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쌍용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지난 5월17일 서울 구로동 쌍용차 서울정비사업소 앞에서 해고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해고는 살인이다.”
지난해 5월22일 쌍용자동차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들고 나온 구호다. 노조는 ‘살인’을 막으려고 경기 평택의 쌍용차 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저항했다. 하지만 패배했다. 노조는 지난해 8월6일 파업을 끝내면서 “사람을 자르는 정리해고, ‘죽음의 행렬’을 끝내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 점 전국의 동지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노조 누리집에 밝혔다. 다시 돌아온 5월, 당시 노조가 예상한 ‘죽음의 행렬’이 현실이 되고 있다.
김기철(42·가명)씨는 집을 벗어나지 않는다. 24평(79.3㎡) 아파트에만 머물러 있다. 현관문이 열리는 것은 고2, 중1 자녀가 등·하교할 때, 그리고 그를 걱정해 매일 방문하는 동료들이 오갈 때뿐이다. 바깥 나들이를 끊은 게 거의 한 달이 돼간다. 4월 말께 아내가 세상을 등진 이후부터다.
그날 김씨는 충남의 고향집에 부모 농사일을 거들러 갔다. 아내는 그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김씨도 서둘러 돌아왔다. 아내는 저녁에 귀가한 남편과 잠시 얘기를 나눈 뒤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11층에서 몸을 던졌다. 아내는 이날 우울증 치료제를 먹지 않았다. 지난해 남편이 쌍용차 파업에 뛰어들면서 아내는 술을 마셨다. 파업이 끝나 남편이 돌아왔지만 아내는 병원에 가서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김씨 아내의 자살은 쌍용차 파업 사태 이후 여섯 번째 죽음이다. 지난해 5월27일 엄인섭씨가 신경성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6월11일에는 김영훈씨가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7월2일 김고원씨가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이어 7월20일에는 당시 노조 정책부장인 이아무개씨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기에 한 조합원의 아내는 파업 스트레스로 아기가 유산됐다.
이같은 죽음이 앞으로도 발생할 가능성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쌍용차 공장과 500m 떨어진 평택시 칠원동 동광아파트에 사는 해고자 신아무개(33)씨는 “쌍용차 직원이 많은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아내가 이른바 ‘산 자’(비해고자)의 아내들과 가끔 부딪힌다”며 “이웃에게 ‘당신 신랑 때문에 우리 신랑이 잘리면 어떡하냐’ ‘신랑 뭐하고 지내냐’ 등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또 “아내가 우울증 증세가 있어 가급적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일주일치 쇼핑을 한 뒤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노동건강연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이 쌍용차 파업에 참여한 25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2.8%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고, 당장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고도 우울증’ 환자가 41%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대부분 노동자는 이후 제대로 된 심리치료를 받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정부는 평택시를 ‘고용촉진개발지역’(고용특구)으로 지정해 각종 고용지원책을 내놓으면서 쌍용차 및 협력업체 임직원·가족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심리치료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심리치료를 받은 이는 해고자와 비해고자, 그 가족을 합쳐 450명에 불과하다. 평택고용지원센터는 지난해 쌍용차에서 희망퇴직자 1671명, 정리해고자 981명 등 2652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밝혔다. 그 가족까지 감안하면 심리치료를 받은 이는 전체의 10%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은 “당시 쌍용차 파업은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해 노동자와 그 가족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이 심각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오랜 시간 지속될 가능성이 많다”며 “외국에서처럼 경기도나 평택시 등 지자체가 이들에 대한 심리치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는 지난해 5월22일부터 77일간 파업 투쟁을 벌였지만 경찰의 진압으로 끝이 났다. 전쟁 같은 파업으로 아직도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과 세계
이빈수(38·가명)씨는 5월11일 우리은행 평택지점을 찾았다. 4천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이 오는 6월4일로 만기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실직 상태라 전부 연장할 수는 없지만, 1천만원 정도는 연장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한 푼도 연장할 수 없었다. 그는 “창구 직원이 ‘최근 수입이 하나도 없네요’ 하더니 연장이 어렵다고 했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가한 이씨는 해고되지는 않았지만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징계심사가 이뤄질 때까지 직장에 나갈 수 없다. 월급은 나오지 않지만, 직장에 소속돼 있어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4살·6살·8살 딸 셋을 키우는 그는 생활하려면 매달 200만원이 필요하다. 아이 영어 학원과 피아노 학원 등을 끊었는데도 그만큼 필요하다. 아내는 파업 이후 식당에서 일하며 120만원을 받는다. 임씨도 일용직에 나서지만 매일 일할 수는 없다. 5월18일에는 경기 안성의 바비큐 식당 앞에 쌓인 참나무를 옮기는 하루 8만원짜리 일감을 얻었지만 비가 와서 공쳤다.
매달 통장은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모자란 것은 보험을 깨 충당했다. 연금저축·종신보험 등 9개 보험 가운데 4개를 해지했다. 10년 이상 1천만원 넘게 부은 연금저축을 깨 800만원가량을, 종신보험을 깨 원금의 3분의 1인 50여만원을 받았다. 이마저도 잔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지난 어버이날 이웃에 사는 어머니가 몰래 3만원을 찔러줬다”며 “예전에는 내가 용돈을 드렸는데 오히려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해고자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이와 비슷하다. 쌍용자동차정리해고특별위원회가 최근 해고자 1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0.2%가 35살 이상이고, 61%가 4명 이상 가족이었다.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이자, 부양 가족이 3명 이상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짊어진 빚은 평균 6047만원으로, 파업 이전의 5500만원에서 평균 500만원이 늘었다. 그런데도 64.2%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놀고 있다.
그나마 실업급여가 작은 도움이 됐지만 이제 거의 끊긴 상태다. 평택고용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지난 3월까지 약 2297명의 쌍용차 근로자가 총 152억9400만원의 실업급여를 받았다. 1인당 평균 660만원 꼴이다. 하지만 센터 관계자는 “실업급여는 최장 8개월까지만 지급되기 때문에 4월 이후 실업급여를 받는 쌍용자동차 출신 실업자는 40여 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회사와 경찰의 가압류·손해배상 소송은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킨다. 회사 쪽은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 등 76명에게 5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55명에게는 퇴직금의 50%인 20억원을 가압류한 상태다. 경찰 역시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을 상대로 23억여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김아무개씨는 “회사가 퇴직금 2천만원 가운데 1천만원을 가압류하고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하는 바람에 벌금 200만원까지 받아 경제적 어려움이 더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은 더 어렵다. 일자리는 먼저 잃고 고통은 더 깊다. 2006년 쌍용자동차는 생산이 줄어들자 정규직 420명을 자동차 생산라인별로 재배치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 자리를 차지하면서 비정규직 500여 명이 희망퇴직과 휴직으로 구조조정됐다. 2005년 1700여 명에 육박한 비정규직은 이런 식으로 2008년 640여 명, 2009년 300여 명으로 줄었다. 해고당한 이후에도 차별을 받았다. 한달 110만원가량의 실업급여를 받는 정규직에 비해 이들이 받은 금액은 85만원뿐이었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이고, 먹고살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김순희(55·여·가명)씨는 쌍용차에 다니다 쫓겨났다. 딸 둘이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1995년 쌍용차 하청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를 맞아 1997년 해고됐고, 1998년 다시 하청업체에 입사했다가 2008년 11월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 사이 남편마저 고령을 이유로 청소용역업체에서 퇴직해 김씨 가정에 돈을 버는 이는 아무도 없게 됐다. 지난해 12월까지 실업급여 85만여원으로 버텼다. 그동안 생활정보지와 지인 등을 통해 백방으로 일자리를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다. 현재 아파트를 팔 것인지 고민한다. 김씨와 남편이 수십 년을 일해 마련한 아파트다. 그는 “대출 8천만원을 받아 1억원짜리 아파트를 사 현재 빚이 6천만원”이라며 “매달 70만원가량을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데 써야 하는데 돈 나올 구멍이 없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발가락까지 부러져 움직일 수 없어 일자리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앞으로 먹고살 것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덧붙였다.
쌍용차 직영 정비사업소에 일하던 해고자들은 최근 서울 구로동에 한성카센터를 열었다. 복직투쟁을 벌이는 동시에 생계를 위한 사업을 한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쌍용차 직영인 서울 구로동 서울정비사업소에서 일한 원아무개(38)씨는 지난해 쌍용차 파업에 참여했다. 77일간의 파업이 끝난 뒤 해고된 그는 집에 가지 않았다. 서울 신정동 원룸에서 혼자 산 지 9개월째다. 아내와 딸(6)·아들(4)은 경기 안산에서 지낸다. 자녀들은 주말에만 가끔 만난다. 원씨는 “파업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안 좋던 부부관계가 더 악화됐다”며 “아내가 헤어지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관계자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아내와 헤어지거나 위기에 처한 가정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원씨와 같이 정비사업소에서 일하다 해고된 김아무개(53)씨는 더 이상 봉양하는 부모가 없다. 80대 노모는 경기 파주시 문산에서 아버지와 함께 산다. 무릎이 안 좋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직장을 다닐 때 김씨는 매달 의료보험비와 함께 3만원가량의 요양급여를 납부했다. 그 덕에 어머니는 일주일에 4번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해고 이후 의료보험비는 물론 요양급여도 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부모의 부양자 지위를 여동생에게 넘겼다. 그는 “장남으로서 부모를 모셔야 하는데 요양급여 등이 걱정돼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자녀 2명을 둔 김씨는 대학에 갓 입학한 아들의 군 입대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도 많다. 이기철(37·가명)씨는 해고 뒤 20차례 넘게 이력서를 냈는데도 끝내 직장을 구할 수 없어 평택을 떠났다. 2001년 입사해 9년가량 생활하던 곳이다. 그는 “그동안 월 110만원의 실업급여와 보험을 깬 돈으로 생활했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해 더이상 생활할 수가 없었다”며 “9년가량 살면서 이웃과도 사귀었지만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5천만원을 대출받아 산 아파트를 전세 주고 아내와 2살 아이를 데리고 고향인 대전에 간 그는 중고차 할부판매 일을 하고 있다.
쌍용차 공장과 가까운 평택시 칠원동의 동광아파트에서는 거의 매일 이사가는 집이 있다. 이곳에 사는 해고자 신씨는 “770세대 가운데 30%가량이 쌍용차 직원으로 다들 비슷한 처지여서 부녀회 등도 많이 활성화된 아파트였는데, 파업 이후 직장을 잃은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최성국(39)씨는 2007년 연봉이 5천만원이 넘었다. 그는 일주일에 60시간 가까이 일했다. 그래야 기본급 137만원에 잔업수당, 야근수당, 철야수당, 특근수당 등을 더해 가족과 외식도 하고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노조에 큰 관심이 없었다”면서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 가정을 지키려면 일자리를 지켜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파업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파업이 끝난 뒤 한동안 휠체어와 목발에 기대 지냈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으며 갑자기 기절한 이후 하반신을 쓸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4일 병보석으로 나온 뒤 서울 녹색병원, 경기 안성의료원 등을 전전했다. 병원은 충격이 하체에 전달된 것이라며 ‘공황증’이라고 판정했다.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잠을 잘 수 없었다. 수면제를 먹어도 고통이 커 잠이 오지 않았다. 비가 오기 전날이면 팔·허리 등이 바늘로 찌르듯 아팠다. 잠을 길게 자봐야 2시간이었다. 그나마 최근 들어 목발 없이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됐다.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4800만원짜리 16평(52.9㎡) 아파트를 팔아 전세금 2천만원을 떼준 뒤 남은 돈으로 생활했다. 종신보험과 어린이보험 등 보험 3개는 이미 깨고 남은 게 없다. 아내가 일을 해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벌지만 아들(7)·딸(4)을 키우려면 자신이 일을 해야 한다. 그는 “우리 가정이 과거 리듬을 되찾으려면 내가 빨리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맘이 급해 어떤 일이든 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400~500m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그가 몸을 회복해 다시 일을 한다고 해도, 쌍용차에 1995년 입사해 익힌 자동차 조립 기술은 다시 발휘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김중기(37·가명)씨는 쌍용차에서 고급 승용차인 체어맨의 엔진을 장착하는 일을 했다. 4명이 1조를 이뤄 엔진을 들어올려 차체에 조립했다. 하지만 해고 뒤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월 110만원가량의 실업급여도 지난 3월이 마지막이었다. 결국 택한 것은 대리운전이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일해 한달 90여 만원을 번다. 그는 “아내는 파업 때 가족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다가 경찰의 방패에 맞아 깁스를 한 상태인데다 초등학교 3학년·6학년 아이를 키우려면 뭐라도 일을 해야 했다”며 “쌍용차에서 익힌 기술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지만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고 말했다.
쌍용차가 2009년 금융감독원에 신고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2008년 기준으로 7154명이 일하고 이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3.21년에 달했다. 평택고용지원센터의 자료를 보면, 쌍용차 희망퇴직·해고자 2652명 가운데 4월 현재 일하는 사람은 재취업자 749명(28.2%)과 자영업자 188명(7.0%)이다. 나머지 1600여 명이 10년 넘게 익힌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놀고 있는 상태다. 일하고 있는 해고자 상당수도 과거 경험을 살리지 못한다.
쌍용차에서 내몰린 노동자들은 여전히 옛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당장 생계가 급해 대리운전을 하거나 아내가 취업에 나서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5. 사라진 미래
쌍용차 실직자들에게서 알 수 있듯 해고는 사람을 죽이고 관계를 끊는다. 기댈 수 있는 사회안전망은 헐겁다. 실업급여가 끊긴 실직자들은 여전히 실직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홀로 가난을 짊어지거나 주위 가족에게 도움을 부탁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실직자 주변도 가난해진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금재호 선임연구위원은 “선진국은 실직자가 취직할 때까지 생계비를 지원하는 실업부조를 운용한다”며 “빈곤층을 돕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확대해 실직자가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택의 쌍용차 공장에는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믿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하지만 지난해 77일간의 파업 이후 공장에서 내몰린 이들은 미래를 믿기 힘들다. 쌍용차를 인수해 신차 기술을 빼돌리고 손을 빼버린 상하이차는 중국 최고의 기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쌍용차는 해고된 노동자의 희생 속에 겨우 회생을 모색하고 있는 처지다. 새로운 인수자로 인도의 스포츠실용차(SUV) 생산업체인 마힌드라그룹과 대우버스의 대주주인 영안모자, 남선알미늄을 자회사로 둔 SM그룹, 사모펀드인 서울인베스트먼트 등이 거론된다. 어떤 기업이 인수하는지에 쌍용차의 미래가 달려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쌍용차에서 내쫓긴 노동자들의 미래는 담겨 있지 않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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