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광장에서 ‘촛불’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2010년 4월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서울 시내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위반으로 현장에서 연행된 사람만 총 35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3월에 26명, 2월에 11명, 1월에 16명이던 것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경찰은 이들 모두가 “야간집회나 미신고 집회 참석 등 집시법을 위반한 자”라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의 서선영 변호사는 “최근 집회 자체가 위축됐는데도 경찰 대응은 강해져, 예전 같으면 조용히 끝내고 집에 갈 수준의 집회에서도 연행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요즘에는 1인시위까지 봉쇄하고 연행하니 정말 살벌하다”고 말했다. 2010년 봄, 광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경찰에 밀려 휠체어에서 떨어진 장애인“어엇!”
외마디 비명과 함께 뇌성마비 1급 장애인 문애린씨가 휠체어 아래로 떨어졌다. 4월6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다. 머리를 땅에 찧고도 ‘활동보조 지침 개악 철회하고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움켜쥐었다. 문씨의 주변을 경찰 20여 명이 에워쌌다. 몸을 꼼짝할 수도, 지나가는 시민에게 고통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 경찰은 피켓을 빼앗아갔다.
이날 문씨는 1인시위에 나섰다. 갈수록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기 힘들어지는 현실을 알리고 개선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의 본인부담금을 올리고 심사규정을 까다롭게 만들었고, 인천·대전·대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서비스 신청을 금지했다. 이에 장애인들은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을 발족해 3월25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집회를 열었고, 4월2일부터는 광화문광장 1인시위와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문씨는 하루라도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의 중증 장애인이다.
1인시위는 어려웠다. 지하철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지나 광화문광장으로 가는 사이 경찰은 번번이 문씨 앞을 가로막았다. 세종대왕 동상 주변에 자리를 잡고 피켓을 무릎 위로 올리니 20여 명의 경찰이 달려와 문씨를 에워쌌다. “평화로운 1인시위를 왜 막느냐”고 물었더니 “여기서는 1인시위도 불법”이란 답만 돌아왔다. 문씨가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자 누군가 “끌어내려!”라고 소리쳤다. 저항도 잠시, 문씨는 바닥에 떨어졌고 곧 피켓을 뺏기고 말았다.
문씨 외에도 경찰로부터 폭력적인 탄압을 받았다는 장애인들이 지난 4월1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경찰이 막대기를 휠체어 바퀴 밑에 넣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사례, 실랑이 도중 부상을 당한 사례 등에 대한 진술과 사진을 함께 제출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남병준 활동가는 “경찰이 교보문고 앞 횡단보도 등 광화문광장 주변에서부터 장애인은 무조건 막아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집시법 위반으로 1인 시위를 탄압할 근거는 없다. 2005년 경찰청이 발행한 을 보면, “시위는 2인 이상의 다수인을 전제로 한 개념으로서 1인시위는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집시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인간띠 잇기’ 형식으로 여러 명이 1인시위를 하거나 여러 명이 모인 뒤 한 사람만 1인시위를 하는 경우 ‘변형된 불법집회’로 간주해 단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인간 띠잇기의 경우 몇m 간격으로 떨어져서 해야 1인시위인지를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어 문제”라며 “집시법상에서 시위는 여러 사람이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기세를 보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경찰이 말하는 ‘변형된 1인시위’는 이런 정의에 걸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활동보조 서비스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이 1인시위에 나선 이유는 다른 ‘집회 형식’으로 광화문광장에 서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윤성근 활동가는 “지난 7년간 집회 고를 해왔는데, 광화문광장이 조성된 이후로는 주변에서 집회하는 것을 꿈도 못 다”고 말했다. 얼마 , 광화문광장에 집회 신고를 하려고 서울 종로경찰서 민원실을 찾았다가 “광화문광장 주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로에 속해 집회 신고를 해도 허가가 안 다”는 얘길 듣고 발길을 돌렸다. 윤 활동가는 “세종문화회관 앞쪽도 광화문광장이 생긴 뒤 집회 신고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 개장 뒤 집회 허가 한 건도 없어
종로경찰서에 확인한 결과, 실제로 광화문광장이 개장한 지난해 8월 이후 올해 4월까지 광화문광장은 물론 인근 세종문화회관, 동화면세점 앞 등에서 집회 신고를 받아들인 경우는 없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광화문광장은 지명 자체가 ‘도로’로 분류돼 있어 집시법에서 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 속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확인한 결과, 광화문광장은 도시계획시설로서 도로와 광장으로 중복 지정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광화문광장이 조성된 뒤에도 도로로 지정돼 있던 부분을 변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광화문광장에서 말할 자유를 달라”며 무기한 1인시위에 나섰다. 지난 4월21일, 비 내리는 광화문광장에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가 홀로 피켓을 들고 섰다. 피켓에는 ‘제2의 통행금지법, 야간집회금지법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 광화문광장의 ‘삼엄한 경비태세’는 쉽게 관찰됐다. 1인시위가 시작되기 30분 전, 광장 옆 현대해상 건물 앞에서 사복 경찰 2명이 무전기를 들고 서서 대화를 나눴다. “아, 사람도 아무도 없고만 이걸 계속 보고 있으라는 거야?” 저녁 7시4분, 1인시위가 시작되자 ‘광화문광장’이라고 쓰인 우비를 입은 남자가 휴대전화로 상황을 보고했다. 서울시청에서 고용한 용역업체 경비였다. 4명의 경비조는 24시간 2교대로 광화문광장을 순찰한다. 벤치도 하나 없는데다 비바람까지 불어 텅 빈 광화문광장에는 4명의 경비 직원과 10인1조의 경찰만이 맴돌고 있었다. 잠시 뒤 사복 경찰 3명까지 나타나 1인시위자 바로 앞에서 상황을 주시했다.
다음날 1인시위에 나선 랑희 인권단체연석회의 상임활동가에게는 경찰이 다가왔다. “여기서 하면 안 된다”는 말에 시위자가 이유를 묻자, 경찰은 “여기서는 원래 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이후 서울시청 경비반장까지 다가와 “여기는 지나가는 사람도 많고 외국인도 있어서 이런 것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조현실 한국대학생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최근 우리 단체가 하는 집회 신고는 계속 불허되고 있다”며 “특히 광화문 일대, 서울광장 등 도심에서는 집회 신고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4월19일 이들 단체가 서울광장에서 대학생 정치참여 선언대회 ‘고 투 포 체인지 페스티발’을 열겠다고 신청하자 서울시청은 “행사가 서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의 사용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 불가하다”고 알려왔다. 서울시청 총무부의 이창호 주무관은 “서울광장 조례에 따라 정치적 내용이 아닌 순수 문화행사만 허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사의 ‘순수성’에 대해 명확한 기준은 없다. 이 때문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지난 4월10일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독도야 사랑해’라고 쓰인 포스터를 들고 서울시청 앞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쪽으로 걸어가던 독도사랑시민모임 회원 등 12명을 연행했다.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였다. 이 집회는 2주 전 서울시가 허가한 집회였는데, 돌연 이틀 전 허가 취소 통보가 왔다.
서울시 쪽은 “처음엔 행사 취지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상에 행사를 홍보하는 문구를 보니 독도사랑시민모임 단독 개최가 아니라 시민정치연합·시민민주단체와의 공동 행사였다”며 “애초 신고와 다른데다 그 내용도 순수하다고 볼 수 없어 허가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갑자기 허가 취소 통보를 받은 독도사랑시민모임 등은 행사를 강행했고 서울시청 주변을 가로막은 경찰에 의해 20여 명 중 12명이 연행됐다. 인천에서 슈퍼마켓을 한다는 한 시민은 “지나는 길에 독도와 관련한 캠페인을 한다고 해 동참했는데 연행당해서 억울하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연행’과 ‘소환’은 이어진다.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지난 4월1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천안함 실종자 무사 귀환과 진상 규명’을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가 경찰에 팔다리가 들려 연행됐다. 이후 4월13일 청계광장에서 ‘4대강 사업 반대’ 기자회견을 한 뒤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가 며칠 뒤 경찰의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최 사무처장은 “추모 촛불을 켜도 잡아가고 기자회견을 해도 소환하니 표적 수사, 예단 수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4월6일에는 한국대학생문화연대(한문연) 회원 등 대학생 10여 명이 ‘천안함 희생자 추모와 진상 규명’을 위해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가 2명이 연행됐다. 이날 연행된 김영식(28)씨는 “우리가 4월4일부터 나흘간 촛불을 들었는데, 경찰은 나와 송상훈씨의 이름이 에 난 직후인 7일에 연행했다”며 표적 연행 의혹을 제기했다. 는 4월6일치 “천안함 실종자 추모 청계광장 집회에서 ‘인민군 잘못 없다’ 외친 대학생 단체 수사”라는 기사에서 김씨와 송씨의 이름을 거론했다. 다음날인 7일 저녁 7시30분께, 촛불을 든 대학생 10여 명을 경찰 100여 명이 둘러쌌다. 김씨는 집회 장소에서, 송씨는 집으로 가는 길에 경찰에 연행됐고 두 명 모두 48시간 만에 풀려났다. ‘불법 야간집회’를 했다는 이유였다.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에 대해서는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상자기사 참조).
지방선거·G20 위한 치안 관리?2010년 봄의 광장에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두 개의 축은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관위는 ‘집회의 내용’을 제한하고 나섰다. 친환경 무상급식 캠페인, 4대강 공사 현장 사진전 등의 행사를 불허해 사실상 ‘4대강 사업 반대’와 ‘친환경 무상급식 지지’ 내용의 집회는 열기 어렵게 만들었다.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광고·벽보·사진·인쇄물 등을 배부·첩부·살포·상영·게시할 수 없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90조 93항이 근거다.
경찰은 ‘선진 20개국(G20)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위한 치안 강화’를 내세운다. 오는 11월에 열릴 행사를 위해 현재 서울지방경찰청은 ‘G20 특별기획팀’을 꾸린 상태다. 종로경찰서는 홈페이지에 ‘G20 정상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법질서 확립, 민생치안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팝업창을 띄우고 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최근에 나온 시위 관련 지침은 집회 쓰레기를 줄이자는 정도인데, 아무래도 G20이 있다 보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G20을 앞두고 전세계에서 집회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 테니 집회를 통제하는 것은 경찰의 숙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현 정권은 막대한 예산으로 4대강 홍보를 하면서 시민들은 이와 관련해 기자회견도, 1인시위도 못하게 한다”며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행사는 무조건 불법으로 치부하며 시민의 입을 막는 상황은 정부가 촛불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만 홍보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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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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