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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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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수정안 ‘분란의 판도라 상자’

기업에 대규모 토지 헐값 공급 방침에 다른 지자체 등 반발…
정부는 ‘교육과학’, 기업은 ‘국제과학비즈니스’ 인식 차이도
등록 2010-01-21 16:31 수정 2020-05-03 04:25

1981년 서울올림픽 유치전 때 현대 정주영 회장, 대우 김우중 회장, 동아 최원석 회장, 한진 조중훈 회장, 한양주택 배종렬 회장 등은 자사 직원까지 차출해 뛰고 또 뛰었다. 왜 그랬을까? 정희진 동아대 교수(스포츠과학부)는 “공교롭게도 이들은 건설사를 끼고 있는 재벌이었다. 1980년대 들어 중동 경기가 쇠퇴하는 상황에서 올림픽 유치는 건설 재벌의 구세주였다. 군사정권은 올림픽 유치에 나섰던 재벌들에 사회간접자본 사업, 재개발, 아파트 건설 등 ‘올림픽 특수’를 듬뿍 안겨줬다”고 말했다. 서울 상계동·목동·신정동의 거대한 아파트단지는 모두 이때 만들어졌다. 평당 2천원 하는 땅에 아파트를 지어 평당 200만원에 팔았으니 1천 배 장사였다. 정 교수는 “당시 철거민들의 끈질긴 시위와 투쟁은 ‘도시빈민운동’의 등장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올림픽이 우리 사회 도시빈민운동의 씨앗이 됐다는 얘기다.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싸고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반발하는 등 전국이 들끓고 있다. 지난 1월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싸고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반발하는 등 전국이 들끓고 있다. 지난 1월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정치와 재벌의 복잡한 함수관계, 그리고 전국 각 지역의 거센 반발로 2010년 벽두의 지형도는 30년 전의 풍경과 묘하게 오버랩되고 있다. 우선, 세종시에 입주하는 대기업들은 땅값과 세금 양쪽에서 파격적인 특혜를 받게 됐다. ‘세종시 특수’라고 할 만하다. 사실 세종시 수정안이 처음 거론될 때만 해도 세종시행 기업이 거의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국무총리실 세종시기획단 쪽에서 “더 이상 국내 기업에 크게 내줄 세종시 부지는 별로 없다”고 말할 정도로 양상이 뒤바뀌었다. 물론 그 이유는 입주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혜택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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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들이 88 올림픽 유치에 목맸던 이유

세종시에 입주하는 기업에는 부지 조성원가(3.3㎡당 약 227만원·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밝힌 세종시 산업용지의 조성 예정가격)의 6분의 1에 불과한 3.3㎡당 36만∼40만원에 원형지가 공급된다. 이와 관련해 국무총리실은 “기업이 원형지로 공급받은 뒤 터를 고르는 조성 작업이 필요한데 이 비용이 평당 약 38만원 정도 된다”며 “그러면 총 매입 비용은 평당 78만∼80만원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산업단지에서 공급하는 가격과 유사한 수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원형지 가격과 최종 조성지 가격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원형지는 미개발 상태인 토지를 일컫는다. 그러나 세종시의 원형지는 맨땅이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간선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초적 기반시설을 이미 어느 정도 갖춰놓았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 산업입지정책과 쪽은 “아마도 세종시의 맨땅 값은 평당 20만원 정도 되고, 여기에 기반시설 비용이 어느 정도 들어가 원형지 가격이 평당 40만원 정도로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업이 이 원형지를 받은 뒤 조성하는 데 들여야 할 추가 비용은 총리실이 주장하는 평당 38만원보다 훨씬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적정 이윤을 포기한 채 기업에게 원형지 형태로 땅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도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이용섭 의원(민주당)은 “삼성(165만㎡)·한화(60만㎡)·웅진(66만㎡) 등 50만㎡ 이상 투자하는 3개 대기업에 3.3㎡당 36만∼40만원에 땅을 제공하면 부지 조성 예정가격에 견줘볼 때 총 1조6500억원의 대규모 특혜가 제공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특히 부지 50만㎡ 이상 입주하는 기업에만 원형지 형태로 3.3㎡당 36만∼40만원 선에 제공하기로 했다. 파격적인 혜택을 누리려면 50만㎡ 이상을 구입해야 한다는 최소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총 60만㎡에 투자하는 한화그룹 쪽은 “부지 분양가와 세제 등 세종시에서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볼 때 충분한 투자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정부가 부지 면적에 대한 최소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에 거기에 어느 정도 맞춰 부지를 채울 수 있는 정도로 세종시에 대한 투자 규모를 확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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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의원 “3개 대기업에 1조6500억원 혜택”

더욱 흥미로운 건 삼성의 경우 정부와 세종시 입주 협의를 할 때 부지 규모가 50만 평 이상은 돼야 한다는 조건을 먼저 내걸었다는 사실이다. 그러자 정부는 이를 받아주되 “최소한 50만㎡ 이상은 구입해야 한다”는 조건을 못박았다. 사실 경쟁이 격화하고 기술 수준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투자 리스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들은 섣불리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소수의 몇 개 기업만이라도 동원해 세종시를 ‘경제도시’로 만들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50만㎡ 이상이란 조건이 붙은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몇몇 다른 세종시 입주 예정 기업들과 달리 삼성은 세종시 수정이라는 정치적 사건에 ‘동원’됐다기보다는 오히려 세종시를 ‘온갖 특혜’가 주어지는 기업도시로 수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애쓴 것으로 보인다.

세종시를 바라보는 정부와 삼성의 관점은 꽤 차이가 있다. 국무총리실은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를 표방하는 반면, 삼성은 세종시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제도시는 적정 인구 등의 측면에서 자족기능이 강화된 일반 도시를 일컫는 반면, 비즈니스벨트는 연관 기업들이 밀집한 산업단지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김순택 삼성전자 부회장(신사업추진단)은 “세종시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조성된다는 전제 아래 투자 타당성을 검토해 결정했다”며 “특히 법인세·지방세 면제 등으로 신사업의 투자 리스크가 경감되고 투자 회수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 측과 협의한 끝에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요구사항들을 정부 쪽에 내밀고 협의를 거쳤음을 내비친 것이다. 김순택 부회장은 특히 “만약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전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굳이 세종시에 우리가 갈 필요가 없다고 본다. 새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세종시 입주에 대한 특혜 제공 등이 무산되면 즉각 세종시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삼성이 ‘투자’를 무기로 세종시 수정안의 그림을 ‘기업도시’로 짠 뒤, 이를 관철시킨 것일까? 정부의 세종시 발전방안을 보면 세종시 총 272만 평 가운데 100만 평을 따로 떼 ‘과학비즈니스벨트’로 구분해놓고 있다.

세종시 입주 예정 기업

세종시 입주 예정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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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외국 투자자 SSF 정체는 베일 속

삼성 쪽이 주장하는 국제적인 과학비즈니스벨트와 관련해 세종시에 입주하는 유일한 외국 업체인 SSF가 눈길을 끈다. SSF는 오스트리아의 태양광제품 업체로, 1380억원을 세종시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기업의 홈페이지는 폐쇄됐고, 기업 정보는 온통 안개에 싸여 있다. 정부 세종시기획단은 “SSF에 대한 내용을 아직은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기업 유치는 ‘국제적인’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전제가 충족돼야 세종시에 간다는 삼성 쪽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반면 흥미롭게도 삼성과 달리 한화와 웅진그룹은 세종시 입주 관련 발표자료에서 자신들의 입주가 세종시 인구 유입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켰다. 자기 기업이 입주함에 따라, 한화는 7300여 명, 웅진은 8천여 명을 유입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내놓은 ‘경제도시’로서의 세종시 콘셉트에 맞게 도시 인구 유입 부분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삼성도 고용과 인구 유입 효과에 기여하는 차원에서 세종시에 컨택센터(콜센터·투자비 1500억원, 고용인력 4천여 명)를 설립하기로 했다. 교육·과학 중심의 경제도시에 느닷없이 콜센터가 들어서는 이유다.

세종시 수정안의 불똥은 전국 각 지역으로 튀고 있다. 부산시는 “정부의 세종시 특혜성 지원 대책이 다른 지역의 발전 동력을 떨어뜨리고, 지역 균형발전을 왜곡하게 될 것“이라며 “다른 지역의 역차별을 불러올 경우 대대적인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대구·광주·수원·제주시 등도 “지나친 세종시 특혜가 다른 지역 발전에 블랙홀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들끓고 있다. ‘세종과 똑같은 특혜를 달라’는 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세종시에 주는 땅값·세제 혜택이 지방의 혁신도시와 국가산업단지에도 그대로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올림픽 당시 도시빈민운동이 확산됐던 것처럼, 바야흐로 전국 각 지역이 ‘세종시 블랙홀’을 우려하며 날카롭게 반발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국면이 펼쳐지자 세종시 수정안 발표 바로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은 즉각 “모든 혁신·기업 도시도 원형지 형태로 부지를 공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세종시 수정안이 몇몇 재벌기업과의 협의 속에서 급조된 것처럼 이 대통령의 발언 역시 현행 제도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나온 것이다. 사실 기업에 원형지를 공급하는 건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 지자체 투자유치단 관계자는 “현행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산지법)에 따르면 원형지 형태로 땅을 공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다만 몇만 평 안 되는 땅은 원형지로 받아서 개발해봤자 큰 이득이 없기 때문에 기업 스스로 별로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련 법·제도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혼돈 상태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급조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타 부처가 추진해오던 사업도 곤란한 처지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싸고 지역뿐 아니라 중앙정부 간에도 마찰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전북 익산시청 쪽은 “농식품부가 추진하는 국가식품클러스터 구축사업을 우리가 추진하면서 식품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투자설명회를 해오고 있었는데, 롯데가 세종시로 가기로 하면서 차질을 빚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도 “세종시 발표로 우리가 추진해온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사업이 곤란한 상황에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다.



세종시 입주 선언 기업들
한화·웅진은 연고지! 삼성·롯데는 보은성?


세종시에 입주하겠다고 선언한 삼성·한화·웅진·롯데 등 4개 국내 기업을 둘러싸고 정치적 빅딜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의 경우는 지난 연말 이건희 전 회장 특별사면과 세종시 입주가 서로 관련돼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김순택 부회장(신사업추진단장)은 기자회견에서 “회장님 사면은 오비이락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대기업이 대규모 사업을 즉흥적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건희 전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국제박람회(CES)장에서 ‘삼성의 미래 신수종 사업 준비는 잘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턱도 없다. 아직 멀었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의 세종시 입주가 신수종 사업과 관련해 치밀한 사전 계획 아래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화는 정치권에서 세종시 수정안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 세종시행을 선택할 기업 명단에 일찌감치 오르내렸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세종시 수정안이 나올 때 우리가 먼저 정부 쪽과 접촉해 (한화개발이) 대덕밸리 등 개발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으므로 우리가 한번 사업에 뛰어들어보면 어떨지를 타진했으나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이미 맡고 있어서 여의치 않게 됐다”며 “늘 관심을 갖고 세종시 수정안을 지켜보던 차에 정부로부터 오퍼(제안)가 왔고, 정부가 제시한 최종 인센티브를 검토한 뒤 입주 규모를 확정했다”고 말했다.
총 66만㎡에 입주하는 웅진은 몇 가지 사업확대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이 와중에 세종시 수정안이 등장하면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진다. 웅진그룹 쪽은 “공주를 중심으로 그룹의 여러 사업장이 있기 때문에 세종시는 지리적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에너지공장 설립·증설 계획을 갖고 있던 차에 세종시 수정안이 갑자기 등장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안을 짜고 있던 도중에 정부로부터 투자 의향 제안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롯데다. 롯데는 세종시 6만6천㎡에 1천억원 투자 규모로 롯데식품연구소를 지을 예정이다. 투자액이 크지 않다. 롯데그룹 쪽은 “정부가 발표한 안을 보고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해 우리가 투자 규모를 작성해 정부 쪽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롯데는 서울에 중앙식품연구소를 갖고 있다. 세종시에 지을 연구소는 단지 이 중앙연구소를 확대 개편하는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잠실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를 받았고, 맥주사업 신규 진출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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