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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D, 대안학교 내신등급?



2009년부터 ‘공교육 복귀율’ 기준으로 대안학교 줄 세워 지원하는 교육부…
대안교육을 ‘공교육 보조재’로 전락시키나
등록 2010-07-23 17:31 수정 2020-05-03 04:26
지난 7월13일 일제고사를 거부한 초등학생들이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에서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지난 7월13일 일제고사를 거부한 초등학생들이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에서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이명박 정부가 대안교육을 흔들고 있다. 대안교육 운동이 1995년 7월 처음 제창된 지 15년 만의 일이다. 이전 정부가 시작한 대안학교 지원사업을 변질시킨 게 발단이다.

 

대안교육 희망자는 지원할 가치가 없다?

정부는 2006년부터 ‘미인가 대안교육시설’에 재정지원을 해왔다. 전체 지원 규모는 13억원 정도(올해 계획안)다. 2008년 68개, 2009년 93개 시설을 지원했다. 학교별로 배정되는 액수는 크지 않지만, 대안교육을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정부 지원의 의미가 적지 않았다.

2009년부터 이 사업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겼다. 대안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방향이 ‘급선회’한 것이다. 지원학교를 선정할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등급별로 차등 지원해왔는데, 지난해부터 등급 간 지원 규모가 크게 벌어졌다. A등급과 F등급 간 지원액이 최대 2천만원까지 벌어졌다. 과거에는 100만~500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심사를 맡았던 이들은 “지원사업의 시급성을 구분하려고 등급 평가를 했을 뿐, (학교마다) ‘성적’을 매겨 차별하려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여러 대안학교를 골고루 지원하려는 정책이 이명박 정부 들어 ‘선택과 집중’의 방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소수 학교에 더 많은 돈을 지원하는 방식의 이면에는 평가 잣대의 변화가 있다. 이 입수한 교육과학기술부의 ‘2010년 학업중단학생 교육지원사업 추진계획’(2010년 5월)을 보면 “‘중도탈락 학생 비율’ 항목에 대한 평가 배점을 확대”하되, “대안교육 희망(자) 등 개인 선택에 의한 중도탈락은 (중도탈락 학생 비율에서) 제외”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대안학교 학생 가운데 ‘공교육에 복귀한 현황’도 기입하도록 했다.

‘중도탈락 학생’이란 정규학교를 그만둔 경우를 말한다. ‘공교육 복귀’란 이들 가운데 다시 정규학교로 돌아간 경우다. ‘개인 선택에 의한 중도탈락’이란 스스로 공교육을 거부한 이른바 ‘탈학교 청소년’들을 지칭한다. 결국 교과부는 정규학교에서 쫓겨난 학생들을 다시 정규학교에 돌려보내는 일이 많을수록 더 많은 지원을 해주겠지만, 공교육에 복귀할 뜻이 전혀 없는 ‘탈학교 청소년’은 지원의 우선순위에서 배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같은 기준에 의거해 교과부는 올 하반기에 2010년도 지원 대상 학교를 선정할 예정이다.

조짐은 이미 지난해부터 있었다. 2009년 지원학교 심사위원회에 참여했던 고병헌 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는 “지난해 심사위원회의 첫 회의에 갔더니 제도 학교로의 복귀 가능성을 가장 높이 쳤다며, 심사위원들이 보기도 전에 이미 교과부에서 (학교별) 등급을 매겨놓은 상황이었다”고 증언한다. 이에 반발한 고 교수는 결국 첫 심사회의 뒤 자진 사퇴했다.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대안학교 정부 지원이 처음 시작된 2006년 계획안을 보면, 사업 추진 원칙으로 △대안교육의 자율성과 공교육의 보편성의 조화(종교 등으로부터의 분리, 건전한 시민 양성이란 공교육의 기본 이념 틀 속에서 대안교육의 자율성과 실험성 존중) △미인가 대안교육 지원 기능 강화(기존의 방임적 자세에서 적극적 지원 형태로 전환) 등을 담고 있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공교육에서 탈락한 학생들을 다시 공교육으로 돌려보내는 ‘공교육 보조재’로 대안학교를 인식하고 있는 형국이다. 획일화한 공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자율적 프로그램을 개발해 능력·경쟁주의를 지양하려는 대안학교의 토대를 사실상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안학교 학생 가운데 ‘대안교육을 희망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정규학교를 그만둔 이들’이 63%를 넘는다.

형평성 논란도 뒤따른다. ‘2009년 대안교육시설 지원사업 시설별 지원금액’을 보면, 기독교계 대안교육시설 지원이 눈에 띄게 확대됐다. 2009년 지원 대상 가운데 7곳의 기독교계 학교가 처음 선정됐다. 이전까진 종교 색채가 강하다는 이유 등으로 지원에서 제외되거나 처음부터 신청하지 않았던 학교들이다. A·B등급이 4곳이다.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가

피해는 학생들 몫이다. 지리산 자락의 실상사 작은학교. 2001년 개교한 중학교 과정의 대안학교다. 대안학교의 대명사격이다. ‘자발적 대안교육을 희망’하는 41명의 소년·소녀(12~14살)가 모여 농사 수업을 받고, 전통문화도 배운다. 주요 교과목을 제 관심, 수준에 따라 선택해 학습한다.

정부는 2006년부터 이 학교를 지원했다. 최상위 등급과 함께 2007년 1800만원, 2008년 2700만원을 교부했다. 지난해 처지가 바뀌었다. 그해 10월 통보받은 ‘성적’은 ‘D 등급’. 지원금은 800만원이었다. 이 학교의 장일안 교사는 “아이들이 실내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며 “2층에 빈 공간이 하나 있어 휴게 공간으로 개조하려는 계획 등을 포함해 2300만원 규모로 사업지원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결국 800만원의 지원금으로 중고 피아노와 책·DVD만 겨우 샀다. 휴게실은 여전히 없다.

학교 쪽은 전북교육청에 공문을 보냈다. 이경재 교사는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했으나, 공문 내용은 절박한 읍소에 가깝다. “올해 교부금이 다른 대안교육기관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어 당혹스럽고 지금까지 알려진 심사 기준을 살펴보아도 납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구체적인 평가 내용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성찰의 계기로 삼기 위함입니다.” 전북교육청 실무자가 답변을 보냈다. “지난 3년과 달리, 이번 지원 대상 선정을 위한 교과부 지침이 달랐던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전북 지역의 경우, 지난해 모두 4개 시설이 지원 대상으로 꼽혔다. 그 가운데 두 곳은 지원사업이 시작된 이래 처음 선정됐다. 기독교계인 ‘○○○ 사랑학교’는 종교적 색채와 활동이 강하다는 이유로 과거엔 탈락했다가 이번에 B 등급을 받았다. 지원대상인 또 다른 시설은 지역아동센터인데, 최상위 등급을 받았다. 대안교육의 범주와는 다른, 말 그대로 공교육 보완 시설이다.

대안학교 쪽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대안학교 ‘공간 민들레’(서울 마포)의 김경옥 대표는 “돈을 얼마나 지원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2006~2008년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처음 대안학교 쪽에서 정부 지원을 받을지 말아야 할지 내부 논의가 많았다. 하지만 정부가 대안교육의 의미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지원 사업에 신청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2010년 학업중단학생 교육지원사업 추진계획’의 세부 내용. 교육 당국은 “해당 계획안을 모르고, 2010년 계획은 현재 성안 중”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2010년 학업중단학생 교육지원사업 추진계획’의 세부 내용. 교육 당국은 “해당 계획안을 모르고, 2010년 계획은 현재 성안 중”이라고 말했다.

그들을 ‘교육 귀족’으로 몰지 말라

대안교육 지원은 헌법상 기본권 보장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대안학교의 공익성은, 공교육을 견제·발전시켜온 데서도 구해진다. 그간 대안학교에서 시도된 명상, 생태교육 등은 여러 제도권 학교로 흡수되며 교육 내용을 풍요롭게 했다. 몬테소리, 슈타이너 교육 같은 대안교육은 전 세계 주류 교육로 자리매김 중이다. 고병헌 교수는 “대안교육은 결코 공교육을 AS(애프터서비스)해주는 곳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대안교육 정체성의 핵심인 다양성을 침해할 수 있으니 등급 판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까닭이다.

교과부 실무자는 올해 대안교육 지원 방침을 묻는 질문에 “2010년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고 성안 중이어서 답해줄 게 없고, 국회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며 “자발적으로 귀족학교 등을 선택한 학생들 대신, 부득이하게 학교를 떠난 학생들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며 공교육을 보완한다는 방침은 일관됐다”고 말했다.

김경옥 대표는 되물었다. “대안학교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야말로 우리들의 가장 강렬한 요구예요. 그래서 지원이 필요하고, 그래야 학생·학부모들의 선택권이 커지니까요. 공공적 영역을 인정해야지요. 제 발로 걸어나갔는데 국가가 왜 돕냐고요? 아이들이 현 교육 시스템을 잠시 탈피한 거지, 국가를 벗어났나요?”

지난 7월16일 국회에서 ‘미인가 대안교육시설 재정지원사업 평가토론회’가 열렸다. 정부를 대표해 나온 교과부 전우홍 교육복지정책과장은 “대안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사업이 아니라 교육소외 학업중단학생에 대한 지원사업”이라며 “지원교육 시설 수를 늘이기보다, 시설당 지원액을 증액해 프로그램을 내실화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예산이 늘지 않는 한, 차등 지원의 경향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고병헌 교수는 “대부분의 대안교육시설은 재정환경이 열악해, 정부의 재정지원 기준이 시설의 교육 방향과 내용 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의 정책 방향 변경이 자칫 대안교육의 자율성·독립성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는 뜻이다.

교과부는 최근 대안교육정책자문위도 만들었다. 대안교육의 위치 등을 재정립한다는 계획이다. 한번 튼 방향이 어떻게 조정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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