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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위헌제청 봇물

최근 석 달 새 3개 법원 재판부에서 잇따라… 모두 6건으로 형사법 조항 가운데 사상 최대
등록 2010-01-21 18:29 수정 2020-05-03 04:25

“…입법자가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최소한의 고려라도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바, 입법자가 이 사건 법률 조항에 의해 구체화된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면서 사회적 소수자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와의 심각하고도 오랜 갈등관계를 해소하여 조화를 도모할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보이므로 이들에게 일률적으로 입영을 강제하고 형사처벌을 하는 범위에서 이 사건 법률 조항은 기본권 제한 원리를 준수하지 못하여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판단된다.”

2007년 10월 노무현 정부의 대체복무제 도입 추진 방안이 나오자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이를 환영하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왼쪽). 앞서 헌법재판소는 2004년 8월 병역거부자 처벌 조항에 대해 합헌결정판결을 내렸다. (왼쪽부터) <한겨레21> 박승화·류우종 기자

2007년 10월 노무현 정부의 대체복무제 도입 추진 방안이 나오자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이를 환영하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왼쪽). 앞서 헌법재판소는 2004년 8월 병역거부자 처벌 조항에 대해 합헌결정판결을 내렸다. (왼쪽부터) <한겨레21> 박승화·류우종 기자

사회단체 성명서 방불케 하는 결정문

이는 사회단체 성명서도, 병역거부자의 탄원서도, 헌법개론서 내용도 아니다. 지난해 12월3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나온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문의 일부다. 수원지법 형사항소4부(재판장 김경호)는 이날 병역거부자 처벌의 근거가 되는 병역법 88조 1항(현역 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3일 안에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았을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에 대한 피고인 김아무개(22)씨와 이아무개(22)씨의 위헌제청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위헌제청은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고 판단할 경우 재판부가 헌법재판소에 해당 법률의 위헌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재판부가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가릴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할 때 내리는 결정인 만큼, 개인이 헌법재판소에 특정 조항의 위헌성을 묻는 헌법소원에 견줘 무게감이 크다. 더구나 수원지법 결정처럼 1심이 아니라 항소심 합의부에서 위헌제청을 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지난 1월5일 대구지법 김천지원에서도 위헌제청이 다시 나왔다. 수원지법 결정이 나온 지 6일 만이다. 이로써 2008년 이후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다섯 번째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된 상태다. 앞서 2008년 9월 춘천지법, 2009년 7월 대전지법 천안지원, 2009년 11월 전주지법에서 위헌제청이 나왔다. 특히 지난해 11월 이후 잇따라 3건의 위헌제청이 나와 판사들이 병역거부자 처벌에 대해 느끼는 부담을 드러낸다. 위헌제청을 한 판사는 “무죄 선고도 생각했지만, 구조적 문제라 위헌제청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무죄를 선고해도 상급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오면 판결의 의미가 상쇄되기 때문에 차라리 위헌제청을 통한 구조적 해결을 택했단 것이다.

이렇게 병역거부 관련 조항은 두 번째 헌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2002년 최초로 위헌제청이 됐던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헌재는 2004년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헌재는 당시 합헌 결정을 하면서도 입법부에 법률 개정을 통해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대체복무제 도입 발표가 나왔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7월 국방부는 대체복무제 허용을 사실상 백지화하는 견해를 밝혔다. 이렇게 입법을 통한 해결의 가능성이 막히면서, 다시 일선 판사들이 위헌제청이라는 방법을 통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실제 한 판사는 “입법을 통한 해결이 막힌 상황이 위헌제청 배경이 됐다”고 전했다.

2004년 공 넘겨받은 국회·정부의 ‘방치’

2004년 헌재의 합헌 결정 이후로 공은 입법부와 행정부로 넘어갔지만 6년이 흘러도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합헌 결정 이후 춘천지법에서 다시 위헌제청이 된 지도 3년째 접어들었지만 헌재의 결정은 나오지 않고 있다. 2004년 이전까지 합치면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한 위헌제청은 6번으로, 형사법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으로는 역대 최다다. 여기에 2007년 4월 울산지법 송승용 판사가 향토예비군 설치법 15조 8항에 대해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같은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까지 합치면 병역거부자에 대한 위헌제청은 7건에 이른다.

이렇게 중복된 위헌제청은 해당 법률의 위헌성에 대한 사법부의 관점을 드러낸다. 지금껏 중복된 위헌제청을 거쳐서 위헌이나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온 경우는 많다. 민법 제809조 1항 동성동본 결혼 금지 조항에 대해서 8번의 위헌제청이 나와 결국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왔고, 민법 778조 호주제도 6번의 위헌제청 끝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그동안 동성동본 금혼 조항처럼 중복된 위헌제청이 나온 경우는 민법이나 경제 관련 법률이 대부분이다. 형사법 조항 중에 위헌제청이 6번이나 중복돼 나온 경우는 병역법 88조 1항을 제외하곤 없다. 그만큼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에 일선 판사들이 공감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병역거부자 변론을 맡아온 김수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변호사)은 “잇따른 위헌제청엔 헌재의 빠른 판단을 압박하는 의미가 담겼다”고 해석했다. 병역거부자 지원 단체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 판사가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하라고 했다”며 “앞으로 법원의 위헌제청이 계속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위헌제청이 되면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해당 재판이 중단돼, 피고인인 병역거부자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언제 다시 구속될지 몰라서 취직을 하기도, 복학을 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김수정 변호사는 “이런 피고인의 상황과 의견을 감안해 위헌제청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실제로 위헌제청 의사를 가졌던 판사는 더욱 많다”고 전했다.

병역거부자 처벌에 대한 판사들의 시각은 위헌제청 결정문에 담겨 있다. 수원지법 결정문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류의 평화적 공존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결단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병역거부를 군 복무의 고역을 피하기 위한 것이거나 국가 공동체에 대한 기본 의무를 아니하면서 무임승차식의 보호만 바라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여기에 김천지원 결정문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뿐 아니라 평등의 원칙도 위헌의 이유로 제시한다. 장승혁 판사는 이 결정문에서 “이 사건 법률 조항이 위헌으로 해석되는 이유”로 “이 사건 법률 조항은 일반 병역기피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에서 병역거부에 이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일반 병역기피자들과 같이 취급하여 처벌하므로,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잘못된 법 적용이란 것이다. 나아가 결정문에는 “대체복무제가 부정되고 형사처벌만이 강요된다면… 그들의 대체복무를 통한 국방의 의무 이행도 바랄 수 없게 되므로… 이 사건 법률 조항은 국가 안전보장에도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헌재 합헌 논리 허점 조목조목 지적하기도

대전지법 천안지원 결정문은 2004년 헌재의 합헌 결정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결정문은 당시 헌재가 합헌의 근거로 다룬 헌법 37조 2항의 기본권 제한 조항을 언급하며 이 조항이 “법률에 의한 기본권 제한의 근거를 규정함과 동시에 법률에 의한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명시적으로 규율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대체복무라는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사이에 조화 방법이 있음에도 처벌만을 규정한 법률은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넘어서는 위헌적 조항이란 것이다. 이렇게 위헌제청 결정문은 의견 제시를 넘어 위헌 결정문처럼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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