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28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상하이자동차-쌍용자동차 채권금융기관협의회 본계약 체결식에서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 최동수 행장(오른쪽)과 상하이자동차 천샹린 사장이 계약서에 서명한 뒤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김종수 기자
약탈적인 외국 자본, 직무를 유기한 정부, 무책임한 국내 은행.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먹튀’ 논란 이면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기술 유출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차를 인수한 뒤 핵심 기술을 빼내고 6년 만에 국내에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하기 위한 ‘실탄’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대줬다. 외국 자본의 투자에 목말랐던 정부는 이를 최소한 방관하거나 묵인했다. 최대주주인 상하이차가 떠난 지금 쌍용차는 해고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먹고도 아직까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법정관리를 받고 있으며, 시장에 매물로 나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은 “상하이차가 쌍용차 사태의 주연이라면 정부 관료, 은행, 언론, 대규모 로펌 등이 조연들”이라며 “그러나 아직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사과하는 사람도 한 명 없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상하이자동차가 ‘선한 외국 자본’으로 이 땅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라진 지난 6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봤다.
2010년 5월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상하이차는 지난 4월26일부터 5월12일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쌍용차의 주식 53만9665주를 팔았다. 11.44%에 달했던 상하이차의 지분율은 9.95%까지 떨어졌다. 상하이차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율촌의 한 변호사는 “상하이차가 이메일을 통해 주식을 팔아달라는 의사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4월2일 인터넷판
상하이자동차는 2009년 9억6700만달러의 순익을 거뒀다. 2008년보다 무려 10배가 늘어난 수치였다. 매출도 32%가 늘어난 204억5천만달러였다. 중국의 월간지 는 를 인용해 “정부가 소비세를 인하하면서 중국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1월 중국 는 상하이차가 지난해 272만 대를 팔아 피아트와 스즈키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 판매 9위에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2010년 2월22일 쌍용차 노조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김규한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회사 생존의 필수요소인 신차 개발 자금 지원이 차일피일 미뤄진다”며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청와대로부터 답은 없었다. 운영자금이 바닥난 쌍용차는 이틀 뒤인 2월24일 관리직원에게는 기본 급여의 50%를, 생산직원에게는 기본급만 줬다.
2009년 11월30일 수원지법 평택지원 23호 법정
평택공장을 점거해 폭력시위를 벌인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으로 구속 기소된 쌍용자동차 노조 간부 22명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상균 노조지부장 등은 “현행법에 저촉되는 부분에 대해 죄를 달게 받겠다”며 “하지만 쌍용차 헐값 매각과 경영진의 단체협약 일방 파기 등 사건 실체를 (재판부가) 봤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2009년 11월11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
쌍용차의 디젤 하이브리드 자동차 기술을 상하이자동차에 넘긴 혐의로 쌍용자동차 종합기술연구소장 이아무개씨 등 연구원 7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또 상하이차에서 연구소 부소장으로 파견돼 연구원들에게 기술 유출을 지시한 중국인 장아무개는 같은 혐의로 기소 중지됐다. 중국에 유출된 기술은 국가 하이브리드 신동력 개발 사업의 하나로, 우리나라 정부에서 연구·개발비의 절반인 56억원을 지원받아 개발된 것이다.
2009년 8월3일 경기도청 월례회의
김문수 도지사는 “짐을 덜어내야 배가 가라앉지 않는데 (노조 쪽에서) 다 죽든 살든 둘 중에 하나라는 극단적 흑백 논리를 내세운다”고 노조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에 앞서 쌍용차가족대책위원들은 6월22일 경기도청을 찾아 “(쌍용차 노조의 공장 점거 상황을) 김문수 도지사가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요지의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2009년 5월21일 쌍용차 평택공장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이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갔다. 노조는 평택공장에서 긴급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고 총파업을 결정했다. 2640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강행하려는 회사의 결정이 화근이었다. 이 파업은 경찰이 진압에 들어가기까지 77일 동안 이어졌다.
2009년 1월9일 서울지법
상하이차가 쌍용자동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사실상 쌍용차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것이다. 쌍용차는 서울지법에 회생절차 개시신청, 재산보전 처분신청 등을 냈다. 이에 따라 중국 상하이차는 경영권 행사가 중지된다. 쌍용차 노조는 “상하이차와 사 측은 노조와 협의 없이 (법정관리를) 결정했다”며 “대주주로서의 책임을 저버린 것”이라고 비난했다.
2008년 12월27일 경기 과천정부청사 지식경제부 차관실
중국 상하이차 장쯔웨이 부회장은 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을 만나 쌍용차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금융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장 부회장은 쌍용차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경영을 지속하겠다며 정부와 은행권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틀 뒤인 12월29일 일간지 등 중국 언론은 상하이차가 쌍용차로부터 자본을 철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쌍용차 노조는 다음날인 30일 평택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하이차는 지난 4년간 단 한 푼도 국내에 투자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노조에 정리해고를 통보하고 ‘카이런’의 설계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는 등 경영 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2005년 1월24일 서울 시내의 한 은행
산업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은 상하이자동차에 4200억원을 금융지원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하기 위해 들인 5900억원의 70%를 넘는 액수였다. 채권단의 동의 없이 상하이차가 자산을 이전하거나 매각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달았다. 상하이차의 인수 대금을 우리나라 은행이 댄 셈이었다. 그래도 채권단이 붙인 조건은 ‘먹튀’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1년6개월 뒤인 2006년 7월 2700억원을 쌍용자동차에 대출했다. 쌍용자동차는 그 밖에 중국은행 등으로부터 차입을 통해 4620억원을 마련해 채권단에 진 빚을 갚았다. 동시에 상하이차는 채권단과 맺은 자산 매각에 대한 의무에서도 자유로워졌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이 대출을 통해 국내 기업을 투기적인 외국자본으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저버렸고, 상하이차가 쌍용차에서 쉽게 철수할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비난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은행 자체 약정에 따라 상하이차에 대출을 한 것으로, 쌍용차 매각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2004년 7월28일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
중국 상하이자동차 후마오위안 총재는 쌍용차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용 안정과 관련해 “현재 경영진과 직원의 고용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후 총재는 또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차와 세계시장 확장 방안을 공동 모색할 것이며 연구·개발(R&D) 등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투자 액수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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