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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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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반대론의 끈질긴 담론 조작

수도권 일극 구조 개선이란 목표에는 눈감고 자족성·행정 효율 등 변죽만 요란하게 두드려
등록 2009-11-26 18:18 수정 2020-05-03 04:25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는 심정은 참으로 안타깝다. 원안 추진 불가라는, 사실상 세종시 건설 반대를 부르짖는 목소리는 7년 전 수도이전을 반대하던 그 목소리다. 역사의 시계가 7년 전으로 돌아간 것이 우선 안타깝다. 그러나 진짜 안타까운 것은 수도이전 반대론자들이 ‘권력을 쥔 자들’이 되면서 강한 정치적 톤이 밴, 그래서 호도된 ‘세종시 불가론’을 여러 소통기구를 통해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점이다. 민주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마녀사냥식 담론 조작의 난무는 이 땅에 산다는 사실을 참으로 부끄럽게 만든다.

지난 10월30일 충남 연기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밀마루 전망대’를 찾은 정운찬 총리(왼쪽)와 행정도시 건설을 기다리는 충남 연기군 일대의 모습. (왼쪽부터) <한겨레21> 박승화·한겨레 김경욱 기자

지난 10월30일 충남 연기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밀마루 전망대’를 찾은 정운찬 총리(왼쪽)와 행정도시 건설을 기다리는 충남 연기군 일대의 모습. (왼쪽부터) <한겨레21> 박승화·한겨레 김경욱 기자

청와대와 교감한 것으로 알려진 정운찬 국무총리의 ‘자족성 결여 및 행정 비효율성’ 발언은 세종시 관련 담론 조작의 대표적인 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예가 아니라 7년 전 반대론자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재생해내는 주술이 되었다. 그의 발언 뒤엔 권력이 있고, 또한 ‘자족성 결여’와 같은 사실 아닌 사실을 정보로 제공한 고약한 관료들이 있다. 그 뒤로 더 들어가면, 참여정부 당시 세종시와 관련한 수많은 용역 과제를 수행했던 전문가들의 ‘모르쇠’가 있다.

기본도 안 갖춘 도시? 현실은 정반대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잦아든 지난 4∼5년 동안,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국토·도시계획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원돼 거친 정치 공약의 ‘세종시’를 합리적인 국토정책의 ‘세종시’로 다듬어놓았다. 원안에 문제가 없지 않지만,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듯 ‘기본조차 안 갖춘 도시’로 세종시가 계획돼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21세기 한국을 선도할 세종시의 조건에 대해선 수많은 개별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검토됐고 또한 계획에 반영돼 있다. 선진국 경험을 참조해 도시 건설 기간을 30여 년으로 했고, 도시 자족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 목표 인구를 50만 명으로 설정했다. 또한 기존 신도시 건설의 법·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절차법인 ‘세종시건설법’과 함께 실체법인 ‘세종시지위법’도 제정된다. 세계 첨단도시가 되도록 1.8인당 1인의 고용인구를 창출하되 대부분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도소매업, 공공행정, 정보산업, 기타서비스업(업무 포함), 건강관리 및 사회보조업, 교육 등 첨단 업종에서 일하도록 돼 있다. 논란이 되는 자족 기능 용지도 많이 필요치 않지만, 분당의 3배 정도로 잡아놓았다. 수도권의 대응 거점이 되도록 세종시를 인근 9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묶어 400만 명의 광역권으로 가꾸도록 세종시건설법은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 건설 방식들은 우리나라 도시계획사에서 대부분 처음으로 도입되는 것이다. 세종시를 보통의 신도시로 만드는 것을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구슬을 꿸 일만 남았는데 구슬이 없다고 외쳐댄다. 세종시 건설의 목표와 수단은 명확하다. 수도권 일극의 국토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중추 거점 기능을 형성하는 것이 세종시 건설의 목표라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국가기관이 가지는 정책 수단과 기능이다. 국가 중추(행정)기관의 이전은 세종시 건설의 ‘목표-수단 관계’를 작동시키는 최소 조건이다. 이렇듯 세종시가 구현해야 할 것은 ‘국토의 새로운 중추 거점 기능’을 형성해내는 것으로, 자족성은 그 부분 요소에 불과하다. 또한 국가 중추 기능으로 조성되는 세종시는 민간부문의 자본력이나 기술력을 이용해 조성되는 기존의 자족 신도시 모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러한 내용이 다 갖추어져 있음에도 정부는 자족성이 없고, 그래서 대안으로 기업도시나 과학교육도시로 만들겠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이는 현 집권세력이 세종시의 성격과 계획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이든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만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집권세력의 무지 또는 왜곡

자족성 부족만 가지고는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어 그런지, 정부는 ‘정부부처가 분리되면 행정의 비효율성이 크게 발생한다’는 주장도 함께 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서울의 집중 완화를 위해 서울에 몰려 있는 국가 중추기관들을 지방으로 옮겨 국토의 균형을 실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실제 1964∼97년 정부는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 및 공공기관의 이전계획을 14차례나 수립했고, 1973년·80년·90년 세 차례에 걸쳐 59개 기관들을 옮겼다. 이렇게 해서 서울 광화문, 경기 과천, 대전 등지로 행정부처가 나눠져 있지만, 국정 운영에 어떠한 심각한 장애나 비효율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중앙집권하에서 오랫동안 서울 중심의 업무처리에 익숙해진 현실에서 세종시로의 부처 이전은 과도기적으로 혼란과 비효율성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지리적 이격으로 공무원들의 업무 처리에 불편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행정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행정서비스의 질을 낮추며 국가의 위기대응력을 훼손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결코 될 수 없다. 120km의 거리는 교통통신망·업무처리방식·권력구조의 개선을 통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 세종시건설법 제16조에서는 행정부처의 이전계획 수립 때 이를 실제 강구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 중앙집권하에서 지리적 접근성은 권력 접근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서울에 몰려 있음으로써 누렸던 업무 처리의 편리함은 중앙집권 체제가 구조적으로 발생시키는 국정 운영의 비효율성의 다른 표현이다.

지금은 지리적 접근성 하나로 행정 효율성을 말하는 시대가 아니다. 조직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도, 오늘날은 집중이나 위계보다 분산이나 네트워크가 더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세종시 건설이 한국의 중앙집권 시스템을 집중과 위계에서 분산과 네트워크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이는 거부해선 안 될 시대적 과제다. 더욱이 서울에서 옮겨온 국가 중추기능을 이용해 국토의 새로운 대안 거점을 만드는 ‘세종시 건설의 목적’이 달성된다면, 행정 효율성을 위해 권력기구가 죄다 서울에 있을 명분은 더욱 희박해진다.

21세기 한국 발전의 공간 전략

세종시 건설의 진실은 이렇게 자명하다. 세종시 건설은 단순히 ‘또 하나의 신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한국 발전 시스템을 공간적으로 이끌 새로운 중추 기능(산업·기술·노동력·정보·문화·행정)을 국토 중심부에 구축하는 종합 공간적 전략이다. 얄팍한 자족성이나 행정 효율성의 문제로 세종시 건설의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 정부는 손으로 해를 가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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