울에 눈이 쌓여 있을 때는 설악산 대청봉과 지리산 천왕봉 옆에 대규모 스키장이 들어선 것처럼 보일 정도다.

설악산 대청봉 동쪽 사면에서도 산사태가 일어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토사가 더 쓸려가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설악산 대청봉 동쪽 사면에서도 산사태가 일어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토사가 더 쓸려가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매년 1천ha 이상 피해

스키장의 슬로프 면적에 버금가는 규모의 토양과 숲이 쓸려가듯 사라지고 암반만 남아 있는 이들 산사태 현장은 대부분 자연림 지역이었다. 국토를 통틀어 자연환경이 가장 우수한 곳이었다. 게다가 해발 1천m가 넘는 고지대는 식생의 적응이 저지대와는 확연히 달라, 한번 훼손되면 생태계 복원이 매우 어렵다. 다른 지역에서 헬기로 흙을 떠오거나 발생 지역 주변의 토양을 이식하는 방법이 있지만, 고지대의 경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엄청나다. 저지대나 평지에 비해 5~10배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여러 자연현상 가운데 산사태는 최근에 등장한 ‘특이 현상’이다. 지금까지는 도로를 비롯한 공공시설과 무리한 택지·농지 개발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난다는 인식이 많았다. 기왕의 숲이 산불이나 그 밖의 훼손으로 황폐화된 곳에서 발생하는 일도 가끔 있었다. 자연림이 아닌 인공림이나 조림 지역, 즉 무성한 숲을 이루지 못한 곳에서도 간혹 산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산사태는 이런 난개발과 별 상관이 없고, 자연환경도 가장 우수한 곳에서 발생했다.

특히 백두대간은 숲의 건강성으로 보아 산사태와 거리가 먼 곳이었다. 가장 울창하고 안정된 숲이 백두대간이다. 한국의 20개 국립공원 가운데 14개가 산악형인데, 이 중 지리산·설악산·오대산 등 7개가 백두대간에 있다. 산림이 풍부하고 식생도 최고에 가까운 천연림 지역이다. 그런데도 산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 없던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여름철 게릴라성 집중호우에 있다. 특정 지역에 하루 200~300mm의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질 때 산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기상이변 또는 온난화에 의한 강우 패턴의 변화가 산사태의 원인인 것이다. 산림청 보고에 따르면, 태풍 루사가 한반도에 상륙한 2002년 2705ha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정부가 산사태를 조사한 이후 최고치였다.

이후 2003년 1330ha, 2006년 1597ha 등 매년 1천ha 이상의 면적이 산사태 피해를 겪고 있다. 1980년대(230ha), 1990년대(350ha)의 연평균 산사태 발생 면적과 비교해 5~10배 높은 수준이다.

홍수 수준으로 대응 강화해야

2006년 설악산 일대 250곳 이상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이후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전체 국립공원의 산사태 실태 조사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제는 여름철 재난과 재해 대책에서 홍수 대비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산사태 대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산지나 비탈에 들어서는 각종 토목구조물 등의 설계 기준을 높이고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재해영향평가를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1km에 200억원 이상의 건설비를 투자하는 도로도 폭우나 강우에 대한 설계 기준 미비로 산사태에 쓸려나가고 있다. 집중호우에 뒤이은 산사태가 앞으로 어떤 재난을 불러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자연은 ‘사전경고’를 통해 인간에게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그것을 인간이 감지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름철 전후 한반도를 찾아오는 비의 강도가 엄청나게 강해졌다. 이것이 백두대간의 산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장마는 진행 중이고 태풍은 다가오고 있다.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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