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딜 가나 자신이 희망하는 직장을 구하기 위한 경쟁은 피할 수 없지만, 나라마다 생활 여건과 환경에 따라 시민 간 직장 선호도가 달라지고 그에 따른 경쟁의 강도 차이도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일자리인 교사를 노르웨이와 비교해보자.
노르웨이 신문 의 지난 3월10일치 기사를 보면, 교직과목 이수자들은 자신의 성적이 다른 학생과 비슷하거나 평균보다 조금 더 나은 것에 만족하고 있다. 또 그들 중 14%만이 대학 입학 당시 고교 내신 성적이 매우 우수했다고 밝혔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교육부문 조사를 통해 노르웨이에서 교직을 둘러싼 경쟁이 심하지 않은 다른 이유도 찾을 수 있다. 이 조사에 바탕하면, 노르웨이 교사들은 다른 OECD 국가의 교사에 견줘 수업 담당 시간이 가장 적지만, 그만큼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그래도 다른 공공부문 직종과 비교하면 근무시간이 길다. 노르웨이는 한국처럼 스승에게 비교적 높은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유교적 전통이 없다. 게다가 많은 교사는 규율이 잡히지 않은 시끌벅적한 교실에서 학생을 타일러가며 수업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교사 직업을 회피하는 원인의 하나가 됐다.
리크헤트, 노르웨이식 평등 관념이 밖에도 노르웨이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경쟁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많다. 1960년대 말 이후 노르웨이 근해에서 발견된 엄청난 양의 석유를 판 돈으로 잘 뒷받침되는 복지제도 덕분에 대학교육의 문이 모두에게 열려 있고, 직종 간 임금 격차도 크지 않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기공이나 배관공의 임금이 교사보다 높은 편이다.
노르웨이에는 ‘리크헤트’(likhet)라는 말이 있다. 유사함, 같음 혹은 평등이란 의미의 이 말은 노르웨이 복지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노르웨이 출신의 사회인류학자 마리안네 귤레스타드는 리크헤트를 서열의 가치를 줄여 사회·경제·정치적 불평등을 최소화하겠다는 사회적 의지의 반영으로 보았다. 이런 평등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산업화되기 전부터 적은 인구가 넓은 지역에 퍼져 있어 협동에 바탕한 네트워크 형성이 긴요했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다. 또한 귀족이 거의 없고 도시 유산층이 적은 평민 위주의 노르웨이 사회에서는 모든 구성원을 평등한 협력·연대의 주체로 보는 관점이 널리 퍼졌다. 시장경제 측면에서 보면, 리크헤트는 높은 세금을 매겨 재분배를 하는 것보다는 일자리 나누기와 평등한 임금제도, 광범위한 복지 혜택을 통한 기회의 확대를 의미한다.
학생 46% “평균 정도 노력”
이렇게 형성된 노르웨이식 평등 관념은 ‘내가 남보다 더 낫다’고 뽐내는 것을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는 문화의 바탕이 됐다. 그래서 어떤 분야에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단지 운이 좋았다든지 하는 겸손한 태도를 드러내도록 문화적으로 요구받는다. 예컨대 같은 과의 많은 석사과정 학생들이 석사 논문 기한을 넘기며 애쓰고 있을 때 한 학생이 기한에 맞춰 일찍 논문을 제출했다면, 그는 과시하지 않고 석사 논문을 ‘조용히’ 제출할 것을 동기생들에게 암묵적으로 요구받는다. 그는 경우에 따라 자신의 논문 제출 이야기를 일부러 피해야 할 때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잘난 척’하는 것보다는 겸손한 태도를 미덕으로 여기지만, 한국과의 차이점은 자기과시를 철저히 배제하는 노르웨이 사회 풍토다. 노르웨이인들은 좋은 학벌과 물질적 풍요를 자기과시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꺼린다.
이러한 노르웨이식 평등 관념은 노르웨이 학교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대부분의 노르웨이 학생은 한국 학생과 달리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보다 성적이 남과 비슷하거나 평균보다 약간 더 나은 것에 만족한다. 노르웨이 국내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들 40%는 자신이 평균보다 약간 더 똑똑한 편이라고 응답했고 46%는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노력 정도가 평균이라고 답했다. 사실 노르웨이 학생 사이에서 ‘공부벌레’는 학교 성적이 좋거나 지식이 많은 학생을 평가절하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사고의 이면에는 힘들게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지식의 양을 쌓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며, 공부벌레로 살면서 아무런 사회생활을 향유하지 않는 인생은 별로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또한 지식의 양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으므로, 남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기 위해 무한경쟁에 뛰어들 필요가 없음도 의미한다.
그렇다면 노르웨이 사람들 사이에 노벨상을 받은 노르웨이인 이바르 예베르(물리학·1973)나 핀 쉬들란(경제학·2004)보다 국가대표 스키 선수 베가르 울방이나 마리트 비에르겐이 더 잘 알려진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스포츠 선수들이 학술계 인사보다 대체로 더 서민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닐까? ‘남과 다르지 않은’ 평범함은 사실 평등 지향적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가치다.
교과 외 활동 시간, 학업의 2배
스포츠란 경쟁이 필수적인 분야인데, 노르웨이에서는 역설적이게도 ‘평등 가치’ 실현의 무대로 자리매김해왔다. ‘스포츠 영웅’(이드렛트헬트)이란 이름은 노르웨이 시민에게 스포츠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사람이란 의미뿐 아니라 서민적 풍모로 평등주의 가치를 잘 실현한 사람이란 뜻도 지닌다. 스포츠의 이런 매력 때문일까? 노르웨이 학교에서 한국의 입시 경쟁과 같은 불타는 열정은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오히려 교과 외 활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스포츠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키는 남녀를 불문한 인기 종목이고 남학생은 축구, 여학생은 핸드볼에 열광한다. 노르웨이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9~19살 학생이 학업에 쓰는 시간보다 교과 외 활동에 사용하는 시간이 2배 이상 많았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종목에서 더 유명한 스포츠 클럽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노르웨이 학생들은 타자와 다르지 않은, 타자와 늘 연대·협력할 수 있는 ‘일반적인 평범함’을 실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고, 한국 학생은 남보다 우월한 나를 찾기 위한 일률적인 ‘학업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자기과시가 철저히 금기시되는 사회 풍토와 학업성취도에 따른 서열화가 이뤄지지 않은 노르웨이는 학업성적을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한국 사회와 다르다. 한국에서 성장한 내가 보기에, 노르웨이 사람들은 경쟁 없는 노르웨이 사회를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경쟁과 행복은 반비례한다.
조주형 오슬로대 동아시아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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