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는 과학고와 서울대를 나온 유명 대입 강사였다. 2003년 이후 분필을 돌려 잡았다. ‘사교육→특목고→명문대’로 이어지는 ‘거짓 신화’를 무너뜨리고 있다. 최근 펴낸 (다산에듀 펴냄)에서 그는 ‘탈학원 운동’을 제안했다. △균등하게 교육받을 헌법상 권리를 무력화하고 경제적 능력에 따른 차별을 만든다. △사교육비 지출로 부모의 노후생활 기반이 약화되고 출산율까지 저하돼 국가 경제가 취약해진다. △학생들이 게으르고 의존적인 학습태도와 인성을 갖게 된다. △학생들의 창의성이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말살된다. ‘탈학원 운동’이 절실한 이유로 그가 꼽은 것들이다. 지난 10월22일, 서울 대학로에서 그를 만났다.
= 이름을 바꾸는 건 중요하지 않다. 선발 방식이 중요하다.
= 성적순으로 선발하지 않고 추첨제로 가야 한다. 이번 법안 초안에 있는 추첨선발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느냐, 아니면 변질되느냐가 관건이다.
- 외고가 추첨선발을 하면 사교육을 잠재울 수 있나.
=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그런데 여러 단계의 전형을 거친 뒤 마지막에 추첨하는 방식이면 안 된다. 그건 추첨선발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성적 기준을 최대한 낮추고 추첨만으로 학생을 뽑아야 한다.
- 추첨선발을 통해 외고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건가.
= 등록금을 많이 내야 하므로 경제적 계층에 따라 교육 기회의 차등이 생기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외고 진학을 위한 사교육은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정부와 한나라당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으로 보나.
= 한나라당 내부가 단일하지 않다. 지금은 내부 분파끼리 일종의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 정 의원을 중심으로 한나라당의 한 분파가 규합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별 수능성적 자료를 공개한) 조전혁 의원 같은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결국 정 의원이 내놓은 법안이나마 실현되려면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다만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좌우가 대화를 해야 한다.
- 대화의 여지가 있나.
=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단순히 (비평준화 시절인) 1970년대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보는 건 오판일 수 있다. 보수의 버전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교육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보수 세력 안에) 있다. (진보 세력은)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의 문제를 세밀하게 봐야 한다.
= 그들이 내세우는 ‘공식적’인 명분은 교육 다양성이다. 다양한 교육을 위해 외고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는 수월성 교육(영재를 발굴해 심화교육을 시키는 것)이라는 명분을 더 많이 꼽는다. 이번에 정 의원의 구상이 현실화되지 못한다면 그런 명분에 밀리는 것이다.
- 다양성과 수월성을 교육 제도가 뒷받침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외고 존치론자들의 주장엔 어떤 전제가 깔려 있다. 일반 고교는 다양한 교육이나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없다는 전제다. 그런 교육을 받으려면 특목고로 가야 한다는 식이다. 결국 근본 문제는 다양한 교육,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일반 고교를 바꾸는 데 있다.
- 외고 개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인가.
= 일반 고교의 체제를 개혁하면 외고는 당장 없앨 수 있다. 학점제를 채택하면 된다. 기왕이면 고입 선발 과정을 없애는 차원에서 중·고등학교를 통합해 6년 과정으로 바꾸는 게 좋다.
= 그렇다. 교육 과정에 여러 과목을 개설하고 학생들이 선택해 수강하는 학점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 평가는 절대평가(등수를 매기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A~F 등의 등급을 부여하는 대학식 평가)로 하는 게 좋다. (학교가 직접 개설하지 못한 과목은) 인터넷 강의의 학점을 인정하면 된다. 한 과목을 들으면 인접 과목이나 심화 과정을 스스로 공부하면서 대학 전공도 탐색할 수 있다.
- 다양한 과목이 개설된다고 외고가 없어지겠나.
= 여러 외국어를 섭렵하려는 어학 천재가 있다고 치자. 러시아어를 공부하려 한다. 그런데 전국 수십 개 외고 가운데 러시아어 교사가 있는 학교는 3곳 밖에 없다. 일반고에서 학점제를 도입하면, (학교 강의를 통해) 초급 러시아어를 수강하고, 더 관심이 있다면 다음 학기 때 (인터넷 강의나 다른 학교에 개설된) 러시아어 심화 과정을 들을 수 있다. 현재 외고보다 외국어를 훨씬 다양하게 가르칠 수 있다.
- 수월성 교육은 어떻게 하나.
= 공부 잘하는 학생은 (학점 이수를 빨리 하여) 4~5년 만에 졸업할 수도 있다. 대표적 나라가 핀란드다. 핀란드 고등학교는 (대학처럼) 학점제다. 필수과목 45학점, 선택과목 30학점을 들으면 졸업한다. 과학고 같은 곳은 일종의 위탁 교육기관으로 만들 수 있다. 탐구력이 강한 학생은 교사 추천을 받아 과학고의 단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그 학점을 인정받는 방식이 가능하다.
= 학생들의 시간표가 대학생과 비슷한 방식이 될테니, 교실이 더 필요하고 공강 시간을 보낼 장소도 필요하다. 따라서 ‘건설’을 해야 하는데, 그건 현 정부의 특기다. 학교를 많이 지으면 건설 경기도 부양할 수 있지 않겠나. 4대강 사업의 일부만 투자하면 된다. 게다가 그런 투자는 두고두고 요긴하게 쓰이지 않겠는가.
= 단기적으로는 시간강사를 적극 활용하되 장기적으로 정규직화하면 된다. 학원 강사 등도 이를 통해 수용할 수 있다. 정치권의 합의가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5년 정도 준비하면 된다고 본다. 특목고를 요구하는 수요 자체를 근원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부 예산을 써야 한다.
- 학점제를 도입한다 해도, 학교마다 서로 다른 평판과 격차가 생기지 않겠나.
= 핀란드·스웨덴·독일에서는 학생들이 희망하는 고등학교를 선택하고, 지원자가 많으면 학교가 내신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선택 교육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도 그 나라들이 ‘평준화 교육’을 한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있다. 지원률이 낮아지는 학교가 생기면 교육당국이 인사·재정·교육프로그램 등을 적극 지원한다. 결과적으로는 학교별 차이가 없어지게 한다.
- 학점제를 도입하면 우리도 일반 고교에 학생 선발권을 줘도 될까.
= 아니다. 우리 교육당국은 차이가 발생해도 이를 보완하는 노하우가 없다. 지금까지 학교별 차이를 수수방관하기만 했다. 학점제를 통해 중등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높이면서, 학교별 수준 평준화를 유지하려는 당국의 의지와 노하우를 동시에 발전시켜야 한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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