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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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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공백과 ‘평화체제’의 지연

2010년 한반도 정세 전망…
총괄적 대북전략 부재 속 비선 활용 가능성, YS 시절 ‘실패한 쌀 회담’ 재연될수도
등록 2010-01-21 21:56 수정 2020-05-03 04:25

2010년은 ‘역사적 성찰’의 해다. 100년 전 우리는 국권을 잃고 식민지, 분단 그리고 전쟁과 냉전의 역사를 거쳤다. 우리가 살아온 100년에 대한 성찰과 우리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100년을 기획해야 할 중요한 시기다.
남북관계에서도 올해는 6·15 공동선언 10주년이며, 북-미 관계에서는 2000년 ‘조-미 공동 코뮈니케’ 채택 10주년이다. 그리고 두 개의 공동선언으로 10년 전 한반도는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의 선순환’을 경험했다. 2010년, 다시 한번 남-북-미 삼각관계의 선순환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북-미 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악화의 악순환을 경험할 것인가? 선택의 한 해다.

‘쌀밥에 고깃국도, 한반도 비핵화도 유훈이다.’ 새해 첫 공개활동으로 평안북도 희천발전소를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지난 1월4일 북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연합

‘쌀밥에 고깃국도, 한반도 비핵화도 유훈이다.’ 새해 첫 공개활동으로 평안북도 희천발전소를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지난 1월4일 북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연합

평양에 성조기, 워싱턴에 인공기 날린다면

올해는 또한 5년마다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재검토 회의(5월3~28일, 미국 뉴욕)가 열리는 해다. NPT 체제를 강화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5월 이전에 북핵 폐기의 가능성을 확인함으로써, 북한이 NPT 체제에 재가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북한은 NPT 역사에서 가입했다가 탈퇴한 유일한 사례다. NPT 체제 밖의 북한이라는 존재는 NPT의 구속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협상의 환경은 조성되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2009년 12월 방북으로 북-미 양국은 포괄적 접근이라는 원칙에 공감을 표했다.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 미국은 관계 정상화를 통한 비핵화 접근 방식의 중요성을 인식할 것이며, 북-미 양국은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가?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의 성과가 필요하다. 그러나 해결 수단이 제한적이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는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는 한국의 적극적 동참 없이는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미국은 관계 정상화 카드를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대사급 관계는 상원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비준된다는 점에서 당장에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대통령 결정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연락사무소 개설을 서두를 가능성이 있다. 연락사무소는 대사급 관계로 넘어가는 잠정적 과정이다. 평양에 성조기가 날리고 워싱턴에 인공기가 날린다면, 상징적 효과는 결코 적지 않다.

북한의 비핵화는 평화체제와 비례

북한은 북-미 관계 진전의 과정에서 영변 핵시설을 과감하게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영변의 핵시설이 노후화해 있고, 불능화 중단 선언 이후에도 가동 재개 움직임이 거의 없으며, 농축 우라늄 생산을 새로운 협상 카드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협상 수단으로서 효용이 끝난 영변 핵시설을 과감하게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가 변수다. 북한은 1월11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정식으로 제안했다. ‘평화체제 논의 없이 6자회담 재개 없다’는 뜻이다. 사실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합의사항 중에서 유일하게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별도포럼(즉 남북·미·중 4자회담)’이다. 핵을 포기한 북한이 재래식 군비경쟁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평화체제 보장 없이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의 평화체제 주장을 과거의 낡은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 의사는 평화체제에 대한 의지와 비례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 재개와 더불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을 미룰 이유가 없다. 그러나 결정적 문제는 ‘평화체제’를 부정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다. 군사적 신뢰 구축의 당사자인 한국이 오히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현실, 그것이 2010년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장면이다.

남북관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2009년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둘러싼 대화의 1막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9년 대화의 1막1장에서 ‘비선’의 개입으로 정상회담 논의를 위한 접촉이 이루어진 과정과 1막2장에서 통일부 주도의 대북 협상 과정은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줬다. 비선의 활용은 문제점으로 남겨져 있으며, 정무적 접근과 정책적 접근의 연결도 매끄럽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의 전체적인 대북 전략이 부재하고, 대북정책 결정구조가 정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문제다.

정상회담을 위한 의제 선정도 비현실적이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일회적 성과주의로 접근할 수 없다. 포괄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신뢰 구축에 대한 적극적 의지 없이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의 <조선중앙TV> . 한겨레 자료사진

북한의 <조선중앙TV> .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의 대북정책은 지방선거 이전까지 보수적 의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라 상반기 중으로 남북관계 정상화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대북정책 프레임은 여전히 선핵폐기론에 치중돼 있다. 무엇을 하기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이다.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연락사무소’ 제안을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의 부재를 형식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다.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포함해서 대화에 적극적인데, 형식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문제는 정책 내용이다. 정책이 있으면 형식은 문제될 게 없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결집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수적 의제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과정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합의 이행 문제를 정치적 시선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지속할 것이다. 상반기에 장관급 회담 등 남북 당국자 관계가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의제의 우선순위 차이로 접점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북 전략의 부재는 정책결정 과정의 혼선으로 나타날 것이다. 미국과 북한을 포함해서 국제사회는 묻고 있다. 누가 대북정책의 책임 있는 당국자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풍경은 지속될 것이다.

한국이 상반기의 한반도 정세 변화에서 뒤처지면, 하반기에 서두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북-미 관계에서 연락사무소가 개설되고 북-일 관계가 급진전하는 상황에서,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한국은 뭐하나?’를 물을 것이다.

정부 내부에서 외교안보 조정체계가 부재하고 통일부 중심의 이념적 대북 접근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에 다시 비선이 개입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지방선거의 결과에 따라 정국 반전을 위한 정치적 카드로 남북 정상회담을 고려할 수 있다. 비선이 활약하기 좋은 환경이고, 정책 혼선의 가능성은 높은 상황이다.

지방선거 이후 남북 정상회담 고려할 수도

그런 점에서 서두르다 낭패를 본 1995년 쌀 회담이 2010년에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1995년 쌀 회담은 김영삼 정부의 임기 중반 시점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생했고, 쌀 지원 과정에서 인공기 게양 사건으로 대북 여론만 악화시켰다. 김영삼 정부는 이후 오랫동안 남북관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남북관계의 공백은 그 자체를 넘어 북핵 문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doota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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