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8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유인촌 문화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한 무리의 누리꾼들을 고소했다. 이른바 ‘회피 연아’ 동영상을 인터넷에 게재하고 퍼뜨렸다는 게 그 이유다.
경찰은 이 동영상을 올린 누리꾼들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명예훼손)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현재까지 6~7명의 누리꾼에게 출석요구서를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원본을 올린 누리꾼을 포함해 동영상을 다른 곳에 옮겨 게시한 누리꾼까지 적발해 출석요구서를 발부한 상태다.
문화부의 과도한 대응과 경찰의 신속한 수사를 두고 누리꾼들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조차 “웃자고 한 일인데 죽자고 달려든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논란의 와중에 영문도 모르고 출석요구서를 받은 차경윤(29)씨를 지난 3월25일 만났다. 차씨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지난해 10월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쳤고 지금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 “유인촌씨가 장관인 줄도 몰랐다” ]
- 경찰이 언제 연락했나.= 지난 3월17일께 서울 종로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이라며 전화를 해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황당해서 “좀 알아보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22일 집으로 출석요구서가 날아왔다.
- ‘회피 연아’ 동영상을 직접 올렸나.= 나는 그 영상을 제작한 게 아니고 어딘가에서 우연히 본 영상을 복사해, 평소 다니던 영어학원 카페 유머 게시판에 올렸을 뿐이다.
- 동영상은 왜 올렸나.= 그냥 여기저기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김연아 선수의 표정이 재미있기에 올린 것뿐이다. 사실 난 지난해 10월 군대에서 전역해 유인촌씨가 장관인 줄도 몰랐다. 그냥 재미있는 사용자제작콘텐츠(UCC)인 줄 알고 올렸다.
- 유인촌 장관을 악의적으로 비방하려고 동영상을 퍼날랐다는 게 문화부 등의 주장인데.
= 나는 연극을 좋아한다. 사실 유인촌씨에 대해서는 호감이 더 많았다. 도 좋아했고 연극인으로서 유씨는 친근한 이미지였다. 악의적으로 비방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한데 이런 출석요구서를 받고 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다 유씨가 문화부 장관이고 이전부터 누리꾼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동영상을 퍼나르는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경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황당했다. 요즘은 정치인 패러디를 많이 하지 않나.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다뤄진다. 유 장관이 등장하는 ‘회피 연아’ 동영상도 그 정도의 패러디로 생각했을 뿐이다. 편집된 영상인지도 몰랐다. 양희은씨가 2008년 문화방송 에 나와서 한 얘기가 생각난다. 예전에 공안 당국이 가사를 문제 삼아 양씨를 불러 “통금제도가 있는데 왜 긴 밤 지새우냐” “태양은 왜 하필 붉게 타오른다고 노래하느냐”고 물어 황당했다고 하던데, 내가 지금 양씨가 된 기분이다.
- 유 장관이 어떻게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보나.= 문화부 장관이면 공인이다. 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비문화적 접근을 하는 것이 유감이다. 누가 몰래 찍어서 올린 동영상도 아니고 한국방송 보도영상 아니었나. 혹시 편집된 내용이 유감이라면 그냥 입장 발표 정도에 그쳤어야지 누구를 고소하는 건 과민 반응이다.
- 최근 인터넷 표현물에 대한 정부의 통제 움직임에 비판이 많다. 어떻게 보나.= 인터넷에 비실명으로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목욕물을 버리려고 씻기던 아기까지 버릴 수는 없지 않나. 공권력을 동원해 누리꾼을 수사하고 인터넷의 자율성을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차씨는 지난 3월26일 종로경찰서에 출석해 두어 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조사 직후 과의 통화에서 차씨는 “내가 원본 제작자가 아님을 재차 밝혀도 경찰은 자꾸 ‘무슨 의도가 있었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정치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차씨의 변호를 맡은 박주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는 “게시글에 유 장관에 관한 험담을 쓴 것이 전혀 없고 단순히 타인의 동영상을 옮긴 것뿐이라 기소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허재현 기자 한겨레 취재보도영상팀 catalunia@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나훈아, ‘왼쪽 발언’ 비판에 “어른이 얘기하는데 XX들 하고 있어”
[단독] “윤석열, 체포 저지 위해 무력사용 검토 지시”
불교계, ‘윤석열 방어권’ 원명 스님에 “참담하고 부끄럽다”
‘군인연금 월500’ 김용현, 체포 직전 퇴직급여 신청…일반퇴직 표기
임성근 “채 상병 모친의 분노는 박정훈 대령 말을 진실로 믿은 탓”
대통령 관저 앞 집회서 커터칼 휘두른 50대 남성 체포
경호처 직원 ‘전과자’ 내모는 윤석열…우원식 “스스로 걸어나오라”
판사 출신 변호사 “경호처 직원 무료변론…불법적 지시 거부하길”
영장 재집행 않고 주말 보내는 공수처…‘경호처 무력화’ 어떻게
1월 13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