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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인사폭풍, ‘PD수첩’ 죽이고 보수 라인업?

김환균 책임PD 솎아내고, 기자들이 불신임한 보도국장은 중용…
사퇴 압박에도 ‘비정상적 캐스팅’ 단행한 김재철 사장
등록 2010-04-02 18:21 수정 2020-05-07 14:18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이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종착역 플랫폼에는 문화방송 〈PD수첩〉 접수가 기다리고 있다.

정권의 문화방송 장악 시도에 맞선 내부 저항은 `저강도 장기전’으로 흐를 조짐이다. 3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10층 사장실 앞에서 노조 집행부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정권의 문화방송 장악 시도에 맞선 내부 저항은 `저강도 장기전’으로 흐를 조짐이다. 3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10층 사장실 앞에서 노조 집행부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사장 보고 뒤 이뤄진 〈PD수첩〉 인사

이주갑 문화방송 시사교양국장은 3월24일 〈PD수첩〉의 김환균 책임PD에게 “오랫동안 고생했으니 그만하라”며 책임PD 자리에서 물러나 ‘창사50주년기획단’으로 가라고 통고했다. 김재철 사장에게 보고한 뒤 “그렇게 하라”고 지시받은 뒤다. 김 PD는 그동안 용산 참사, 4대강 사업 등에 관한 프로그램 제작을 진두지휘했다. 이 국장은 김 PD에게 회사 방침을 거부할 경우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다고도 했다. 다만 부장급인 김 PD에게 기획단의 부국장급 자리를 제시함으로써, 형식상으로는 영전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인사였다.

문화방송은 김 PD 후임으로 공정방송노조 출신의 다른 시사교양국 PD를 임명하려고 했다. 고참급 직원들로 꾸려진 공정방송노조는 그동안 보수적 의제 설정으로 문화방송을 공격해왔으며 이 국장도 이 노조 출신 인사다. 이렇게 되면 시사교양국 주요 라인업이 모두 공정방송노조 출신으로 채워지는 셈이다. 창사50주년기획단 단장으로 내정된 인사도 같은 노조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례대로 〈PD수첩〉 진행자도 겸임해온 김 PD는 회사 쪽 제안을 거부했다. 김 PD는 1년6개월가량 〈PD수첩〉을 이끌어오면서 프로그램의 구성과 사실 확인 등을 꼼꼼히 챙기면서도, 소속 PD들이 제시한 아이템은 자신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내부 신망을 얻어왔다. 소식을 듣고 발끈한 시사교양국 PD들은 이날 저녁 총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이번 인사가 김재철 사장이 공약한 ‘PD수첩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기 위한 사전 조처인지에 대한 판단 문제부터 시작해 이 국장을 탄핵해야 하는지, PD들이 집단행동에 나서야 하는지 등이 논의됐다.

문화방송 안에 보직 국장만 해도 30명이 넘고 팀장급은 100명 안팎에 이를 정도로 많아 사장이 일개 팀장 인사에 대해 왈가왈부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사장 보고까지 이뤄진 김 PD 인사는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라는 점에 PD들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본인의 의사를 무시한 채 소속 국을 뛰어넘은 인사를 한 적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계열사 사장도 고려대·공정방송노조 출신
김환균 전 책임PD가 〈PD수첩〉을 진행하는 모습. 문화방송 제공

김환균 전 책임PD가 〈PD수첩〉을 진행하는 모습. 문화방송 제공

시사교양국 PD들의 집단행동이 가시화하자 회사 쪽은 그날 새 책임PD 인사안을 철회했다. 대신 김태현 PD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PD수첩〉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김 PD는 고사 끝에 책임PD를 맡기로 했다. 김환균 PD는 〈PD수첩〉은 그만두되 시사교양국 안에서 다른 보직을 맡기로 했다.

“정권의 모진 탄압 속에서도 ‘진상 조사’를 거부하고 용산 참사, 4대강 사업 등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기획한 팀장에 대한 ‘솎아내기’이자 표적 인사이며 ‘부관참시’ 조치에 다름 아니다.” 시사교양국 PD들은 다음날 낸 성명서에서 김환균 PD 경질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하면서 “〈PD수첩〉에 대한 순치화·무력화 시도가 현실화되는 경우 제작 거부를 포함한 단체 행동에 나설 방침”임을 밝혔다.

공정방송노조 출신 인사의 〈PD수첩〉 접수 기도는 일단 물 건너갔지만 앞으로 프로그램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우려가 많다.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국장이 많은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PD수첩〉의 한 PD는 “국장이 막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제약이 심해질 것 같다”며 “국장이 개별 건에 대해 계속 불러서 문제 삼고 사사건건 괴롭히게 되면 PD도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려한 대로 이명박 정부의 문화방송 장악은 인사를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 〈PD수첩〉은 한 예에 불과하다. 문화방송 노조를 비롯해 안팎에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김재철 사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지방 계열사·자회사 인사에 이어 본부장·국장·부장급 인사까지 잇달아 단행하고 있다. 계열사·자회사 인사는 그 백미였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큰집”에서 김 사장을 불러 “조인트”를 깐 결과라고 폭로한 그 인사다. 경영 실적이 우수한 사장들은 모두 날아가고 고려대·공정방송노조 출신 인사들이 대거 약진했다. 입사 20년을 넘긴 예능국의 한 PD는 “인사란 게 업무 능력과 도덕성, 리더십 등을 보고 해야 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비정상적 캐스팅”이라며 “내가 아는 한 문화방송 역사상 최악의 인사였다”고 평가했다. 이 PD는 인사 내용만 보면 김 전 이사장의 발언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보도국에서는 전영배 전 보도국장의 기획조정실장 임명에 기겁하는 분위기다. 그는 지난해 4월 신경민 앵커를 중도 하차시킨 장본인으로 거론되면서 이에 분노한 보도국 기자들이 들고 일어나 불신임 투표를 가결한 바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취임 한 달 만에 국장직을 그만둔 인물이 이번에 중용된 것은 ‘김재철 사장이 보도국의 의사를 무시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전 실장은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의 고등학교 한 해 선배이자 서울대 동기이기도 하다.

노조 농성은 무시, ‘조인트 소송’만 서둘러

입사 10년 미만의 한 보도국 기자는 “김 사장이 ‘너희들의 불신임과 정권에 대한 견제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사장의 직할 통치가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방송의 보도 경향에 대해 “지난해 4월께 신경민 앵커가 경질되고 검찰의 〈PD수첩〉 제작진 체포, 본사 압수수색 시도 등이 이뤄진 뒤 민감한 기사는 약하게 나가거나 아예 킬(보도하지 않는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민감한 기사들이 축소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김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 3월4일 합의로 김 사장을 인정하고 ‘내부 투쟁’으로 눈길을 돌린 문화방송 노조는 김우룡 전 이사장의 폭탄 발언 이후 다시 김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사옥 10층 사장실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월22일에는 전임 지방 계열사 사장단 일동이 김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김 전 이사장의 발언을 들어 “김 사장의 선임 배경이 대통령과의 친분 때문이라는 풍설이 파다한 마당에 지방 문화방송 사장들까지 청와대가 강제로 해임하고 임명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며 “사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요청한다”고 선언했다. 김 사장은 안팎의 사퇴 요구와는 상관없이 김 전 이사장에 대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검토 작업을 서두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문진이 김 전 이사장의 후임 이사를 뽑고 이사장도 새로 선출하는 작업은 4월 초 본격화할 예정이다. 2년 동안의 방송 장악 흐름을 봐서는 또다시 권력 개입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1990년 5월8일 첫 방송을 시작한 〈PD수첩〉의 20번째 생일이 머지 않았다.







 






























문화방송 노조 이근행 위원장 인터뷰
“긴 싸움으로 진정성 증명하겠다”


문화방송 노조 이근행 위원장.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문화방송 노조 이근행 위원장.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이명박 정부의 문화방송 장악이 착착 진행되면서 문화방송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3월4일 김재철 사장과의 합의로 인해 노조의 스텝이 계속 꼬이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노조는 김 사장 사퇴 쪽으로 돌아섰지만 이를 실행할 별다른 카드를 갖고 있지 못하기도 하다. 방송 장악 저지 투쟁의 구심점이 돼야 할 노조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근행 노조위원장은 “우리가 김재철 사장과의 긴 싸움에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노조의 태도는 무엇인가.
=김재철 사장이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발언에서 비롯된 의혹만으로도 언론사 수장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 김 전 이사장의 폭탄 발언은 누구나 사실을 말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김재철 사장의 퇴진 투쟁은 조합 내부의 동력과 관련해 적절한 시점이 올 것이라고 본다. 왜 (3월 초에 김 사장 취임에 반대하는) 파업을 하지 않았느냐고 문제를 몰아가면 더 이상 우리는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김 사장과의 긴 싸움에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뉴스가 변하지 않고 시사 프로그램이 비판 정신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어떤 모멘텀에서 김 사장 퇴진 투쟁을 과감히 결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사를 통한 방송 장악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인사에 대한 평가는.
=(지난번 지방 계열사 인사와 같은 행태가) 재연되지 않도록 충분히 김 사장에게 경고했다. 이번 본부장·국장 인사 때는 지난번 사태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공정방송노조 출신이나 일부 문제 인사들을 기용한 것이 조직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김환균 〈PD수첩〉 책임PD의 타국 전배 인사 조처 시도가 있었다. 탄압이라는 시각도 있다.
=회사가 〈PD수첩〉의 변화를 꾀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현장 PD에 의해 저지되고 무산됐다. 책임PD 교체는 있을 수 있다. 왜 바꿨느냐, 그것 자체를 문제 삼을 건 아니다. (후임 책임PD 논란 등에 대해) 나는 판단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건 PD들이 어떤 생각으로 간부들과 싸우고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느냐다. 조합에는 공정방송협의회가 있다. 〈PD수첩〉을 무력화하고 변질시키면 우리는 공정방송협의회를 통해 보직 해임을 요구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사안에 기초해 판단하고 싸워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투쟁은 어떻게 되나.
=길거리에 나가는 것만 바라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업으로 문제가 해결되는가, 파업하면 김재철은 물러나는가, 파업으로 인한 상처와 패배주의는 누가 처리하는가, 무너진 다음에 우리 프로그램은 누가 책임지는가 등 다층적 고민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방송문화진흥회 개혁이 더 중요하다. 그게 아니면 또 다른 김재철·김우룡이 계속 나온다. 정치권력의 문화방송 개입이 계속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법을 고치고 방문진 구성 방식을 바꿔서 집권당의 전리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 사장과 노조의 합의 뒤 (안팎의 비판에) 힘들지 않나.
=힘들지 않다. 외부의 비판을 충분히 이해한다.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다. 인식의 차이는 예전에도 있었다. 바깥 시민사회에서 문화방송 노조의 결정을 굴복·배신으로 규정해버린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의구심에 대해서는 문화방송 노조와 구성원들이 자신의 진정성, 변하지 않는 투쟁을 스스로 증명해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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