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총선을 이틀 앞둔 2008년 4월7일 저녁 8시30분, 서울 금천구 시흥3동 박미시장. 안형환 한나라당 후보는 마이크를 잡고 청중을 향해 거침없는 열변을 토해냈다.
복잡하니 선거 뒤 논의하자고 한 것을…“일부 정치인들, 이런 얘기 했다는 거 들었습니다. 시흥동 뉴타운, 법 규정 때문에 안 된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정치인은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 규정, 행정 규정 따지면 공무원 하지, 뭐하려고 국회의원 합니까? 뉴타운, 시흥3동 뉴타운 조속히 추진해야 됩니다.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저는 시흥3동 뉴타운을 위한 법 규정,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뉴타운 법 규정이 만약에 안 된다면 정치적으로 풀어야 됩니다. 시흥3동 뉴타운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 정치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지 단순한 문구, 행정적인 문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저는 강력하게 생각하고 여러분들에게 호소합니다. 자, 우리 함께 뉴타운을 만듭시다. 얼마 전에, 며칠 전에 오세훈 서울시장 여기 왔다 갔습니다. 조용히 왔다 갔습니다. 왜? 저를 만나고 가면 선거법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조용히 만나고, 아, 넘기겠습니다. 왔다 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자, 오세훈이 왔다 갔다는 이야기를 주민들에게 얘기해라. 이게 바로 내가 너를 도울 수 있는 모든 거다. 마음껏 얘기해라’라는 이야기를 저에게 했습니다. 맞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저하고 이번 총선 끝나면 뉴타운 문제 본격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이날의 연설은 상대 후보 진영에서 녹음해둔 덕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빼도 박도 못하는 ‘진실’로 남겨졌다. 그러나 여기서 드는 의문들. 안 후보의 주장은 사실일까? 정치적 중립을 준수해야 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말 안 후보를 향해 노골적인 지지 의사를 나타냈을까?
결국 안 후보는 현역 의원인 민주당 이목희 후보를 342표 차로 간신히 제치고 당선됐다. 그러나 이날의 발언이 문제가 돼 우여곡절 끝에 선거법의 허위사실유포죄로 법정에 서게 됐다. 이 밖에 △학력 기간 미기재 △허위 학력 공표 △불법 당원집회 등의 죄목으로도 기소된 안 의원에게 서울고법은 2009년 8월21일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중형이었다.
핵심 죄목인 ‘뉴타운 헛공약’ 부분을 규명하기 위해 재판부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직접 불러 심문했다. 2009년 7월22일 법정에 나온 오 시장의 증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오 시장은 2008년 4월3일 오전 9시30분 금천구에 있는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현장을 방문하고 시청으로 돌아가던 길에, 평소 친분이 있는 안 후보를 우연히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오 시장은 “금천구에 도시고속도로 현장이 있어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인사나 하려고 내렸다. 선거가 얼마 안 남았으니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격려했다. 이에 안 후보가 “금천구가 많이 낙후했으니 금천구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이야기하자, 오 시장은 “금천구를 포함한 서남권 지역에 현장 방문을 자주 하고 있다. 오늘도 내가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이 관심이 있다는 거 아니냐? 주민들께 이 점을 잘 좀 전달해달라. 이번 선거에서 나는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안 후보가 다시 “이 지역 최대 관심사는 뉴타운이다. 시흥3동은 뉴타운 지구로 지정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사업 추진을 못하고 있다. 뉴타운 사업을 본격 추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하자, 오 시장은 “뉴타운 문제는 복잡한 것이 너무 많다. 뉴타운 문제는 일단 선거가 끝난 후에나 본격적으로 협의하자”라고 대답한 뒤 헤어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오 시장의 증언을 들은 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을 만날 텐데 어떻게 안 의원과의 대화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또 앞서 오 시장이 같은 내용의 서면조서를 검찰에 제출한 시점이 안 의원과 만난 뒤 한 달 정도 지난 때라는 점에 착안해,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쯤에 만난 사람 가운데 기억나는 사람이 있느냐”고도 물었다. 안 후보와 만났던 일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세히 기억하는 그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을 나타낸 셈이다.
그래도 재판부는 오 시장의 발언을 ‘진실’로 상정하고 판단을 내렸다. 그 결과는 유죄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뉴타운 사업과 관련하여 오세훈 시장이 피고인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금천구를 방문하였고 이러한 방문 사실을 선거유세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허락하였다는 취지로 (청중이) 받아들이도록 피고인이 연설한 것은 오 시장의 발언 취지와 분명히 다른 것”이라며 “선거인들로 하여금 뉴타운 사업 추진 권한이 있는 서울시장이 피고인을 적극 지원하여 사업이 조속히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갖도록 하였다. 더구나 피고인의 연설은 선거일을 이틀 앞둔 막바지에 이루어졌고, 오세훈 시장의 방문 사실과 관련된 연설은 언론이나 인터넷 등을 통하여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바람에 다른 후보자들이 반박할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됨으로써, 피고인은 공직선거법이 보장하는 공정 경쟁에 관한 규칙을 어겼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18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금천구에서 1위 득표를 한 피고인과 2위 후보자와의 유효투표수 차이가 342표에 불과하였는데, 이 사건 연설이 행하여진 시흥3동에서는 유효투표수 차이가 650표에 이르러 사실상 당락을 좌우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외국 학력과 관련 경력을 허위로 공표하고, 선거 막바지에 허위 내용으로 연설을 함으로써 유권자들이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초를 허물어버린 결과에 대하여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상급심인 대법원은 2010년 2월11일 ‘뉴타운 헛공약’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연설이 원심 판결이 판시한 바대로 ‘뉴타운 사업과 관련하여 오세훈 서울시장이 피고인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금천구를 방문하였고 이러한 방문 사실을 선거유세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허락하였다’는 취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는 하나, 피고인 측의 주장과 같이 ‘평소 피고인과 친분이 있던 오 시장이 선거운동 중이던 피고인을 만나 격려하면서 피고인에게 오 시장의 금천구 방문 사실을 알려도 좋다’라고 허락한 것에 불과한 취지라고 해석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며 “이는 공표된 사실의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 경우로서 실제 세부에 있어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난다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를 두고 허위의 사실을 공표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판결을 다시 풀어보면, 안 후보의 연설 내용을 “오세훈 시장이 안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금천구를 방문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라”는 취지로 주민들이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안 의원 주장대로 “오 시장이 금천구를 방문해 안 후보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가 방문 사실을 알려도 좋다고 허락했다”는 정도로 주민들이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를 허위사실 유포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피고인이 연설한 것은 오 시장의 발언 취지와 분명히 다른 것”이라는 서울고법의 단호한 판단과 비교해보면, 대법원의 이런 ‘유연한’ 해석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또한 대법원 판결문 어디에도 당시 뉴타운 공약의 파급력과 지역 분위기, 선거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
2007년 대법원 “연설에서는 잣대 엄격해야”
서울고법과 대법원이 서로 다른 성격의 판례를 인용해 유무죄 논리를 구성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서울고법은 “후보자 간 토론회의 경우 한 후보자의 주장이나 질의에 대해 다른 후보자가 즉시 변론이나 답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게 되는 특성으로 인하여, 합리적으로 다른 후보자의 견해나 발언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에 대하여 비판·질의하는 행위는 일부 부정확 또는 다소 과장되었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도 허위사실을 공표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일방적인 연설의 경우 충분한 사전 검토와 숙고 끝에 이뤄지고 그 표현을 좀더 분명하게 밝힐 수 있으므로, 연설자가 진실에 반하여 일부 부정확하게 또는 다소 과장하여 전달한 것은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허위사실을 공표하였다고 볼 여지가 더 크다”(2007도2879 판결 참고)고 밝혔다. 서울고법이 참고한 판례는 2007년 7월 대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신현국 문경시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이었다. 2006년 5월 시장 선거에 출마한 신 후보는 방송 토론회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당시 박인원 시장을 공격하면서 “4년 전 판공비를 한 푼도 쓰지 않겠다고 해놓고 왜 12억이나 썼느냐”는 취지로 질문함으로써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법원 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미리 준비한 자료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연설의 경우와는 달리 후보자 사이에서 공방이 즉흥적·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합동토론회의 특성으로 인하여 위와 같은 표현의 명확성에는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상호 공방이 벌어지는 토론에서는 허위사실의 판단을 유연하게 할 수 있지만, 일방적인 연설 과정에서는 그 잣대를 더욱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의원 사건도 연설 도중에 한 발언과 관련돼 있는 만큼 이 판례를 적용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런 구체적 판례를 배제한 채 허위사실유포죄 전반에 관한 일반적인 판례를 적용해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에는 세부에 있어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허위의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2003도7423 판결 등 참고)고 판결했다. 이 판례는 2001년 상임위별 베스트 의원으로 선정된 이아무개 부천시의원이 이듬해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신을 ‘부천시의원 전체 중에서 베스트 1위 의원’으로 홍보하자, 상대방 박아무개 후보가 “이 의원은 베스트 1위 의원으로 선정된 적이 없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가 기소된 사건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박 후보의 주장을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라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력 허위 기재만 유죄로 인정그러나 안 의원의 발언도 그런 식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오 시장이 금천구에 있는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현장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을, 안 후보는 “오 시장이 조용히 왔다 갔다. 나를 만나고 가면 선거법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조용히 만나고 갔다”며 마치 안 후보를 돕기 위해 일부러 방문했다는 느낌을 풍겼다. 또 오 시장이 “내가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이 (금천구에) 관심이 있다는 거 아니냐? 주민들께 이 점을 잘 좀 전달해달라. 이번 선거에서 나는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 것을, 안 후보는 “오세훈이 왔다 갔다는 이야기를 주민들에게 얘기해라. 이게 바로 내가 너를 도울 수 있는 모든 거다”라고 정반대로 얘기했다. 뉴타운 건에 대해서도 오 시장은 “뉴타운 문제는 복잡한 것이 너무 많다. 일단 선거가 끝난 후에나 본격적으로 협의하자”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지만, 안 후보는 “이번 총선 끝나면 뉴타운 문제 본격 협의하기로 했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이런데도 안 후보의 발언이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로 보는 게 맞는지 모를 일이다.
어찌됐든, 대법원에서 사건을 다시 내려받은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김상철)는 지난 4월8일 하버드대 연수 경력을 ‘연구원’으로 표현하고 연수 기간 1년을 기재하지 않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안 의원에게 의원직 유지가 가능한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그리고 검찰은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 → 법원의 기소 → 의원직 상실형 → 대법원 무죄 파기 → 의원직 유지로 이어진 롤러코스터 같던 안 의원 재판(상자 기사 참조)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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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팀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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