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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조전혁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산업논총>과 <바둑학 연구>에 실은 논문 ‘자기표절’ 의혹…
핵심 내용은 물론 잘못된 띄어쓰기·비문까지 일치
등록 2010-06-04 17:23 수정 2020-05-03 04:26

‘전교조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대학 논문집에 발표한 논문을 일부만 수정한 뒤 다른 학술지에 다시 게재한 사실이 드러났다. 두 논문은 조 의원의 취미인 바둑을 ‘한계효용 체감 법칙’이라는 경제학적 원리로 해석하는 아이디어나 연구 대상·방법 등이 비슷한 것은 물론, 몇몇 부분은 앞서 발표한 논문을 그대로 베껴쓰기까지 해 ‘자기표절’과 다름없었다.

앞 논문 참조했다는 언급 없어

논문 자기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 한겨레 박종식 기자

논문 자기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이 확인한 결과, 조 의원이 2003년 8월 자신이 교수로 있는 인천대 산업연구소 논문집 에 발표한 ‘경제원리와 바둑의 착수 메커니즘: 불계대국 추정집수 차의 쌍봉형 분포’와 이듬해 7월 한국바둑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에 정수현 명지대 교수(바둑학)와 공동으로 발표한 ‘경제원리와 바둑의 착수 메커니즘’은 사실상 같은 논문이었다. 2004년 논문은 조 의원이 제1저자인데, 자신의 이전 논문을 참조했다는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03년 논문은 ‘1장 서론, 2장 자료, 3장 이론적 검토, 4장 실증분석, 5장 결론 및 제언’으로 구성돼 있고, 2004년 논문은 ‘1장 서론, 2장 바둑의 착점에 대한 경제이론적 추론, 3장 자료에 대한 기술, 4장 실증분석, 5장 결론 및 토의사항’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2003년 논문의 ‘2장 자료’ 부분(253~257쪽)과 2004년 논문의 ‘3장 자료에 대한 기술’(89~93쪽)은 내용이 똑같다. “프로스포츠선수” “순수외국기사” “순수한국기사간의” 같은 띄어쓰기 오류는 물론 “국내 기전의 모두 포함한 우승상금의 평균은~” “계가로 대국이 종료한 471개 대국의 평균우승상금은 8570만원으로 불계로 대국이 종료한 707개 대국의 평균우승상금은 7945만원에 비하여 약 625만원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잘못된 문장도 그대로다. 앞 논문을 그대로 복사해 뒤 논문에 갖다붙이는 ‘카피 앤드 페이스트’(Copy & Paste)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앞 논문의 ‘3장 이론적 검토’(258~261쪽)는 뒤 논문의 ‘2장 바둑의 착점에 대한 경제이론적 추론’(87~89쪽)으로 바뀌었는데, 이 역시 본문은 물론 각주까지 대부분 일치한다. 다만 “평가함수의 성질”이라는 수식 3개가 다르게 표현돼 있고, 2003년 논문의 ‘2절 계가와 불계의 선택’(260쪽)이 2004년 논문에선 ‘2절 추정평가함수와 착수’, ‘3절 총착수와 집수차식’으로 좀더 상세히 설명돼 있다. 하지만 “대국의 총수순과 집수 차이 간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핵심 내용과 이를 설명하는 네 문장은 정확히 똑같다.

두 논문의 ‘4장 실증분석’(2003년 논문 261~265쪽, 2004년 논문 93~96쪽)도 2004년 논문이 ‘회귀 모형’(여러 개의 독립변수가 종속변수와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를 식으로 나타낸 것)을 한 번 더 추정해낸다는 것 말고는 자료 분석 방법, 분석 결과, 핵심 내용이 거의 같다. 표현만 달라졌을 뿐이다.

2003년엔 네 종류인 참고문헌이 2004년엔 다섯 종류로 늘었지만, 앞선 자신의 논문을 참고했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한 경제학 교수는 “회귀분석을 한 번 더 하긴 했지만, 두 논문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교내 학술지 논문을 그대로 가져다 일반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이례적인데, 어쨌든 새로운 연구 내용이 추가되지도 않았고 출처도 밝히지 않은 심각한 수준의 자기표절”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내용은 유사하지만 같은 문장을 쓰지는 않은 서론·결론 부분을 놓고선 “나중에 표절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걸 미리 인식하고 그 부분만 다시 쓴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2003년 인천대 〈산업논총〉에 발표한 ‘경제원리와 바둑의 착수 메커니즘: 불계대국 추정집수 차의 쌍봉형 분포’(왼쪽)와 2004년 〈바둑학 연구〉에 실은 ‘경제원리와 바둑의 착수 메커니즘’(오른쪽)의 적지 않은 부분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2003년 인천대 〈산업논총〉에 발표한 ‘경제원리와 바둑의 착수 메커니즘: 불계대국 추정집수 차의 쌍봉형 분포’(왼쪽)와 2004년 〈바둑학 연구〉에 실은 ‘경제원리와 바둑의 착수 메커니즘’(오른쪽)의 적지 않은 부분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학계 관행 따라 했다?

이와 관련해 조 의원은 과 한 통화에서 “는 학술지지만, 은 인천대 내부의 ‘워킹페이퍼’(공식 논문이나 자료를 쓰기 전에 동료 연구자의 의견을 구하려고 쓰는 아이디어 보고서나 작업 보고서)라 그렇다. 워킹페이퍼는 전국의 대학교수가 다 그렇게 한다”고 해명했다. 이 워킹페이퍼이기 때문에 에 실은 2004년 논문에서 출처 없이 참조하거나 같은 내용을 옮겨쓰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천대의 다른 교수들은 “ 같은 교내 논문집을 워킹페이퍼라고 하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실을 글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논문집 발행 책임자의 부탁을 받고 ‘되는 대로’ 논문을 내거나, 한국연구재단(옛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등재된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보다 질이 낮을 수는 있지만, 그 자체를 논문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조 의원은 에 논문을 실을 당시 이 학술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기에 심사위원 12명이 세 차례에 걸쳐 게재 여부를 심사하는 과정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물론 자기표절과 관련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2006년 8월 김병준 당시 교육부총리는 자기표절 등의 의혹을 받고 취임 13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진곤 전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정운찬 총리 등 고위 공직자 인사 때 자기표절이 논란이 됐다. 자기표절 기준을 세우고, 이를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때마다 쏟아졌다. 하지만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각각 2007년 2월과 2009년 9월이 돼서야 내놓은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엔 자기표절과 관련한 규정이 없다.

그래도 학자로서 자기표절에 대한 윤리적 책임까지 피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자기 논문을 스스로 베끼는 자기표절, 중복 게재 등이 관행으로 여겨진 점을 고려하더라도, 아무런 인용 없이 마치 기존 논문을 새 논문인 것처럼 발표하는 것이 문제라는 점은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조돈문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도 “학술논문끼리 같은 내용을 쓰는 건 엄격히 금기시되는 사항”이라며 “교내 논문집에 실은 논문이라 하더라도 비슷한 논문을 다른 학술지에 싣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이다. 전에 한 얘기를 그대로 새 논문에 싣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건 규정이 없더라도 학계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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