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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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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으로 떠도는 검은 명단은 있다



1947년 미국의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를 연상시키는 출연금지 명단 논란…

‘텍스트’ 여부 떠나 제작진의 심리 옥죄는 ‘콘텍스트’로 분명히 존재해
등록 2010-07-23 21:47 수정 2020-05-03 04:26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

1947년 할리우드 영화산업계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들이 미 하원의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증언대에 소환됐다. 공산당 당원이거나, 혹은 그렇게 알려진 많은 극작가와 배우, 감독, 제작자들이었다. 이유는 공산주의자 또는 그 동조자들이 영화를 통해 공산주의 선전을 은밀히 유포시켰을지 모르니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소환된 예술인 중에는 실제 미국 공산당에 가입한 사람도 있었지만, 공산당과는 관계없는 조직에 가입한 사람이나 단지 연방정부 조사에 협조를 거부한 사람까지 포함됐다. 심지어 어떤 이는 행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이른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미국의 어두운 기억, 할리우드 빨갱이 색출

이같은 사상 검열과 감시는 1950년대 말까지 지속됐으며, 혐의에 대한 실증적 확인도 없이 예술가 수백 명이 직업을 잃고 다시는 복귀하지 못했다. 그중에도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 조항)를 근거로 끝까지 협조를 거부해 ‘할리우드 텐’이라 불린 10명의 극작가와 감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결국 의회모독죄로 기소됐으며, 영화제작자들이 이들을 해고한 뒤 고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업계에서 영원히 추방됐다. 오늘날 용공 조작을 일컫는 대명사인 ‘매카시즘’의 시발점이 된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1952년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이 있기 몇 년 전에 시작된 일이니, 매카시 광풍의 예고편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는 미국의 많은 문화예술 작품 속에서 꾸준히 증언되고 고발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국 현대 연극의 혁명적인 작품으로 일컫는 아서 밀러 원작의 이다. 17세기 말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일어난 마녀재판을 소재로 한 이 연극은 잘 알려진 바처럼 반미활동 조사를 앞세운 ‘빨갱이 색출’에 대한 알레고리다. 실제 아서 밀러 자신도 1956년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소환됐으나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된 바 있다. 195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 연극은 두 차례에 걸쳐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한국에는 대니얼 데이루이스와 위노나 라이더가 주연한 1996년 필름이 잘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소환됐던 영화감독 마틴 리트와 시나리오 작가 월터 번스타인이 함께 작업하고 우디 앨런이 주연한 영화 (1976), 미국의 많은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과 함께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를 풍유하고 비판한 작품으로 소개되는 영화 (1991) 등을 들 수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냉전체제가 형성되던 시기 미국 현대사의 우스꽝스러운 단면에 불과하지만, 그 사건이 필연적으로 몰고 왔을 예술창작의 자기 검열과 표현의 자유 위축은 당대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공포와 억압이었을 것이다.

개그우먼이자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김미화씨의 한국방송 ‘블랙리스트’ 발언과 유창선·진중권·문성근씨의 잇따른 증언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한국방송이 김미화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함으로써 블랙리스트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은 법정으로까지 번질 상황이다. 한국방송은 블랙리스트를 부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각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출연금지 명단’까지 공개하면서 방어를 넘어선 공세에 나서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여기저기 있(었)다

김미화씨의 발언이나 그 뒤로 이어진 증언들이 과연 한국방송이 정색하고 형사적 대응까지 할 문제인지, 한국방송이라는 법인이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자. 그보다 핵심적인 논점은 과연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가다. 정연주 전 사장 퇴출, 비판적인 프로그램의 잇따른 폐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방송인들의 연쇄적인 하차, 특보 출신 사장 임명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방송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 결과 한국방송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공영방송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할 만큼 크게 훼손됐다.

비단 한국방송만이 아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라는 최시중씨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극, 미디어법 강행, 또 다른 특보 출신이 사장으로 자리한 문화방송의 현실까지 더하면 공영방송 전반이 시련과 수난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 사안은 문건으로 유형화된 블랙리스트, 즉 ‘텍스트’의 문제가 아닌 한국방송을 지배하는 분위기, 유·무언의 지침 그리고 심리로 유형화된 블랙리스트, 즉 ‘콘텍스트’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방송 스스로도 고백한 바 있듯, 김미화씨의 내레이션이 부정확하다는 사장의 말 한마디가 제작진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겠는가. 잇따른 증언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우기는 짓은 이제 그만하라.

한국방송 난맥상 배후에 또 다른 영포회?

더 크게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 블랙리스트는 한국방송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008년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가한 1800여 단체를 이 정부는 ‘폭력시위단체’로 규정해 명시적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정부 각급 기관에 민간단체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가 그 일로 ‘각서’까지 쓰는 곤욕을 치렀던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정부 정책이나 국정 운영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 개인이든 단체든 곧 반정부 활동이며, 심지어 ‘매국노’ ‘좌빨’로 몰리기까지 한다. 군사독재 시절을 연상시킬 만큼 엽기적인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은 오늘 대한민국에서 블랙리스트가 어떻게 생성되고 작동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명박 정권은 민중이 권력을 견제하는 법치주의 본래의 철학적 의미를 오염시키면서 입만 열면 국민에게 법치주의를 설교했다. 그러나 정작 그 가면 뒤에는 ‘영포회’나 ‘선진국민연대’와 같은 사조직의 음험한 국정 농단과 권력 전횡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한국방송으로 표출된 블랙리스트를 규정지우는 상위의 콘텍스트가 그런 반민주적·반법치적 권력 운영에 있다면, 또 오늘날 한국방송 난맥상의 배후에는 또 다른 영포회와 선진국민연대가 작동하는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인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스펙터클하고 다이내믹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미디어의 수난을 지켜보며 반세기 전의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를 기억에서 불러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영화 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하워드가 내뱉은 대사로 마무리해야겠다. “다들 미쳤구나? 엿이나 먹어라!”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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