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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그까이거 대~충”

당·정·청 요직에 노동전문가 전무…대선 때부터 무관심 MB 정부의 ‘오래된 고집’
등록 2009-11-13 14:52 수정 2020-05-03 04:25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과 관련해 최근 몇 가지 눈여겨볼 만한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첫째, 지난 10월4일 벌어진 이른바 ‘청와대 ㅇ비서관 활극 사건’이다.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 소속 노동담당 비서관이 경제금융비서관실을 찾아 고함을 치는 등 행패를 부렸는데, 청와대 내부의 경제 파트와 노동 파트 간 대립이 발단이었다. 청와대 경제비서관들이 노동 파트 쪽을 배제한 채 대통령에게 노사관계 업무까지 독단적으로 보고하면서 두 팀 간에 쌓여왔던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 온 ‘노사민정대타협을 위한 비상대책회의’ 위원들. 왼쪽부터 이수영 경총회장, 이 대통령,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이세중 비상대책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 온 ‘노사민정대타협을 위한 비상대책회의’ 위원들. 왼쪽부터 이수영 경총회장, 이 대통령,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이세중 비상대책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활극 사건 배경엔 노동 파트 배제가

둘째, 지난 10월8일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8월께 기획재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경제단체 책임자와 관료들에게 ‘모든 노동개혁 문제는 노동부나 노사정위원회가 아니라 우리가 맡아서 주도할 테니 거스르지 말 것’을 주문했다”고 폭로했다.

셋째, 국책연구기관으로 노동정책을 연구·개발하는 한국노동연구원 박기성 원장이 지난 9월 국회에서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야 한다”고 발언해 큰 파장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노동팀 안에서 그 누구도 이 발언을 둘러싸고 어떠한 공식적인 언급도 않고 있다. ‘없던 일’로 조용히 가라앉고 있는 중이다.

넷째, 노동부는 최근 현재 1팀(공공노사관계팀)인 공공부문 노사관계 대응 조직을 대거 보강해 1국(공공노사관계국)2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새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어떤 틀도 구상도 없고, 오직 조직과 인력을 늘려 노동문제에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쪽은 노동 관련 공약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없다. 이른바 ‘747 경제공약’(집권 기간 연평균 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 달성)에도 노사관계 구상은 전혀 없었다. 집권 중반기로 들어서고 있지만, 지금까지 청와대·한나라당·정부 어느 쪽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은 이것이다’라고 명쾌하게 말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그 흔한 ‘참여·협력적 노사관계’니 하는 말도 없고 노사관계 로드맵도 없다. 단지 ‘선진화’란 이름 속에 노동도 선진화돼야 할 그 무엇으로만 설정돼 있을 뿐이다.

노동에 대한 철저한 외면이자, 푸대접을 넘어 무대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정·청에서 노동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인물들을 보자.

한나라당 정책위원회에서 환경·노동·보건복지 정책을 협의하는 기구는 제5정조위원회다. 제5정조위원장은 이주호·안홍준 의원에 이어 현재 신상진 의원이 맡고 있다. 이 의원은 교육전문가이고, 안 의원과 신 의원은 의사 출신이다. 노동 쪽 전문가는 없다.

청와대 쪽을 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비서실 사회정책수석을 보면, 제1기 청와대 비서실에서 사회정책수석에 임명됐던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가정아동복지학부)와 지난해 6월 임명된 강윤구 순천향대 학장(전 보건복지부 차관) 모두 노동 쪽과 무관한 인물들이다. 진영곤 현 사회정책수석 역시 여성부 차관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양대 노총은 “그동안 사회정책수석을 역임했던 인사들이 하나같이 노동문제에 대한 식견과 경험의 부족으로 노동 현안들이 갈수록 꼬이는데도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사회정책수석이 노동뿐 아니라 복지·환경 등 사회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자리이긴 하지만 노동전문가는 한 번도 기용된 바 없다. 임태희 현 노동부 장관 역시 정통 경제관료(재무부·재정경제부) 출신으로, 실세 장관으로 불리긴 하지만 “임 장관은 노동문제에 관한 한 비전문가”(민주노총)다.

경제·법무 쪽 주도로 노·정 대립 격화

지난해 6월 화물연대 노동자 파업 당시에는 당정회의에 노동담당 당국자가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 이상한 일까지 벌어졌다. 한나라당 안에서 “화물연대 소속 차주들은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이므로 노동 쪽이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규정한 것이다. 올 11월 들어 복수 노조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공공 부문 민영화 등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정부의 갈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갈등을 해결하고 조율할, 중량감 있는 노동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노동이 배제된 채 경제와 법무 쪽이 노동문제를 주도하면서 노·정 대립도 격화하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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