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에 대한 급식비 지원은 아이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상급식을 하면 이런 문제는 물론 급식의 질까지 높아질 수 있다. 무상급식을 실시 중인 충남 아산 송남초등학교의 점심시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지난 3월 중학생 이재학(가명)군은 교무실에 찾아가 서류뭉치를 담임교사 책상 위에 툭 던져놓고 황급히 빠져나왔다. 서류뭉치는 다름 아닌 급식비 지원을 위한 것이었다. 행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짜로’ 학교 급식을 먹어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탄로날까봐 순식간에 일을 처리했다.
추가 서류에 ‘담임교사 추천서’까지하지만 이것만으로 급식비 지원을 받을 수는 없었다. 차상위 계층인 재학이가 급식비를 면제받으려면 △통합지원신청서 △주민등록등본 △건강보험증사본 혹은 보험료 납부액 확인자료 등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재학이가 낸 3가지 서류 가운데 주민등록등본이 빠졌다. 더욱이 건강보험료가 기준(3인 기준 4만9천원)을 초과해 담임교사 추천까지 추가로 받아야 했다. 결국 김아무개 담임교사는 재학이 부모에게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남 진도에 있는 재학이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죄송하다” “형편이 어렵다”는 얘기가 되돌아왔다.
김 교사는 “어머니가 ‘나는 전남 진도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데, 아이아빠가 중병에 걸려 돈을 벌 수 없는 형편이다. 재학이 큰누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돈을 벌고 있는데 많이 벌지 못하는 형편이어서 급식비를 내기가 어렵다’며 통사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단칸방에서 재학이가 누나 셋과 함께 사는데 누나 두 명은 고등학생”이라며 “그런데도 어머니와 큰누나가 봉급생활자로 두 명의 보험료를 합하면 기준을 넘기 때문에 담임교사 추천을 받아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며칠 뒤 김 교사는 재학이가 추가로 낸 서류와 함께 ‘담임교사 교육비 지원 추천서’를 작성했다. 이어 학생복지심사위원회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최종 급식비 지원이 결정됐다. 이 과정을 통해 재학이는 올해 무상으로 학교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한 중학교의 일이다. 이 학교에는 가정 형편으로 급식비를 내기 어려운 아이가 한 반(평균 32명)에 7~10명가량이다. 1학년 9개반, 2학년 10개반, 3학년 11개반이어서 모두 200~300명에 달한다. 김 교사는 “기초생활수급권자나 한부모가정의 경우 통합지원 신청서만 내면 되지만, 차상위계층은 제출하는 서류가 많다”며 “몇 가지를 빠뜨려서 다시 요구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서울 시내에서 급식비 지원을 받은 학생은 총 12만4203명에 달한다. 초등학생은 3만8911명이며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각각 3만5124명, 5만168명이다. 이 가운데 재학이처럼 여러 서류와 함께 담임교사 추천을 통해 급식비를 면제받은 학생은 전체 급식비 지원 학생의 12%인 1만4940명에 이른다. 중학생이 5750명으로 가장 많고, 초등학생 5018명, 고등학생 4172명 등이다. 이들은 가난을 증명하기 위한 서류를 떼다 내야 했고, 그 부모도 담임교사와의 전화 통화나 면담을 통해 스스로 아이 뒷바라지에 대한 ‘무능력함’을 다시 한번 드러내야 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중학교 임아무개 교사는 “밥 먹을 때는 누가 급식비를 면제받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면서도 “대신 자신의 가난을 스스로 증명할 때 아이가 힘들게 받아들이고, 부모도 아이가 기죽을까봐 급식비를 면제받을 수 있는 형편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밀린 급식비로 연말에는 급식 질 떨어져
여기에 아예 급식비를 미납하는 학생도 많다. 특히 지난 경제위기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 2008년 전국 학교에서 급식비를 한 달 이상 못 낸 학생은 전체 초·중·고 학생의 0.4%인 3만1908명이었다. 이는 2006년 1만6953명에서 2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밀린 급식비도 2006년 19억2500여만원에서 39억2700여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로 인해 학생은 밀린 급식비를 채근하는 학교가 부담스럽고, 학교도 들어와야 할 급식비가 들어오지 않아 예산 부족으로 급식 질이 떨어질까 걱정한다. 경기 양주의 ㅇ중학교 이아무개 교사는 “급식비를 내지 않으면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독촉한다”며 “심지어 ‘급식비를 미납하면 고등학교 진학원서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밀린 급식비로 인해 식재료값을 정산하지 못해 연말이 되면 급식 질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학교·지역 간 격차도 발생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 ㄱ중학교의 경우 정부와 학부모로부터 받는 급식비가 1인당 한끼 2900원인데, 서울 강남구 ㄷ중학교는 3천원이다. 지난해 10월 학부모들이 1인당 급식비를 올리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이같은 급식비 차이는 음식의 질로 이어진다. ㄱ중학교 관계자는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학생수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전체 규모로는 급식 질에 큰 차이를 낼 수 있다”며 “가뜩이나 가정에서 먹는 것이 부족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는 밥에서까지 차이가 나 건강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등교 시간 때문에 아침을 못 먹고 저녁은 학원 때문에 건너뛰는 아이가 많다”며 “제대로 된 식사가 점심이 유일한 경우가 많아 영양 면에서 점심을 잘 챙겨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무상급식을 하면 이같은 문제가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김종덕 경남대 교수(농업사회학)는 “학생과 학부모가 빈곤을 입증해야 하는 일부 급식비 지원은 편가르기나 위화감을 낳는다”며 “무상급식을 하면 이런 문제가 해소된다”고 말했다. 또 ‘친환경무상급식 풀뿌리국민연대’의 김선희 공동사무처장은 “무상급식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가난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지면 교사 부담도 줄어 교육에 더욱 신경 쓸 수 있다”며 “급식비 미납도 없어져 안정된 예산으로 급식 질을 1년 내내 고르게 유지하고, 친환경 급식 등 더 나은 급식을 위한 고민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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