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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정부가 사실상 낙태 권유


찬반 논쟁의 다양한 스펙트럼…종교계 등 ‘생명 존중’ vs 여성계의 ‘여성 자기결정권’
등록 2009-12-10 15:10 수정 2020-05-03 04:25

낙태 찬반 논쟁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오른쪽이 낙태 금지, 왼쪽이 낙태 허용이라 할 때 오른쪽의 구호는 ‘생명 존중’, 왼쪽의 구호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다.

지난 11월1일 ‘진오비’ 소속 산부인과 의사들이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대한의사협회에 모여 ‘낙태 근절 선포식’을 열었다. 이들은 내년부터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을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진오비 제공

지난 11월1일 ‘진오비’ 소속 산부인과 의사들이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대한의사협회에 모여 ‘낙태 근절 선포식’을 열었다. 이들은 내년부터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을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진오비 제공

전통적으로 가장 오른쪽에는 ‘교리에 의한 낙태 금지’를 주장해온 천주교 등 종교계가 선다. 여기에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진오비), 낙태반대운동연합 등 낙태 근절 운동 단체가 가세한다. 진오비는 성폭행에 의한 임신, 미성년 임신, 장애아 임신 등 거의 모든 경우에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오비는 낙태 시술 경험이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직접 현실을 폭로함으로써 낙태 논란의 불을 댕겼다. 최안나 대변인은 “1970년대에는 둘만 낳자, 1980년대에는 하나만 낳자며 ‘월경조절술’이란 알 수 없는 이름으로 정부가 사실상 낙태를 권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낙태 근절을 위한 10대 과제로 △현행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 폐지 △낙태 근절 특별법 제정 △미혼 양육모 경제적 지원 증대 △불법 낙태 단속 및 처벌 등을 꼽았다.

“임신 종결은 통합적인 고찰 끝의 결론”

가장 왼쪽에는 ‘여성의 낙태권’을 옹호하는 여성계가 자리한다. 기본적으로 임신과 낙태,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이는 여성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는 논리다.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임신 종결을 결정하는 것은 태어날 아이와 여성이 감내하는 사회적 삶에 대한 통합적인 고찰 끝에 내리는 책임 있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갖추지 않고 불법 낙태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진보단체도 여성계와 함께 왼쪽에 자리한다. 일찍이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자인 빌헬름 라이히는 에서 “사회는 어머니에게 그녀의 의지에 반해 혹은 지독한 곤궁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낳도록 요구할 권리를 전혀 갖지 못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월26일 여성·진보단체들은 미래기획위의 낙태 방지 정책과 진오비의 낙태 근절 운동을 비판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법과 과학은 양 극단 사이에서 또 다른 논쟁을 한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학적 정신장애·신체질환이나 전염성 질환을 앓는 경우, 혈족·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해칠 경우, 성폭행에 의해 임신한 경우 등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법학자들은 형법의 처벌 규정은 처벌 받는 이가 거의 없어 사문화됐다고 지적한다. 이인영 홍익대 교수(법학)는 “입법자는 엄격한 낙태 금지 규정을 입법하고 흡족해하고 있으며, 이를 집행하는 사법 기관은 범죄로 처벌하기에 너무 방대하여 방관하고, 낙태를 원하는 여성과 의료진들은 묵인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태우 법무부 검찰국 형사법제과 검사는 “마구잡이로 산부인과를 압수수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사회·경제적 원인으로 아기를 낳지 말자는 분위기가 만연한 만큼 저출산과 낙태 문제는 법 문제가 아닌 돈 문제”라고 말했다.

과학계에서는 태아를 어느 시점부터 ‘생명’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가 화두다. 낙태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서도 수정란이 ‘생명으로 인정되는 시점’이 중요한 문제다. 현재 인간 배아 복제 실험은 수정 뒤 14일 이내에 허용하고 있다. 반면 모자보건법은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낙태 문제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의 공화당은 낙태 금지를, 진보 성향의 민주당은 낙태 허용을 주장해왔다. 반면 한국 정부의 낙태 정책은 지난 50여 년간 출산 정책의 변동에 따라 좌우를 오갔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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