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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전력’ 민주당의 뻔한 선택은?

찬반 대립 속 당론 결정 늑장… 2004년 이라크 파병 때 당 균열·지지층 이탈 ‘상처’
등록 2009-11-12 16:49 수정 2020-05-03 04:25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파병 방안을 발표한 것이 10월30일이었다. 민주당의 입장은 애매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내에) 부정적 기류가 강한 건 사실이나, 정부가 파병을 주장하는 만큼 파병의 배경과 이를 통해 얻을 실익이 뭔지 정부 쪽 입장을 충분히 듣고 당내 의견 수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10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를 방문했다. 유 장관은 이날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만나 아프가니스탄 파병 관련 보고를 한 뒤 협조를 당부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10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를 방문했다. 유 장관은 이날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만나 아프가니스탄 파병 관련 보고를 한 뒤 협조를 당부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진보정당·민주당 개혁파는 즉각 반대

민주당이 정부의 아프간 파병 방침에 대해 신중한 논평을 내놓은 반면, 진보 정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민주노동당은 아프간 전쟁을 ‘미국의 패권 장악을 위한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못박았다. 진보신당 역시 아프간 파병은 미국에 대한 ‘조공 외교’라고 일축했다.

민주당이 파병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자 당내 개혁 그룹인 민주연대 관계자는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우상호) 대변인 논평부터 그래서는 안 된다. 국익을 담보로 명분 없는 전쟁에 우리 젊은 장병을 보내겠다는 건데, 제1야당 대변인의 논평이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 경악스러울 뿐이다.” 민주연대는 11월4일 성명을 통해 “이미 전쟁 상태인 아프간에 일방적으로 파병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취할 행동이 아니다”라며 “민주평화 개혁세력의 중추인 민주당은 즉각 ‘파병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연대가 당 지도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이유가 있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 ‘파병 찬성’ 기류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우세한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찬성’ 주장이 지도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가장 먼저 아프간 파병 찬성 의견을 낸 사람은 참여정부 때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의원이었다. 송 의원은 정부 발표 직후 ‘아프간 재건, 어떻게 참여해야 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아프간을 포함하는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전세계가 바라고 있고, 우리 국익과도 직결되어 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감안할 때 아프간 지원을 위해 우리도 응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파병 논리와 거의 흡사한 내용이었다.

당 지도부의 한 사람인 박주선 최고위원도 비슷한 생각이다. 박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 민간인이 대규모로 파견되면 이들의 신변 안전을 어떻게 도모할지 생각해야 한다”며 찬성 의견을 제시했다.

아프간 파병 문제를 놓고 민주당에서 찬반 양론이 엇갈리자 민주당 외부에서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좌고우면’ ‘두 목소리’ ‘내홍’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당 지도부가 정부의 갑작스런 아프간 파병 발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나라당 가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

최규성 민주연대 공동대표는 과의 전화 통화에서 “(민주당) 의원 개개인의 정치 철학이 다른 만큼 파병에 대한 다양한 생각은 있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이런 다양성이 당내 분란으로 비치지 않도록 하려면 당 지도부가 당론 채택 과정을 빨리 진행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연대가 정부의 아프간 파병안에 대한 당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는 것은 과거 이라크 파병의 교훈과 관계가 있다. 지난 2003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이슈 가운데 하나가 이라크 파병 문제였다. 참여정부는 당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이라크 파병을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 정부는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이라크 파병안을 밀어붙였다.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선택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이 문제로 거의 1년 가까이 극심한 당내 갈등을 겪었다. 당내 중도보수 성향 의원들은 이라크 파병에 찬성했지만 임종인·최재천 의원과 임종석 등 일부 386 출신 의원들은 반대했다. 이라크 파병 동의안은 논란 끝에 결국 2004년 2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 사이 열린우리당의 균열은 심해졌고, 지지층은 이탈했다.

김두수 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는 “참여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통해 정치적 명분은 놓치더라도 대미 외교 등 실리적 차원에서 도움을 얻고자 했지만, 여당이 파병 문제를 놓고 1년 가까이 내홍을 겪으며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었다”며 “열린우리당 지지층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어느 쪽으로든 과감하고 신속한 결정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아프간 파병안에 대한 더 분명한 태도를 주문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어떤 쪽으로든 입장을 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내 구성원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한 것이 주된 이유다. 민주당 관계자는 “아프간 파병안을 놓고 극과 극의 의견이 오가는 것은 진보와 중도, 보수가 모두 혼재된 민주당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이라며 “민주당 의원 80명 가운데 3분의 1은 한나라당으로 옮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시절 이미 아프간에 파병했던 과거도 걸림돌이다. 내부적으로는 반대 기류가 많지만 무턱대고 반대를 내세우기에는 아프간 파병을 주도한 과거가 부담스럽다. ‘여당 시절 아프간 파병을 주도한 정당이 야당이 됐다고 말을 바꾼다’고 하면 내세울 수 있는 논리가 줄어든다.

여권에서도 민주당의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권에는 아프간 파병의 유일한 관건이 야당 동의가 아니라 국민 여론이라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은 “개별적으로 접촉해보면 민주당 의원의 상당수는 ‘신중한 입장’이라는 표현으로 아프간 파병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며 “국민 여론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국회에 파병 동의안이 제출되면 큰 어려움 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정쩡 지도부 ‘권고적 당론’ 채택 유력

민주당은 정부의 아프간 파병안이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되면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 등을 거쳐 당론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찬성과 반대, 어떤 쪽으로 당론을 정해도 부담이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의원 개인의 판단에 맡기는 ‘권고적 당론’ 채택이 유력해 보인다.

이미경 민주당 사무총장은 “정부가 아프간 파병을 너무 갑작스럽게 추진하고 있어서 당 내부적으로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며 “지금 당장은 세종시나 언론관련법 이슈로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은 형편이어서 전체 의원의 의견을 모을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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