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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새 맹주는

지역여론, 지난 대선 때 여권 후보군 중 정운찬 가장 선호… 반MB 정서가 걸림돌
등록 2009-09-11 11:40 수정 2020-05-03 04:25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는 충청 민심을 공략할 수 있을까? 차기 국무총리 자리가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를 거쳐 충남 공주 출신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은 충청권이 정치의 중심부로 확실히 떠올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제 주목할 것은 충청권의 선택이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충청 민심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지목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심대평 전 대표가 2인자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구도였다. 정 후보자의 등장은 충청권 정치 지형에 주요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왼쪽부터 사진 한겨레 박종식·김봉규·김봉규·김태형 기자)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충청 민심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지목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심대평 전 대표가 2인자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구도였다. 정 후보자의 등장은 충청권 정치 지형에 주요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왼쪽부터 사진 한겨레 박종식·김봉규·김봉규·김태형 기자)

정운찬 후보자 지명 소식이 전해지기 직전인 9월2일 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와 공동으로 대전·충남북의 19살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ARS)를 보면, 충청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대표는 31.5%를 얻어 각각 10%대 중반에 그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16.6%)와 심대평 전 대표(16.3%)를 앞질렀다. 정운찬 후보자는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회창·심대평 쪽 타격 입을듯

충청권에서 꾸준히 강세를 보인 박근혜 전 대표의 독주와 함께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전 대표의 지지세가 엇비슷해졌다는 사실이다. 2008년 1월까지만 해도 충청 유권자에게 ‘지역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정치인’을 물으면 박 전 대표(31.8%) 다음으로 이회창 총재(11.1%)를 꼽는 사람이 많았다. 심대평 전 대표(8.3%)는 이인제 의원(8.8%)보다 낮았다.

윤희웅 KSOI 정치사회조사팀장은 “최근 심대평 전 대표의 총리 기용설과 관련해 이회창 총재의 리더십에 대한 (심 전 대표의) 비판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고, 이 총재가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을 이끌면서도 세종시 건설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그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독주와 이회창·심대평 두 지역 정치인의 경합 구도’를 단번에 뒤흔들 새로운 변수가 바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등장이다. 사실 정 후보자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항마로 거론되면서도, 대선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이렇다 할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에 전면적으로 뛰어들지 않아 인지도가 워낙 낮았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다만 충청권에서는 달랐다. 정 후보자의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2007년 2월10일 한국지방정치학회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충청 유권자는 당시 여권의 잠재적 대선 후보 가운데 정운찬 후보자를 가장 선호한다고 응답했다(25.3%).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16.7%)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4.4%)는 정 후보자와 큰 격차를 보였다. 과거 수차례의 대선에서 ‘연합 대상’에 그쳤던 충청권이 충남 공주 출신의 정 후보자에게 거는 기대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정 후보자의 핵심 측근은 “과거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시절부터 최근의 이회창·심대평 두 인물에 이르기까지 충청의 맹주로 불린 정치인은 모두 ‘과거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했다”며 “이들과 달리 정 내정자는 경제와 교육 분야에 확실한 전문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 인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는 점에서 그의 등장은 충청인의 오랜 염원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도 지역 정서에 기대

정운찬 후보자 스스로도 ‘정치를 한다면 충청을 기반으로 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2007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지 그가 가장 공들인 지역이 충청권이었다. 2006년 12월에는 재경 공주향우회에 참석해 “충청인이 나라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왔다”며 지역 정서에 기대는 발언을 했다. 2007년 2월23일 공주대 특강에서는 좀더 노골적으로 충청권에 구애했다. 이날 그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충청 지역 덕을 많이 봤고 지역을 위해 조금이나마 공헌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의 지지 조직이 가장 먼저 생긴 지역도 대전·충남이었다.

정운찬 후보자의 등장으로 당장 타격을 입을 쪽은 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전 대표인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정치적 영향력은 거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고, 심대평 전 대표가 암시한 이른바 ‘심대평 신당’의 출현을 전제한 호감도 조사에서도 자유선진당과 ‘심대평 신당’은 각각 38.8%와 31.2%의 호감도를 보였다.

두 사람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가지 않은 충청 민심의 일부를 분점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맹주라는 이유가 거의 전부였다. 정 후보자가 그 지점을 파고든다면 두 사람이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희웅 KSOI 정치사회팀장은 “충청 민심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양면 공세 속에서 충청권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간이나마 유지하기 위해 자유선진당이나 이회창·심대평 등을 지지해왔던 측면이 있다”며 “지역 출신이라는 조건과 전국적 인물로 성장할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정운찬 후보자의 등장으로 충청 민심이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가 ‘플러스알파’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 일부다. 박 전 대표가 충청권에서 보인 지지도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략 가능성이 많지는 않지만, 충청권의 한나라당 지지층이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박 전 대표에게 쏠릴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충청 흔들기’ 청와대에 불만 여론

문제는 충청권의 만만찮은 반MB 정서다. 여론조사를 보면, 심대평 전 대표의 자유선진당 탈당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심대평 대표를 총리 후보로 거론하는 등 충청권 흔들기를 시도한 청와대에 책임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31.9%). 심 전 대표의 총리 임명을 반대한 이회창 총재(27.7%)나 심 전 대표 본인(20.6%)에게 책임을 묻는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그보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청와대의 충청권 분열 전략이라는 주장에 공감을 나타낸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앞으로 자유선진당의 역할에 대해서도 절반 가까운 충청 유권자는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47.4%)고 말했다. ‘정부·여당에 협력해야 한다’는 31.8%에 그쳤다. 충청권 여론이 전반적으로 여권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 결과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무산된 것에 대한 충청 유권자의 반응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심 전 대표가 총리에 임명되더라도 권한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아쉽지 않다’는 대답이 39.4%로 높았다. ‘충청권 정치인이 화합형 총리에 임명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무산돼 아쉽다’는 의견은 32.9%였다. ‘심대평 총리 카드’를 정략적으로 본다는 결과와 비슷한 맥락인 셈이다.

정운찬 후보자가 본격적으로 자기 정치를 시작한다면, 이 가운데 ‘아쉽다’라고 대답한 32.9%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행정도시 건설 등 지역 현안을 해결해줄 영향력 있는 지역 출신 정치인의 등장을 희망하는 일부 충청 민심과 유독 ‘충청 출신’임을 강조한 정 후보자의 정치적 야망이 맞닥뜨릴 때, 정치권은 또 다른 유형의 ‘충청 맹주’를 만날 수도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직전의 충남 민심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직전의 충남 민심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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