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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바다’가 된 서해

베를린장벽 붕괴 20돌에 3차 서해교전…‘유일한 냉전의 섬 한반도’ 재확인
등록 2009-11-20 16:30 수정 2020-05-03 04:25
‘앞으론 어쩌지?’ 서해 대청도 해역에서 남북 해군이 교전을 벌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11월10일 오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시민들이 관련 방송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 하사헌

‘앞으론 어쩌지?’ 서해 대청도 해역에서 남북 해군이 교전을 벌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11월10일 오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시민들이 관련 방송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 하사헌

“셋~, 둘~, 하나~!”

11월9일 저녁 8시32분께(현지시각) 가는 빗줄기가 날리는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선 축제의 열기가 최고조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쓴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이 손을 움직이자, 꼭 20년 전 ‘분단의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둔 1천 개의 모형 장벽이 도미노가 돼 넘어가기 시작했다. 환호성이 광장을 휘감았다. 화려한 불꽃놀이 속에 전세계에서 몰려온 20만 인파가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지구촌에 전해졌다. 한국시각 11월10일 새벽 4시32분께다.

그로부터 불과 7시간 뒤인 이날 오전 11시32분께(한국시각), 한반도의 서쪽 바다에선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합동참모본부의 발표를 보면, 그보다 5분여 전 인천 옹진군 대청도 동쪽 6.3마일 지점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이 우리 군의 경고통신을 무시한 채 남하를 계속하고 있었다. “변침(방향을 바꿈)하지 않으면 사격하겠다.” 마지막 경고통신을 한 2함대사 고속정 참수리 325호는 이윽고 11시36분께 경고사격을 했다. 서해에 총성이 울려퍼졌다.

2분 동안 함포·벌컨포 4700여 발 퍼부어

북한 경비정도 그냥 있지 않았다. 곧바로 우리 함정을 겨냥해 대응사격을 퍼부었다. 남북은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해댔다. 합참은 북쪽 해군이 쏜 총탄이 50여 발, 남쪽 해군이 쏜 함포와 벌컨포는 모두 4700여 발에 이른다고 밝혔다. 11시40분께 연기에 휩싸인 북쪽 경비정이 NLL을 넘어 북상을 하면서 상황은 종료됐다. 세계 각국의 언론이 실시간으로 ‘세 번째 서해교전’ 상황을 전세계로 타전했다. 한반도가 ‘유일한 냉전의 섬’임을 새삼 일깨웠다.

남과 북이 서해에서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14분여 충돌한 1999년 6월엔 북쪽의 상처가 컸고, 18분여 싸운 2002년 6월엔 남쪽의 상처가 컸다. 이번에는 총성이 울린 시간이 2분 남짓에 그쳤고, 다행히 남쪽에는 사상자가 없었다. “경비정이 반파된 것으로 보인다”는 군 당국의 추정 발표만 나왔을 뿐, 북쪽의 인명 피해 규모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승전’을 축하해야 할까? 서해는 다시 얼어붙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서해는 ‘이념화’했다. 앞선 정부처럼 ‘북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노라고 공언한 정부다. ‘도발하면 응징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다짐을 수시로 내놨다. 그 최전선이 서해였다.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월28일 “북한이 먼저 우리 함정 또는 초소나 민간 선박 등에 대해 타격해오면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즉각 대응하라”며 “반드시 이겨 현장에서 상황을 종결하라”고 전군에 지시한 바 있다. 앞서 지난 2월20일엔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에 출석해 “북한이 NLL에서 장사정포나 미사일 등으로 우리 함정을 공격해올 경우, 발사 지점을 공격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해의 ‘휘발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셈이다.

“경고사격도 사격이다. 상대편에선 위협 행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지난 2002년 2차 서해교전 이후 교전수칙을 간소화하면서 서해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며 “여기에 급박한 상황에 처한 현장 지휘관에게 교전 여부를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사소한 대치가 교전 사태로 치닫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황해도 일대 서해 쪽 섬과 바닷가에 사정거리 12km와 27km급 해안포와 역시 사정거리 27km급 지상곡사포 등을 배치해놓고 있다. 작은 다툼이 큰 분쟁으로 휘몰아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서해는 살얼음판이다.

간소화된 교전수칙이 서해안 긴장 키워

한국전쟁을 ‘잠시 중단’시킨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엔 해상군사분계선 관련 조항이 없다.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의 NLL 월경은 무시로 이뤄진다. 지난 6월4일 오후에도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단속하던 북 경비정이 연평도 인근 해상 NLL을 넘어와 51분 동안 머물다가 돌아갔다. 남과 북이 지난 2007년 10월4일 정상 간 공동선언을 통해 서해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설정에 합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앞으로 북 함정이 NLL을 넘어올 때마다 교전을 벌일 것이냐고 (정부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정녕 그럴 셈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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