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의 책이 잇달아 출간된 1970년대,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에서 “리영희는 ‘은인’ 이거나 ‘원흉’”이었다고 했다. 리영희 선생의 글을 읽고 난 학생들은 자신과 가족의 안전은 개의치 않은 채 ‘빅 브라더’가 금지한 말과 행동을 악착같이 하려고 들었다. 이런 학생들의 변화가 바람직하다고 본 사람들은 리영희 선생을 ‘의식화의 은인’이라 불렀다. 반면 병영체제 수호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그를 ‘의식화의 원흉’이라 공격했다.
그의 신간이 나오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따끈따끈한 책장을 넘겼을 70~80년대 학번을 넘어 90년대 학번도 지나 2000년대 학번도 끝물이다. 리영희 선생 역시 나이가 들어 팔순을 맞았다. 아직도 리영희는 우리의 스승인가? 2009년, 우리는 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세대와 분야를 넘나들며 8인에게 ‘리영희’를 물었다. 편집자
“그의 존재 아는 것 자체가 젊은이에 도움”
홍세화 기획위원
리영희 선생에겐 언론인이나 대학교수라는 직함보다 ’지식인’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1966년 서울대 공대에 들어갔다가 1969년 서울대 문리대에 다시 들어갔는데, 1970년대 초에는 리영희 선생의 글을 많이 읽었다. 당시 그는 우리 세대를 포함해 그보다 조금 어린 세대에게 인식의 획기적인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1970년은 공장 노동자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가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분신한 해다. 그의 죽음은 많은 대학생들을 노동운동으로 이끌었다. 당시 감성적인 측면이 강했는데 그 분위기에서 리영희 선생은 이성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리영희 선생은 라고 썼지만 내겐 삶의 전환을 불러일으킨 논리였다. 언론인으로서 리영희 선생은 진실 보도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젊은 기자들이 리영희 선생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1990년대 이후로는 그를 모르는 학생이 많다. 인문사회과학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리영희 선생의 존재 자체를 아는 것부터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것이다. 그의 책 와 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항상 데이터로 근거 제시하는 자세 배워”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리영희 선생이 예전에 “육체노동자로서의 삶을 살 계기가 있었는데 결국 탈락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육체노동에서 탈락했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큰 귀감이라 생각한다. 노동운동과 관련해 선생이 관범위하게 활동하진 않았지만 운동에 뛰어든 많은 이들에게 ‘스승’이다. 난 197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를 읽었다. 글자 그대로 ‘전환’이었다. 청년 시절, 그의 글을 읽고 20여 년간 길들여졌던 제도권 교육의 잘못된 점에 눈을 떴다. 그의 주장은 항상 어떤 데이터에 근거한다. 미국 국방성의 기밀해제 자료 등 새롭고 중요한 자료를 근거로 삼는다. 리영희 선생은 ‘기자가 쓰는 모든 글에는 정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그 자세를 따르고자 한다.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노동자가 고통스럽다’ ’신자유주의가 나쁘다’가 아니라 근거 있는 자료를 제시하려고 한다. 젊은 세대에게서 ‘큰 스승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지난 스승의 날, 한 해고 노동자가 ‘존경할 만한 스승이 없는 시대에 당신은 내게 큰 스승이었소’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리영희 선생을 닮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면서 노력한 삶의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성으로 저항한 유일한 사람”안병욱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리영희 선생이 (외국) 언론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읽고 개인을 성장시켰기에, 우리나라 안에서 폭압정치에 저항하는 일이 가능했다. 다른 이들이 몸으로 독재정권에 저항했다면 이분은 지성으로 저항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리영희 선생은 해방, 6·25, 4·19, 5·16, 10·26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모두 현장에서 목격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목격하고 공부한 뒤 1970~80년대에 큰 역할을 한 자유주의적 지성인이다.
“외국어를 왜 배우는지 알려준 스승”오길영 충남대 영문과 교수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84년 즈음엔 ‘금서’가 많이 풀려 리영희 선생의 책을 읽고 토론하기가 좀더 자유로웠다. 학생들끼리 리영희 선생의 책과 관련한 세미나도 많이 열었다. 영문학도로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을 섭렵하는 리영희 선생의 언어능력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지식인에게 언어란 책을 읽고 쓰기 위한 도구다. 리영희 선생은 문학 작품이나 인문사회과학 도서를 읽으면서 외국어 공부를 했다. 외국어를 어떻게 공부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공부하는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외국어는 세계를 보는 하나의 창’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언어를 더 배우면 하나의 창을 더 갖게 되는 셈이다. 그는 “만일 여러 언어를 알지 못했다면 읽을 수 있는 자료가 제한됐을 것이고 그럴수록 일면적 시각, 특히 미국적 시각에 갇힐 우려가 크다”고 했다. 외국어 능력을 통해 수집한 자료로 우리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여는 매우 중요한 일을 리영희 선생은 해냈다. 지금은 영어 물신주의가 판을 친다. ’왜 배우는가’는 사라져버렸다. 외국어를 공부하고 이용하는 정신을 우리는 리영희 선생에게 배워야 한다.
이명원 문학평론가
리영희 선생이 단순히 기자로서의 글쓰기를 했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저작 작업은 그 심층성에서 다르다. 심층성은 ‘사실’에 대한 크나큰 애착에서 발현된다. 리영희 선생은 글을 쓸 때 사실을 꼼꼼히 기록한다. 자료를 읽고 판단하는 능력이나 자료 이면의 사실을 종합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가 내놓은 저작들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춰 쓴 내용이지만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중요하게 읽히고 있다. 이는 인문과학서를 출판하거나 집필하는 사람들이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우리 시대 가장 핵심적인 의제가 무엇인지 파악해 현실 인식을 바탕에 둔 글쓰기를 할 때 인문과학서는 빛을 발한다. 리영희 선생의 글쓰기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라면 파병 논리 깰 자료 제시할 것”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그분이 예전에 내놓은 남북 관계, 한-미 관계에 관한 진단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측면이 많다. 아직 냉전과 반북친미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분이 지적활동을 계속했다면 이라크 문제나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뒤집는 자료를 제시하고,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와 북핵 문제 등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을까 싶다. 리영희 선생은 언론인의 감각과 학자로서 자세를 겸비한 분이다. 그런데 그분은 언론인에 더 가까웠다. 사태의 진실에 접근하는 면에서 그렇다. 사안의 핵심에 있는 허구성을 확 뒤집는 일에 훨씬 더 흥미를 가졌다. 주로 외신 자료를 치밀하게 추적해서 뭔가를 폭로했다. 그분의 열정이나 언어 구사력에서, 후배 중에 그 정도가 누가 있는가. 현실 정치가 갖고 있는 허구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 철저한 자료수집, 팩트에 대한 집요함, 풍부한 외국어 구사력 등을 본받아야 한다.
“아버지 세대의 선생님이 내 운동에 동참하다니…”
한윤형 저자
83년생인 내게 리영희 선생은 아버지 세대의 선생님이다. 우리 할아버지쯤의 연배다. 하지만 최근까지 리영희 선생이 사회적 발언을 계속해왔기에 관심을 가져왔다. 난 2000년께 ‘안티조선’ 운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네티즌 1600명이 모여 신문에 광고를 낸 적이 있다. 그 광고를 보고 리영희 선생께서 “난 인터넷을 안 하니까 몰랐는데 취지가 좋다”면서 자신도 운동에 동참한다는 서명을 팩시밀리로 보내왔다. 아버지 세대의 선생님인데 계속 활동하면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고 가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우리 세대는 70~80년대 학번이 경험한 ‘공통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기반’이 없다. 하다못해 리영희 선생에 대해 함께 토론하기도 힘들다. 그 세대와 우리 세대 사이의 공백이 느껴진다. 우리가 좀더 발전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열심히 살아온 선배들에게 죄송하다.
“마지막까지 귀감이 되는 인물”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흔히 시민사회운동은 ‘현장’에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리영희 선생은 누구보다 현장에 충실했다. 외신부 기자였을 때는 팩시밀리 앞이 현장이었고, 교수일 때는 강단이 현장이었다. 그는 치열하게 자기의 현장을 지켰다. 지식인 중에 열심히 살고 귀감이 되는 분은 여러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마지막까지 사표가 되고 귀감이 되는 분들은 별로 없다. 리영희 선생의 존재가 귀한 까닭이다. 리영희 선생은 성찰하는 지식인이다. 12월2일 팔순을 맞아 소박한 행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분은 과분하다며 손사레를 친다. 그래서 더 존경스러운 것이다. 늘 ‘지족’을 알기 위해 치열한 이성을 갖고 노력하는 모습이 귀감이 된다. 와 같은 책은 그 시대, 그 상황에 읽었을 때 의미가 크기 때문에 소설처럼 언제나 감동적이기 어렵다. 수정의 필요가 있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대를 관통했던 시대정신이다. 난 스무 살 청년들에게도 우리 사회에 이런 어른이 계시다고 말해주고 싶다. 애민의식, 치열한 노력, 겸손 등은 지금도 유효한 가치이고 그걸 젊은이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이렇게 끝까지 귀감이 되는 분을 잘 모셔서, 착하게 살면 후배들이 잘 모신다는 ‘권선징악’이라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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